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4년 05월 2004-05-01   1230

[특집]<총선 후 한국사회 개혁과제> 낙선운동의 끝은 언제인가?

정치개혁의 새로운 대안을 찾아라!


16대에 이어 17대총선에서도 낙천낙선운동은 계속됐다. 과연 낙천낙선운동이 한국사회의 영원한 개혁과제인 정치개혁을 위한 최선의 방식이었는지, 100일이 넘는 기간동안 사회적 혼란과 함께 한 낙천낙선운동을 되짚어보며 이후 정치개혁운동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자. 편집자 주

17대 총선이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총선을 끝으로 그동안 힘을 쏟았던 정치개혁운동이 일단락되고 모처럼 정리와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쁘다. 2002년 2월 선거감시 시민옴부즈만을 결성하여 민주당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경선 감시활동을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대선유권자연대, 2003년 정치개혁연대, 2004년 총선시민연대(이하 총선연대)와 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이하 범국민행동)까지 참여연대가 추진해 온 일련의 정치개혁 연대운동의 실무책임을 맡으면서 3년 넘도록 무던히 밖으로 나돌던 시간이었다.

막판에는 총선연대 사무처장으로 또 범국민행동의 공동상황실장까지 겹치기로 활동하며 거의 매일을 새벽별 보면서 집에 들어가는 강행군 덕택에 이러다가 가족으로부터 탄핵 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었다.

한국 정치가 변하기 시작한다

고생 끝에 보람이랄까? 이번 총선을 고비로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던 한국정치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2월까지 정치개혁연대를 축으로 총력전을 벌였던 정치제도개혁운동을 통해 정치부패를 제어할 수 있는 정치자금법, 선거법 등이 혁신적으로 바뀌었다. 돈 선거를 뿌리 뽑고자 추진했던 제도개혁의 영향을 이번 선거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총선의 결과를 놓고 보면 지역주의에만 안주하며 정치부패에 푹 절어있던 정치세력이 상당히 약화되고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등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졌다. 수 십 년간 의회를 지배해 왔던 한나라당이 기호 1번을 열린우리당에 내 준 것도 의미가 크다.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여서 썩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총선을 통해 각 정당이 국민을 위한 정책경쟁을 벌이는 정치 본래의 메커니즘이 살아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치가 이제서야 제 자리를 잡아나가는 것이다.

낙선운동 말고 다른 대안은 없나?

2003년 연말, 참여연대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총선대응에 대한 격론이 연일 벌어졌다. 낙선운동을 다시 추진할 것인가가 핵심쟁점이었다. 낙선운동은 여전히 유력한 대안이라는 주장과 다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한편, 200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치권의 흉악한 단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법 대선자금의 규모와 정치부패의 양상은 정말 심각했다.

2003년 연말 당시 상황은 2000년 낙선운동을 추진하기 직전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여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 와중에 국회에서는 비리혐의 의원들의 체포동의안 부결 등의 정말 분통터지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제출한 혁신적인 정치개혁안은 의원들의 밥그릇지키기 논리에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고, 정치권 전반의 물갈이를 원하는 국민들의 여론은 이미 80%를 훌쩍 뛰어 넘고 있었다.

더 늦출 수는 없었다. 낙선운동을 통한 부패정치인 퇴출, 현재 국면에서 시민운동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운동이라는 데 이견을 달기 어려웠다. 지난 1월 12일 참여연대는 독자적인 낙천낙선운동돌입 선언을 하고 본격적인 채비에 들어갔다. 부패.반개혁 정치인 낙선운동이 목표였다. 이는 ‘부패비리정치인’ 퇴출이라는 누구나 동의하는 시대적 과제와 더불어 참여연대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개혁적 사안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반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는 얼마 가지 못해 그 입장을 선회할 수 밖에 없었는데 바로 전국적 연대를 추진해 나가면서부터였다. 참여하는 시민단체 전반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기준에 대해 합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부패척결, 정치개혁이라는 과제로 그 기준을 좁혀야 한다는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 여성, 교육 등 그동안의 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해나갈 연대기구가 만들어졌고 한편으로는 전국 대다수 단체들이 참여하는 총선시민연대라는 이중적 구조가 형성되었다.

결국은 낙선운동

참여연대 차원에서는 낙선운동을 하든, 유권자 정보공개운동을 하든 간에 꼭 필요한 정치인 정보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의정감시센터의 이지현 간사가 담당했던 이 작업에 1월초 베테랑 간사들인 이재명, 문혜진, 최한수, 이민아 등이 결합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이재명 팀장을 중심으로 총선연대의 정책팀이 가동되었던 것이다. 이 팀은 근 100여 일 동안 1500여 명에 달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검증작업과 낙천낙선대상자 선정작업,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책임졌다.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로부터 쏟아지는 온갖 항의와 비난을 묵묵히 받아내며 이번 총선과정에서 선관위의 후보자 정보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은 총선연대의 정치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낸 이들이 바로 총선연대 낙선운동의 숨은 주역들이다.

한편, 환경운동연합에서 파견 나온 명호 부장과 참여연대 홍석인 팀장을 중심으로 조직팀과 기획팀이 구성되었다. 환경운동연합의 황호섭 팀장, 녹색연합의 홍욱표 간사, 참여연대 이재근, 전진한, 안진걸, 최인숙 간사 등이 수고했다. 두 팀을 중심으로 각종 캠페인과 행사, 특히 세 차례에 걸친 유권자위원회와 낙천낙선대상자 발표행사 등을 훌륭히 치러냈다. 전국 통신조직을 중심으로 전국적 네트워킹도 원활했고, 전국적으로 단체들의 결합도 늘어나 360여 개 단체가 참여의사를 밝혔다. 한편 각종 캠페인과 행사의 배후에는 ‘낮새밤쥐’라는 총선연대 대학생 자원활동모임이 있었는데 이들이 없었다면 총선연대 활동은 아마도 상당히 무미건조했으리라.

낙천낙선운동은 예정대로 3월 5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부패무능 정치인의 명단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공천반대운동을 가동했다. 물론 이번엔 가급적 선거법과 부딪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바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집회나 가두서명운동 등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러나 선거법 규정의 틈새를 활용해 공천반대 1인시위, 가두기자회견 등을 전개하며 낙천낙선운동의 불을 지펴갔다.

앗, 탄핵이라니?

아, 그런데 난데없는 대통령 탄핵이라니?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논란을 놓고 정치공방 차원에서 대통령에게 사과해라, 안 하면 탄핵한다, 사과할 일 없다는 등의 저급한 정치코미디가 오가더니만, 3월 12일 국회의사당에서는 대통령 탄핵이 가결돼 버리고 만 것이다.

그날 그 시간에 시민단체들은 여의도에서 부패와 정쟁으로 얼룩진 16대 국회의 사망을 알리는 장례식을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충격이라는 것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대부분은 87년 6월의 광장에서 피 흘리며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 뛰었던 사람들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부패와 정쟁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국회의원들이 끌어 내리려 하다니. 그것은 쿠데타였다.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분노한 시민들은 국회의사당에 차를 밀고 들어가 불을 지르는가 하면 분신이 이어지고 있었다. 범국민행동은 여의도를 떠나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통해 차분하지만 완강한 항의행동을 전개하자고 호소했고 국민들은 우리의 호소에 호응했다.

3월13일, 14일, 15일 연일 이어지는 촛불집회는 그 규모가 점점 늘어 3월 20일에는 광화문에만 30만여 명의 시민이 추위와 불편함을 참아가며 탄핵무효와 민주수호의 구호를 함께 외쳤다.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가 참여한 3월 20일의 집회는 근 여섯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시민들은 질서정연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촛불의 바다를 이뤄냈다. 정말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장관이었다. 진행요원으로 무대 한 켠을 오가며 열 개가 넘는 돈자루를 풀어 놓고 새벽까지 시민성금을 세면서 의회쿠데타세력이 저지른 탄핵은 오히려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심화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낙선대상자발표와 10일간의 기다림

3월 27일의 대규모 행사를 끝으로 광화문 촛불행사는 정리되었다. 경찰과 선관위의 사법처리 경고 때문만이 아니라 선거국면으로 진입하면서 국민운동의 동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각 총선연대 기구들도 많이 늦었지만 발빠르게 총선대응모드로 전환하여 활동을 재개했다. 총선연대도 그동안 준비했던 낙선대상자 명단을 4월 6일 발표했다. 탄핵에 찬성한 100여 명의 후보들을 낙선대상자로 선정하는데 아무도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정치폭거를 자행한 민주주의의 공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탄핵무효운동에 집중하며 생긴 공백을 메꾸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한 낙선대상자 명단을 확산한다는 방침이 있었지만 그렇게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총선연대 사이트를 전국적으로 연계하여 펼친 1천만클릭운동은 7백만클릭을 달성했다. 각 지역에서는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낙선대상자를 알리고 반대의 근거를 설명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4월 15일. 총선결과는 바로 국민의 승리였다. 국민들은 부패하고 유권자에 반하는 정치인을 거부했고 탄핵을 심판하였다.

4년 후 낙선운동 또 할것인가?

4년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낙선운동 그 자체는 참 험한 운동이다. 특정정당과의 유착되었다느니, 기준이 자의적이라느니, 국민적 대표성을 갖고 있느냐 등의 온갖 정치적 비난과 함께 개별 정치인들의 항의와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낙선대상자로 선정된 정치인들과 적대적 관계가 된다는 것은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적으로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여기에 이제 낙선운동은 한물 간 운동 아니냐, 영향력이 줄었다는 등의 언론의 호들갑도 한 몫 거든다.

낙선운동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거나 특정정당 편들기를 고려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운동이다. 부패한 정치인, 반유권자적 행위를 반복적으로 했던 정치인, 도덕성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정치인들의 과거행적을 있는 그대로 유권자들에게 공개하는 운동이다. 여기에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꼬리표를 붙여놓은 것 뿐이다.

국회와 정치를 감시하는 단체가 선거과정에서 유권자에게 그 감시의 결과를 공개하고 유권자의 후보 선택을 돕는 활동은 단체 본연의 활동이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에 낙선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국적으로 힘을 모아 추진할 것인지는 상황에 따른 판단의 문제이다. 따라서 4년 후에 다시 낙선운동을 할 것인지 묻는다면? 분명한 것은 다시는 부패정치인 퇴출운동 같은 일로 정력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개혁정책에 걸림돌이 되었는지, 디딤돌이 되었는지, 정책 사안별로 낙선운동을 한다면 몰라도 4년 후에도 또 다시 부패정치인퇴출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는 건 정말 암담한 일이다. 누구 말마따나 대한민국은 전진해야 하니까.

김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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