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4년 06월 2004-06-01   1698

소수의견 비공개, 헌재 재판관 구성의 비민주성에서 오는 한계

대통령 탄핵소추안 기각결정으로 환호를 받은 반면 소수의견 비공개결정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킨 헌법재판소의 한계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미래를 전망해본다. 편집자주

국민의 기본권 보장 확대, 한국사회의 변화 선도, 사회적 약자보호 등을 위해 긍정적 역할을 해온 헌법재판소이지만 한계와 문제 역시 분명하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총 9인 중 6인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동의’를 거칠 필요도 없이 임명되어 민주적 통제와 무관하게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고 있다.

국회동의 없이 임명된 6인, 헌재의 중대변수

헌법 제104조는 대법원 구성에 있어 대법원장뿐만 아니라 대법관도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에 같은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11조 4항에서 헌법재판소장의 임명에만 ‘국회의 동의’를 요구할 뿐 재판관 임명시의 국회 동의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또한 하위법률인 국회법 제46조의3 제1항에서도 “국회는 헌법에 의하여 그 임명에 동의를 요하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및 대법관과 국회에서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 대한 임명동의안 등을 심사하기 위하여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111조 3항에 의해 9인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3인 이외에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나머지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다. 9인의 재판관 중 국회에서 선출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만이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을 뿐, 나머지 6인의 재판관은 국회와는 무관하게 임명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에서 ‘6인’이 갖는 의미는 크다. 위헌법률심판에서 법률을 위헌결정하기 위해, 헌법소원심판에서 청구인의 위헌주장을 받아들이기 위해, 정당해산심판에서 제소된 정당을 위헌정당으로 해산하기 위해, 이번 탄핵사태에서 목도했듯 탄핵심판에서 피소추인을 파면하기 위해 필요한 정족수가 바로 6인 이상이기 때문이다. ‘6인’이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청와대 인사담당자 몇 명이 모인 회의에서 혹은 대법원장실에 모인 몇몇 고위 법관들의 회의에서 밀실인사를 통해 결정될 수도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이다.

헌재구성의 비민주성, 소수의견 비공개로 드러나

헌법재판소 구성의 비민주성에서 오는 한계는 심심찮게 문제를 노정시켜 왔다. 어떤 결정에서는 국민의 목소리와는 완전히 유리된, 사법소극주의적이고 극히 보수적인 일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판결성향이 강하게 현출되었다. 그 최근의 예가 대통령 탄핵결정에 있어 많은 헌법학자들이나 다수국민들의 분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소수의견 비공개’를 감행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과 정당해산심판을 소수의견의 의무적 표시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 제36조 3항을 근거로, 또 헌법재판소법 제34조 1항에 규정된 ‘평의 비공개’의 원칙을 근거로 소수의견을 판결문에 넣지도 않았고, 어떤 재판관이 소수의견의 입장에 섰는지, 심지어 소수의견의 입장에 선 재판관의 수가 몇 명인지도 결정 선고에서 밝히지 않았다. 이것은 옳지 않다.

첫째, 헌법재판소법 제34조 1항의 ‘평의 비공개’ 규정이 ‘소수의견 비공개’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평의’란 재판관들이 한 사건의 쟁점들에 대해 그때그때 모여 논의하는 것으로, ‘평의 비공개’란 이러한 개별적 논의들에 있어 어떤 재판관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내용의 논의가 오고갔는가를 비밀로 한다는 것이지, 개별적 논의들의 ‘결과물’로 선고되는 ‘최종 결정문’ 속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재판관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를 비공개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의 비공개’를 ‘소수의견 비공개’로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 수 있다.

둘째, 탄핵심판과 정당해산심판을 소수의견의 의무적 표시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 제36조 3항의 해석도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이 조항을 좁게 해석하면 위헌법률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에 대해서만 소수의견을 표시하고 탄핵심판과 정당해산심판은 결정문에 소수의견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거나 소수의견의 표시여부가 재판부의 재량사항이라 새길 수도 있겠지만, 넓게 해석하면 3가지 심판유형은 예시된 것에 불과하며, 따라서 5가지 심판유형 모두에 있어 소수의견 표시는 의무적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

는 것이다.

이제껏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의 여러 조문들을 넓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 예로 헌법재판소법에는 권한쟁의심판(제65조)과 정당해산심판(57조)에 대해서만 가처분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명문규정을 두고 있을 뿐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이런 명문규정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에 대한 가처분결정을 판례를 통해 인정한 것이라든지, 헌법재판소법 제38조가 사건 접수 후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헌법재판소가 이것을 훈시규정으로 해석하면서 180일의 심판기간을 꼭 지키지는 않아도 될 기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을 들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분명히 헌법재판소법을 넓게 해석하는 입장을 취해 온 것이다. 그런데 유독 이번 탄핵사건에서 소수의견 공개 여부를 놓고 헌법재판소법 제36조 3항을 좁게 해석하며 ‘소수의견 비공개’를 정당화하려 한 것은, 종래의 헌법재판소 입장과 상반되는 것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헌법재판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재판관 개개인이 구체적 사실관계를 자신이 생각하는 헌법, 법률과 양심에 대입하여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사법기관, 특히 최고사법기관의 결정은 소수의견이 있다면 이를 반드시 명기하도록 하는 것이 세계 각 국이 채택하고 있는 대원칙이다. 오늘의 소수의견이 사회변화나 국민정서의 변화로 내일의 다수의견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소수의견이 변화된 미래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기에 명기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헌재가 되어야

헌법이나 법률의 개정을 통해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의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꼭 얻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며 자신의 법 지식과 양심에 따라 자기 목소리를 거리낌없이 개진할 수 있는, ‘지혜롭고 용기있는 9인의 현자’로 헌법재판소를 꾸려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임을 우리는 이번의 탄핵심판결정을 통해 뼈저리게 체험하지 않았던가.

9인의 현자들로 꾸려진 미래의 헌법재판소는 국가적 고비마다 할 말은 다 하면서, 헌법의 중요성과 헌법이 살아있음을 매순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사법적극주의적 판결로 입법부나 행정부를 철저히 견제하여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분립의 이상을 실현하고, 때로 행정편의주의 등에 안주하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내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하고, 가진 자, 강자, 편견을 가진 자에 치어 멍든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헌법재판소로 거듭나야 한다.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건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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