참여사회 2003년 08월 2003-08-01   1678

대한민국 보수논객의 허구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


지난 대선이래로 보수와 진보는 또 한번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여중생 사건을 비롯한 미군문제와 전교조 문제 등에서 보여준 보수주의자들의 대응은 이전과는 달리 보수주의가 상당한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본지는 한국사회 보수주의자들의 공통적인 주장과 논거를 통해 그들의 허구를 분석하는데 주력했다. 편집자 주

보수, 생존과 처세의 필수조건

거칠지만 ‘반통일-사대주의-친미-반북’은 보수, ‘통일-민족자주-반미-친북’은 진보라는 이분법이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냉전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서구식 보수와 진보의 개념으로 한국상황을 재단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한국엔 올바른 이념적 논쟁이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 극단적 우편향 사회에서 이념논쟁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승자가 이미 결정된 논쟁. 보수의 반대편에 서기 위해선 무모한 돈키호테나 바보가 될 용기가 필요했다. 한국에선 보수이거나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어야 했다. 특히 주류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다.

반대는 달랐다. 보수주의가가 되기 위해 희생은 필요치 않았다. 진보, 다시 말해 빨간색만 멀리하면 됐다. 최소한 무색무취하기만 하면 필요에 따라 보수도 될 수 있었다. 때문에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확고한 이념적 신념에 따라 보수주의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보신책이었거나, 주류에 편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주류세력=보수주의자란 등식이 성립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주류에 선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자신을 중도주의나 자유주의자로 규정지어온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한국엔 진정한 보수주의자도 진정한 자유주의자도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자유주의자들이 진보진영으로부터는 보수성을 이유로, 보수주의세력으로부터는 진보성을 이유로 비판받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는 보수적 지식인들이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발빼기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한국 사회에 보수주의에 대한 철학적 기반이 척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에 대한 구분이 지식인에서 우리 사회의 주류 정치인, 경제인, 문화인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수주의자들』에서 저자들은 보수주의자로 자처하거나 평가받는 동시대 인물 10명의 삶과 사상과 주장을 매섭게 비판했다. 이들이 다룬 인물은 김종필, 김대중, 이회창, 노재봉, 조갑제, 이건희, 공병호, 이인화, 복거일, 김문수. 상당수가 정치인이다. 이 책은 보수적인 색깔이 없으면 정치에 나설 수 없었는 없었던 한국사회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자기방어적 행동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자로 분류되는 이들의 특징을 살펴보자. 이는 대표적인 보수주의 매체를 표방하는 『한국논단』의 기사제목만으로도 그 일단을 파악할 수 있다. 주요 기사제목들을 살펴보면 “현 상황-6.25 前夜(전야)와 꼭 닮았다”(2003년 6월호), “매국 반역행위를 규탄한다”(2003년 3월호), “미군철수요구 부추겨 놓고는 「반미(反美)는 안 된다」딴전, 참을 수 없다”(2003년 1월호) “햇볕정책, 포용정책을 재고하라”(2003년 2월호), “여러분의 자녀가 공산주의 교육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2002년 8월) 등이다.

『한국논단』의 기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좀더 구체적인 분석을 내놓는다. 전재성 숙명여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열린 제1회 한국정치 포럼 ‘한국정치의 보수와 진보’(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주최)에서 한국의 외교정책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의 대립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표1>에 나타난 바와 같이 보수와 진보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국방백서 ‘주적’ 표현 삭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참전문제,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문제, 국가보안법 폐지문제, 방위비 증액 여부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보수진영의 주장은 한마디로 ‘친미·반북’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극단적인 반공·반북, 친미사대적 논리로 무장한 『한국논단』의 극우적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보수주의는 여전히 분단 이데올로기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첨예하게 불거지고 있는 정책들을 둘러싼 보수-진보간의 논쟁 역시 기존의 소모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여중생 사건은 보수와 진보가 여전히 제대로 된 논쟁지점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문제는 불평등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독소조항을 어떻게 제거하느냐였다. 하지만 결과는 SOFA 개정을 사이에 둔 치열한 논쟁보다는, 보수진영의 “반미는 적화”라는 논리 하에 반·친미논쟁으로 매몰되고 말았다. 결국 이는 올 3월 1일 기독교가 중심이 된 대규모 친미시위로 옮겨가 ‘보수대단결’이란 현상을 만들어냈다. 급기야 최근에는 여중생사건추모기념비가 보수주의자들의 손에 훼손되는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했다. 아울러 보수주의자들은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속적인 반감을 보여오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이후 ‘굴욕외교’ 논란이 일자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처럼 미국과 주한미군 문제를 사안별로 냉철하게 따져 묻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다. 이 금기에 물음표를 다는 행위는 망국적 행위이자 적화시도로 간주해 버린다. 대북·대미관계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엔 보수진영이 가진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아직 너무 크다. 이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한 보수주의자들의 자기방어적 행동과도 일맥상통한다.

한국학술단체협의회 조희연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6월 열린 참여정부 100일 평가 토론회에서 보수주의자들의 이 같은 행동양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반공·친미주의적 보수세력은 자신들이 헤게모니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수평적인 대결적 친미시위를 하기보다는 포용적 자세를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국민의정부에 이어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보수세력 스스로가 탈권력화되고 있다고 느끼면서 자기권리와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경쟁이라도 무릅써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보수는 어원적으로 ‘보존하다’란 뜻이다. 보수주의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질서를 존중하면서 변화를 모색하는 이념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겪어온 역사는 체계적인 보수가 자리 매김 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정진영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우 대개 경제정책 노선의 차이가 정치적 색깔을 구분하는 기준이지만, 한국의 경우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며, 그 이유 중 하나로 “주요 정치세력들이 모두 보수적 성향을 띄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경쟁은 정치지도자들의 권력획득을 둘러싼 공방에 불과”했던 사실을 들었다.

한국외국어대 정치학과 김용민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한국의 보수주의』에서 한국의 보수주의는 사상적으로 그 정체가 불투명한 가운데 집권세력, 수구세력, 기득권자, 보수적 중간층들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발전되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 보수주의는 이미 정치인들의 전략적 화두로 전락한 지 오래고, 보수정당은 있어도 진정한 보수주의 철학에 기초한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칭 보수주의자들의 언행불일치

그래서 일까? 보수주의 세력들은 ‘보수주의’의 모범이 될 만한 행동들을 그다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들의 행보를 추적해 보면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이 보수주의적 신념에서 나온 행동인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논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보수주의자들』에서 김종필, 조갑제, 이건희의 경우를 살펴보자. ‘김종필 그는 정통 보수주의의 원조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쓴 조현연 학술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에 대해 “그는 결코 정통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으며, 하물며 그 원조는 더더욱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한국의 ‘정통보수=반동’이란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5·16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여 온 정치적 행태는 정통 보수주의와는 그 색조를 달리하는 ‘반동주의’, ‘반동적 보수주의’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총재를 권력형 부정비리의 원조, 매국 외교의 주역, 지역 감정 조장의 원조, 냉전 회귀를 꾀한 ‘평화공포증’ 환자 등으로 규정짓는 조 위원장에게, 특히 매국 외교부분은 김 총재를 정통 보수주의자라고 볼 수 없게 만드는 핵심이다.

김종필 총재는 1961년 10월과 1962년말 당시 최고회의 의장 박정희의 밀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1965년 한일 협정의 뼈대인 ‘김종필-오히라 메로’를 작성했다. 그는 이 메모를 통해 그동안 논란의 중심이던 청구권 자금의 규모를 ‘무상 원조 3억 달러, 장기 처리 차관 2억 달러, 민간 시용 공여 1억 달러 등 모두 6억 달러’로 타결했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민자당 최고 대표위원으로 있을 당시 “6억 달러는 우리측으로서는 충분한 검토 끝에 타결해 줄 만한 액수였다”고 말하며, 그 돈이 군사혁명 후 경제개발에 착수할 재원이 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회고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일외교는 민족의 분노를 헐값에 팔아 넘긴 매국적 행위로 내내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몇 년 전 민주당의 폭로에 따르면 김 총재는 당시 일본에게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형편이다.

『월간 조선』 조갑제 사장은 어떠한가. 『중앙일보』 전영기 기자는 그를 ‘일본의 개혁적 무사정신을 동경하는 복고주의자’라고 정의했다. 그는 “조갑제가 치열한 기자정신을 갖고 있고 통념과 상식을 뒤엎는 기사를 많이 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조갑제의 철학은 증오의 정서에 기초한 이념주의적·대결주의적 세계관이어서 탈근대의 시대 정신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지금까지 조갑제 사장이 쓴 많은 글들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 사장은 1997년 『한국논단』에 기고한 「문민의 힘으로는 남북통일 안 된다 : 국군은 대한민국 사회의 MVP다」라는 글을 통해 “바보나 위선자가 아닌 한 어느 누구도 통일은 국군이 평양의 주석궁에 탱크를 진주시킬 때 완성된다는 냉혹한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다”는 발언을 해 그의 대북관의 절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의 북한에 대한 주장에서 보여지는 논리의 허구성은 『월간 조선』 ‘편집장의 편지’에도 잘 드러난다. 조 사장은 2000년 3월호 『월간 조선』 「헌법을 수호하자! : 대통령부터 헌법의 무서움을 알도록 해야/집권자에 의한 국헌 문란이 바로 대역죄」란 기사에서 헌법을 문란케 했다는 이유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극도의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헌법을 농락한 군사독재자의 상징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열렬한 흠모의 정을 내비치는 자기모순에 빠져있다.

5월호 「김대중 대통령, 김정일을 내려다보십시오」도 좋은 예다. 조 사장은 김정일의 ‘8대 죄상’을 일일이 열거한 후 “평양까지 찾아가서 이런 인물을 만나기로 한 데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만…”으로 시작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조언을 던진다. 그의 발언이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려면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글들을 통해 남북대화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단지 남북대화를 방해할 뿐이다.

조갑제 사장의 이러한 노력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자. 좌파의 본질을 파헤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동시에(“개혁과 진보를 재정의하기 위한 논쟁을 벌이자” “좌파의 본질-조국을 늘 먼저 비난하는 무리들” “改革이란 무기 또는 흉기에 대해서”), 보수주의자들의 애국심도 자극하고 있다(“보수 대신 애국세력이라 부르자”). ‘노무현 죽이기’에도 일찌감치 팔을 걷어 부쳤을 뿐 아니라(“국민대회가 盧정부를 밀어내고 국가를 대신했다, 집중분석-노무현과 잃어버린 국부 국익”),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반감 또한 아직 버리지 못했다(“외세를 불러들인 사대주의자로 기록될 金大中”). 지난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가 하면(“국민상식-고도성장과 균형분배를 이룬 군사정권” “최고 지성인이 최고 권력자가 된 축복-이승만”), 북한과 이라크에 대해 끊임없이 감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이라크 사람들, 한국의 反戰운동에 격분” “이라크戰 중계-미군 환영하는 이라크 국민들” “평양이 떨었다-3.1절 국민대회 대군중을 보고”). 결국 그의 이러한 글들 속에선 보수주의자의 점진적 개혁의지보다는 전쟁숭배자의 섬뜩한 폭력성만을 발견하게 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보수주의 역시 평가해볼 만 하다. 박원배 『서울경제신문』 기자는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삼성의 경영논리 아래 감춰진 보수성을 비판하며, 장남 이재용 씨에게 기업을 세습하는 과정과 무노조 경영실태에 이르면 그의 보수성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이건희 회장은 경영권에 관한 한 지극히 폐쇄적이며 보수적인 재벌그룹들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7년 9월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제용 씨는 삼성전자의 사모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그 차액으로 이재용 씨는 150억 원을 벌여들였다. 당시 이재용 씨의 부가 정당한 가에 대한 논쟁은 참여연대의 문제제기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고, 결국 편법상속증여로 판명되어 국세청이 거액의 과세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노조에 대한 이 회장의 철학 또한 그의 보수성을 대변한다. 이건희 회장은 노조는 없어져야 하고 노조 없는 경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 말을 실천하기 위한 그의 노력에는 노조건설을 꾀하는 삼성 노동자들에게 행한 수많은 폭력이 감춰져 있다. 지금까지 이 회장은 노조의 불만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급여와 복지 부분에서 국내 최고 수준을 제공해 왔지만, 이런 식의 ‘노조 다스리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의 책 『말, 권력, 지식인』에서 “우리 사회의 대다수 정당들이 보수주의 정당임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치학자들이 보수주의가 부재하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 보수주의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는 ‘상처받은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일침을 가했다.

보수주의의 과제

진정한 보수는 진정한 진보와 함께 사회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양 날개다. 각각이 제 목소리를 내며 치열하게 논쟁할 때만이 사회는 균형 잡힌 비상을 할 수 있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그 목소리가 ‘제대로된’ 목소리일 때만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지금의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진정한 보수가 되기 위해서는 보수에 걸 맞는 행동과 실천을 보여주어야 한다. 보수가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수라는 이름을 빌려 마구 발산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진정한 보수가 자리잡는 데 치명적이다.

이는 양심적인 보수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만든다. 극우와 수구가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 때 굳이 자신을 보수라고 밝혀 탁류에 휩쓸리고 싶은 진정한 보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보수 최대의 적은 진보주의자들이 아니라, 보수를 파는 ‘유사보수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지금은 양심적인 보수들이 자신들을 극우 및 수구와 분리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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