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4년 02월 2004-02-01   635

[지구촌풍경] 유기농업의 선진국 ‘쿠바’

미 경제봉쇄 불구 식량자급률 100%


저는 언젠가 한번, 꼭 쿠바를 가보고 싶답니다. 체 게바라의 숨결이 남아있는 그 나라의 역사를, 그 나라의 거리거리마다 느껴보고 싶고 미국의 경제 봉쇄 하에서의 힘겨운 상황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나가고 있는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해보고 싶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쿠바가 자랑하는 유기농업도 들여다보고 싶어요. 왜, 저 우리의 북녘 땅이 처해 있는 상황과 쿠바가 처해있는 상황이 많이 닮아있다고 하잖아요. 정치적, 경제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나라들, 아니 미국의 경제봉쇄를 직접 겪고 있는 나라들이니까요. 특히 아시다시피 미국의 경제봉쇄는 사람들의 먹거리에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비료도 전기도 농기계도 부족해서 북의 식량 생산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정말 힘든 시기를 견뎌내기도 해야 했다는 것, 다 아시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비슷한 상황 하에 놓여 있는 쿠바는 영아 사망률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데다 43%에 불과하던 식량자급률은 현재 100%에 육박한다고 해요.

도대체 지난 10년 사이에 쿠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미국의 경제봉쇄 뿐만 아니라 구소련 해체, 동구권 몰락이라는 너무나도 불리한 외부적 조건을 쿠바는 어떻게 극복해 내고 오늘의 ‘영광’을 이루어낸 것일까요? 그 답은 바로 유기농업이랍니다.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위기를 유기농업을 통한 변화의 기회로 바꾸어낸 나라, 쿠바. 그 나라가 걸어온 길을, 우리 잠깐 같이 따라가 볼까요?

1991년 ‘평화시의 특별선언’, 유기농법 캠패인 전개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1959년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자마자 경제봉쇄를 시작했어요. 그러니 벌써 경제봉쇄가 45년간이나 지속된 셈이지요. 하지만 초기만 해도 쿠바는 소련과 동구권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 없이 지탱해 나갈 수가 있었어요. 쿠바에서 생산하는 커피, 담배, 사탕수수, 파인애플을 소련과 동구권에 팔고 대신 쌀과 같은 곡물과 화학비료, 농약, 석유 등을 수입해 올 수 있었으니까요. 쿠바는 국제 시세의 3배 가격으로 사탕수수를 구 소련에 수출하는 대신 밀과 가축사료의 거의 전부, 콩의 90%, 비료의 94%, 농약의 82%를 수입하는 식이었어요. 심지어 국민이 섭취하는 칼로리의 57%를 수입농산물에서 얻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이렇게 미국의 경제봉쇄 속에서도 쿠바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비료며 사료, 연료를 지원해 주던 사회주의 경제블록이 어느 순간 더 이상 쿠바의 곁에 없게 되어 버린 겁니다. 연간 100만 톤의 화학비료, 200만 톤의 사료작물, 2만 톤의 농약을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고 석유가 없어 농기계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쿠바는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위의 여러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이제야말로 쿠바가 무릎을 꿇으리라 내심 기대하고 있던 시기, 그러나 쿠바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전 국민이 무릎을 맞대고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9월,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평화 시의 특별선언’을 선포하고 유기농업을 통한 식량자급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했습니다. 먼저 과학자들에게 전통적인 농업기술과 최신 과학기술을 접목해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생산성 높은 유기 농법을 개발하라고 지시했지요. 이와 함께 도시의 공터나 쓰레기장 등을 활용해 텃밭을 만들어 유기농업을 하는 도시농업을 꽃피웠습니다.

인류 최고의 실험 쿠바의 ‘푸른 혁명’

쿠바의 유기농업은 단순히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자연과 인간의 ‘순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꿈꾸었지요. 이를 위해 쿠바는 90%에 달하던 국영농장을 개인이나 조합에 무상.유상으로 임대해 직접 경영하게 했답니다. 사실 유기농업의 핵심은 흙을 살리는 일인데요, 화학비료로 이미 황폐해진 농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최소 3~5년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땅을 꾸준히 한 가족이 가꾸어 나가는 가족농 형태가 필요하다고 해요. 이 흙 살리기에서 또 하나 중요한 기술적 요인은 바로 퇴비입니다. 쿠바는 특히 지렁이퇴비를 중요시 여깁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쿠바에는 도시 농업이 발달해 있는데 도시민들은 말구유 같은 것에 흙을 담고 지렁이와 같은 미생물을 키워 그 퇴비로 텃밭에 각종 야채와 과일을 직접 길러 먹는 겁니다. 그래서 쿠바에서는 지렁이를 ‘도시의 농부’라고 부를 정도라고 해요.

해충 제거 역시 자연의 힘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농장 주변에 해충이 기피하는 식물을 심어 자연방제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농장 귀퉁이에 벌레들이 좋아하는 옥수수를 키워 벌레를 그쪽으로 유인하는 동시에 바람을 막아주고, 박하향이 나는 ‘알카바’라는 작물을 심어 벌레를 도망가게 하기도 합니다.

자, 그럼 현대식 기계농업과 대규모 농업에 익숙해진 우리 눈에는 어쩌면 촌스럽고 미심쩍어 보일 수도 있는 쿠바의 10여 년에 걸친 유기농업 성적은 어떨까요?

1992년 미국의 스탠포드 조사단은 쿠바의 유기농업 시도를 ‘인류 역사의 최대의 실험’ ‘푸른혁명’이라 부르면서도 사실상 그 성공 여부를 반신반의했대요. 하지만 쿠바의 유기농업 생산성은 4년이 지나면서부터 계속 증가해 일반 농업의 30%가 넘는 생산성을 보였습니다. 이어 43%에 지나지 않던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어 이제는 유기농으로 기른 커피, 과일 등 다양한 농작물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지요.

이와 함께 쿠바 국민들의 건강 상태도 아주 좋아졌다고 해요. 식생활이 육류 중심에서 곡류와 채소 중심으로 바뀌면서 기아와 비만이라는 양극단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대요. 단적인 예로 병원에 출입하는 환자들이 30%나 줄었다고 합니다.

유기농업 선언 1년 후, 자연으로 돌아간 쿠바

미국의 경제봉쇄와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덕분에 세계 유기농업의 선진국, 모범이 된 쿠바. 사실상 쿠바 사례가 담고 있는 아이러니는 어쩌면 전통농업, 유기농업과 소위 말하는 선진 생명공학 과학 농업의 아이러니 혹은 힘의 역학관계에서 비롯된 역설일지도 모릅니다. 몇 년 전 조지 몬비오트는 “전통적인 농업은 단일작물 재배방식보다 비생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더욱 생산적이기 때문에 짓밟힌 것이다. 유기농법은 생명공학 기업들에 의한 독점화가 불가능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진보의 적으로 규정되었다. 즉, 어떤 지역 어떤 농민이든 생명공학 기업의 도움 없이 유기농 재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 이야기한 바 있지요.

생명공학 기업들의 독점화, 다시 말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왜곡되고 사장되어야 했던 유기농법, 자본주의 초강대국의 경제봉쇄를 유기농법으로 이겨낸 쿠바. 유기농법을 선언한 1년 후인 1992년, 리우 유엔 환경과 개발회의에서 엄청난 박수를 받았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연설을 잠깐 엿듣는 걸로 이번 이야기는 마칠까 합니다.

“인간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하자. 정의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만들자. 모든 과학지식을 환경오염이 아닌 보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동원하자. 생태계에 진 빚은 갚되, 사람들하고는 싸우지 말자.”

강은지 (민족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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