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4년 06월 2004-06-01   1293

국가보안법 폐지, 민주와 인권의 새질서 세우는 시대과제

구시대 냉전질서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의 폐지 여부가 17대 국회의 개혁 의지를 시험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주목받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의 의미와 논란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누군가 “아직도 국가보안법이냐, 그 이야기는 90년대 후반에 정리가 된 것 아니냐”고 물어온다. 아닌 게 아니라 1948년 제정되어 그야말로 ‘환갑’을 바라보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아주 오래된 그래서 구태의연한 주제처럼 들린다.

문제는 그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 자신 국가보안법 전과자로서 “국가보안법 개폐”를 수 차례 공언하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17대 국회 당선자들(2004년 4월 19일 한겨레 설문조사 결과 87.7%가 개폐에 찬성, 폐지 29.0%)보다 훨씬 더 많은 국회의원이 개폐에 동의했던 16대 국회(2000년 8월 26일 경실련 설문조사 96.2%가 개폐에 찬성, 폐지 50.3%)에서도, 폐지는커녕 단 한 조문의 개정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국가보안법 이야기는 ‘끝나거나 진부한’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작해야 할 이야기이고, 오히려 더 풍부하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싸워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17대 국회 ‘냉전질서’ 청산임무 부여

또 다른 누군가는, 현실이 변했는데 아직도 3, 40년 전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한다고 비판한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국가보안법을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학생들은 학생회장이 되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있고, 송두율 교수에 대한 7년 선고에서 보듯 그들의 잣대는 변하지 않고 있으며, 선거나 정치판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색깔론과 망언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상징되는 냉전적 사고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아니 단순히 배회하면서 몇몇 희생자를 낳는 정도가 아니라, 통일과 사상의 자유로운 소통을 답답하게 막아서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낳은 것은, 태생에서부터 이견을 용서하지 않으며 반대자를 폭력적으로 배제함으로써 하나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질서였다. 그리하여, 그 질서를 직접 운용하거나 이에 맞추어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공고한 기득권과 보호막이 되었고, 필요할 때에는 반공심리를 자극하여 표를 묶는 역할도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이용한 불안 심리는 현존하는 권력 – 그것이 쿠데타로 인한 것이든 아니든 – 을 안정시키는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희생자들을 요구해 왔다. 어느 법률가는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이 해온 역할을, 중세 유럽에서의 마녀 재판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국가보안법이 남아 있는 한, 반대자들을 이러한 잣대로 재단하여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가능하고, 통일에 대한 열망이나 새로운 생각은 끊임없이 사회적 검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전세계 공산주의자들의 혁명 찬양가인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고 하여, 영화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이 고발당한 일을 보라!). 따라서 이 법의 폐지는 단순한 법이나 몇몇 운동권 피해자들을 보호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대표되는 ‘국가보안법적 질서’를 ‘민주와 인권의 질서’로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단순한 ‘법률’의 폐지가 아니라, 이러한 ‘억압적인 질서’를 청산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개정으로 바뀔건 없다

박근혜 대표를 포함하여,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많은 이들이 폐지가 아니라 개정하면 된다고 한다. 국민회의는 1989년 평민당 시절 일찌감치 ‘민주질서보호법’이라는 대체 입법안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개정 또는 대체 법안은 제7조 등 문제가 되는 독소 조항을 삭제하는 등 진전된 모습을 제시하고 있으나, 남북의 평화통일과 민주주의.인권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여전히 부족하고, 북한을 비롯한 반대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이를 형사사법이라는 합법적 폭력으로 제거하려는 틀을 유지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 제정된 이래 11번이나 개정되었지만,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재생산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가 위헌적 해석을 경계하는 소위 ‘한정합헌’(일정한 제한을 두어 해석하는 경우에는 헌법에 합치한다는 것) 결정과 그에 따른 개정 후에도, 법 위반 사건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사법부의 국가보안법 해석에 있어서도 별 변화가 없고, 판결문 속의 말들은 더 모호해지고 종잡을 수 없게 된 점도 있다.

단적인 예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북한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적화통일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는 반국가단체의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고 하고 있으나, 이는 말뿐이고 실제로는 그 두 가지 성격을 나누는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거나, 어떠한 행위를 평가할 때 두 가지 성격을 나누어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북한과의 근접성.관여만으로 처벌하고 있다. 이는 실은 국가보안법의 본질 – 북한을 평화 통일의 당사자로 보는 헌법에 위반되고 북한과의 협력을 규정한 다른 규범과 상충된다는 점 – 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국가보안법의 문제점들은 단지 개정되거나 대체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그 질서 전체를 들어냄으로써 ‘청산’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를 보는 삐딱한 시선은, 그것이 지나치게 과거지향적이라는 것이다. 빨갱이 몇 사람 구제하는 게 국가의 미래와 민생 안정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거다. 그러나 위헌적이고, 모순되며 불필요하며 국제사회의 망신을 자초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을 놓아둘 필요야말로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진짜 ‘평화’ 통일을 이룰 수는 없다. 세상에 누가 자신을 ‘적’으로 보는 법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과 평화롭게 통일하자고 하겠는가.

또 하나의 삐딱한 시선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국가보안법을 없애면 자유민주주의와 안보를 어떻게 지키냐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이까짓 창피한 법 없어도, 우리의 자랑찬 형법은 간첩, 각종 이적, 국헌 문란 등으로 안보에 진짜 위협이 될 만한 일들을 촘촘히 얽어 두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 당신들이 맞다! 이제 너덜너덜해진 국가보안법과 그를 둘러싼 ‘지겨운’ 논의를 끝장낼 때가 왔다. 그리고 인권과 통일의 밝은 미래로 나가면 되는 것이다.

김진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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