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5년 01월 2005-01-01   1066

“차이를 차별하는 인식이 무섭다”

강의석 군을 만나기로 한 날은 마침 수능 성적 발표 다음날이다. 진작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대학 진학을 앞둔 수험생이라 시험 뒤로 인터뷰를 미뤄 왔던 것이다.

하지만 수능이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특히 그는 다른 학생들처럼 정시모집에 응할 수 없는 제한적인 예비학생 신분이라 (그는 퇴학 가처분 소송중이다)이미 수시모집 특기전형으로 1차 통과한 서울대 합격만이 대학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서울대 최종합격을 결정하는것은 당연히 수능 점수. 그가 아무리 전교 1, 2등을 다투는 성적이라곤 하지만, 시험 직전까지 그가 보여준 활동은 그간의 실력을 허공으로 날려보내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수능 성적 발표 다음날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편치만은 않았다.

지난해 6월 16일, 다니던 학교에서 이뤄지던 예배 강요에 반대하는 교내방송을 시작으로 학내 종교 자유에 대한 문제 제기에 나선 이래, 서울시 교육청 앞 1인 시위, 46일간의 위험한 단식과 재단식, 인권위원회 진정, 헌법에 보장된 종교 자유를 염원하는 학생 커뮤니티 활동 등 그는 고 3학생으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가. 하지만 다행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대부분의 신문이 그의 서울대 합격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학교 들어가 제일 먼저 한 일 ‘교칙 읽기’

얼마 안 있으면 마침표를 찍을 그의 고등학교 시절이 궁금했다. 학생회장으로 출마하면서 그가 품었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학교를 바꾸고 싶었다. 학생들을 교육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교사들의 시각이나 교사들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교우들의 모습에 그는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학교를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배우는 곳,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충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배우는 곳? 학생들이 안 배워도 될 것까지 죽어라 배워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 교사들이 뭘 배울 수 있다는 말인지 선뜻 납득이 안 됐다.

“아주 쉽게 생각하면, 가르치는 법을 배울 수 있겠지요. 학생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 하며 서로의 다름을 배울 수 있을 거고요. 또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학문 탐구를 더 할 수도 있을 테고….”

혜안이 느껴지는 답변은 아니었지만, 그의 담담한 듯 가벼운 듯 한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이 떠올라 자리를 고쳐 앉았다.

학생회장이 되어 제일 처음 한 일이 친구, 후배들과 교칙을 읽는 일이었다.

“글자 틀린 것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문제들을 찾아냈어요. 근데, 교칙 끝 부분에 선거에 대한 내용이 있더라고요. 학생회장, 부회장에 출마하려는 자는 교회에 출석해야 한다, 이렇게 돼 있어요. 대의원들까지 모두 읽어보고 바꿀 것은 바꿔보자고 하나씩 검토했는데, 누군가 삭제합시다 하더라고요. 만장일치로 삭제를 결의하고 가결했는데, 곧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어요. 지도교사 말 한 마디에요.”

그렇게 시작된 활동은 로이(ROY, Right of Youth)라는 모임으로 이어졌다.

“친구들끼리 모여 우리 권리를 찾자는 건데,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 보자는 거예요. 제 친구들과 그 친구의 친구들, 카페를 통해서 알게 된 친구들도 있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섞여 있어요. 종교 자유에 대한 활동 뿐 아니라,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못하는, 의무로만 가득찬 교칙 바꾸기 운동 같은 걸 해 보려고 해요.”

무릇 사회 변화가 출중한 지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있는 결단과 실천이 쌓여 이루어졌다는 인식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래서인지 모른다. 그의 과감하고 선도적인 투쟁은 너무 외로워 보였다. 종교재단에서 설립한 고등학교가 전체 고등학교의 20%에 이르지만 학교의 종교와 개인의 종교가 같은 경우가 37%에 불과(교육부 자료)한 상황에서 그의 투쟁에 동참할 친구 한 명 없었으니 말이다.

“함께 움직이면 운동은 확산될 수 있겠지만 그동안 받을 수 있는 타격은 모두 함께 받을 테니까 우리가 많이 부서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친구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부모님들은 자식 험한 꼴 보는 걸 못 견뎌 하시니까요. 친구들 부모님까지 상심하시는 것만큼은 못 보겠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행동했던 거예요”

강 군 자신도 그랬다. 대학까지 보내는 걸 의무라 믿는 부모님과의 사이에 생긴 대화 단절로 힘겨웠다. 심지어 기독교계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공립학교 친구들만 만났다. 굳이 단식이란 극한 투쟁방식을 택한 것도 ‘홀로’ 감당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모른다.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제 자신이 힘을 잃고 나태해지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다잡을 필요가 있었어요. 또 하나는 그 때가 한창 사실이 거짓으로 둔갑돼 본질이 더럽혀지는 때였는데, 너무나 당연한 요구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세상에 이의를 제기해 보자는 거였어요.”

“중요한 건 차이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

그는 언제부터 하루키를 읽었던 걸까? 수십 일 째 계속되는 단식을 보다 못한 부모가 입원결정을 내리자 가출을 감행했던 그에게, 어디 갔었느냐고 묻자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해변의 카프카』얘기를 했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 갈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는 그 나이 아이들에게 결국 남는 장소는 도서관뿐이었을까? 『해변의 카프카』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처럼 그도 도서관에 가고 싶어했다. 결국 도서관 대신 지리산을 선택했지만, 어려서부터 누나를 따라 학교 끝나면 직행, 오래도록 시간을 보냈던 도서관은 아마도 그에게 ‘제 2의 집’과 같은 곳이었으며, ‘사람은 왜 사는가’에 대한 자문을 거듭했던 그에게 『소피의 세계』 같은 철학책들은 정겨운 동무였을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그의 외로운 저항에서 정의를 갈구하는 마음, 신념을 지키는 의지, 남에 대한 존중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고 정리했지만, 난 여전히 그가 궁금했다. 오늘의 강의석이 있게 한 ‘잡다한 개인사’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초보 인터뷰어답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은?” 따위 유치한 질문을 연거푸 던졌다.

그는 나의 질문이 영 마땅치 않은 기색이었다. 불만의 요체는 ‘가장’ 이란 단어였다. 그는 ‘가장’이란 말이 무섭다고 했다. ‘가장’과 ‘가장 밑’으로 가르면서 차이를 두는 것이 싫다고 했다. 존재하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차이를 차별하고 있는 나의 무딘 감수성에도 아픈 못이 박혔다. 그래도 난 끈질겼다. 그가 가장 감동적으로 읽었다는 책을 끝내 알아냈으니. 최명희의 『혼불』이다.

“이 책을 읽고 책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어요. 책은 지식을 얻는 것이라 생각하고 한번 읽고 내팽개치는 수준이었는데, 그 책을 읽을 때는 다르더라고요. 책에 빨려든다는 느낌이 그런 걸까? 그 책에 미친 것처럼 빨려들어 그 흐름대로 읽게 되고, 읽고 나서 생각을 하면서도 책을 더 보게 되는 거. 정의는 못 내리겠는데, 그런 게 미친다는 거 아닐까 생각해요.”

인터뷰 내내 질문 요지를 신중하게 파악하고 정확하게 답변해내는 모습이나, 질문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의 문제의식을 담아 거꾸로 되쏘는 모습은 도저히 열아홉 살 고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파문이 아직 가시지 않은 수능부정 사건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짧게 보면 도둑질로 비난받을 수 있는 문제지만, 그 행위 역시 모든 이들의 행동처럼 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도둑질조차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처럼 오해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에, 그는 법이나 제도 등 우리가 만든 규범들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는 여러 모로 ‘고3스럽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3스럽지’ 않은 점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바보일지’를 쓴다. 왜 스스로를 바보라고 부르며 매일 아침 “난 바보다, 난 효자다, 난 날 사랑한다”고 되새기는 걸까? 그가 생각하는 바보는 무엇일까? 다행히 내가 알고 있는 한 바보를 그도 알고 있었다. 전태일. 어느 날 그는 “바보는 어리석지만 바보만 산다면 평화로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조건 없이 사랑 받는 그런 바보 말이다.

욕심 많은 스무 살

그는 곧 한국 사회에서 권력과 명예의 상징인 서울대 법대생이 된다. 서울대 법대를 지원한 동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대를 택한 것은 다른 학교와는 달리 사법고시 위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법 정신 중심으로 가르치는 곳이라고 해서예요. 다른 학교는 학원식으로 인기 강사 초빙해서 강의를 한다더라고요. 법학부를 지원한 건 법 정신을 공부하고 싶어섭니다. 학내 종교자유 운동 하면서 합의서 같은 것도 작성해 보았는데, 합의서의 한 글자 한 글자 바꾸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 한 글자에 담긴 내 요구를 관철하는 것, 그 한 글자에 정의를 심어 놓기 위해서는 수많은 땀방울이 필요하고요. 그런 정신을 하나하나 느껴보고 싶었어요.”

새해 계획을 묻자 그는 1월 서울에서 부산까지 청소년 인권과 학내 종교 자유를 위한 걷기 대회를 열 예정이라고 했다. 또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깊어 관련 공부도 계획하고 있다. 또 뜻밖에 권투신인왕에 도전할 생각이 있고, 악기를 제대로 다루고 싶어 기타 강습도 받고 있다고 했다.

새해에 그가 이를 ‘스물’이란 나이. 그의 말처럼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을 때다. “힘든 삶 때문”이란 그럴듯한 변명 속에 새로운 도전에 게으른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하는 그는, 어른들을 감싼 ‘일상’이란 껍데기를 쪼아대는 독수리의 부리다.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제 자신이 힘을 잃고

나태해지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다잡을 필요가 있었어요.

그 때가 한창 사실이 거짓으로 둔갑돼

본질이 더럽혀지는 때였는데,

너무나 당연한 요구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세상에

이의를 제기해 보자는 거였어요.”

‘가장’이란 말이 무서워요.

’가장’과 ‘가장밑’으로 가르면서

차이를 두기보다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중요한게 아닌가요…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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