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5년 10월 2005-10-01   1629

대한민국은 공사중, ‘토건국가’의 개혁을 위해

‘토건국가(土建國家)’는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한국의 토건업은 전체 국민 일인당 GDP의 20%, 전체 GDP의 9% 정도를 차지한다. 이러한 비중은 선진국의 2배에 이르는 것으로 한국을 이른바 ‘중진국 함정’에 잡아두는 주범이다. 산업구조가 개발도상국형인데,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겠는가? 경제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서,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 투기를 불식하기 위해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 쉽게 말해 ‘선진화’를 위해서, 토건국가의 생태민주적 개혁은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이다.

개발국가의 타락한 형태, 토건국가

토건국가는 박정희에서 시작되어 노태우로 이어진 개발독재의 구조적 산물이다.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는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고도성장은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변화였다. 이러한 박정희 시대를 가리켜 흔히 ‘개발독재’ 시대라고 부른다. 필자는 이것을 ‘개발을 위한 독재이자 개발을 내세운 독재’로 정의한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꼭 독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며, 더욱이 일제 관동군 출신인 박정희의 독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개발을 위한 독재’를 내세웠으나, 그 실상은 ‘개발을 내세운 독재’에 가까웠다.

박정희가 이룬 변화를 두고 흔히 ‘압축적 근대화’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박정희가 추구한 변화가 얼마나 빠른 시간에 이루어졌는가, 따라서 그가 이룬 근대화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루어진 것인가를 잘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압축적 근대화’를 이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압축성뿐만 아니라 폭력성을 함께 문제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는 ‘폭압적 근대화’였다. 박정희는 한쪽에 군대와 경찰을, 다른 한쪽에 개발공사(開發公社)를 거느리고 ‘폭압적 근대화’를 밀어붙였다.

시대는 변하고 개발독재는 사라졌다. 군사독재자들은 심판을 받았다.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발독재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만든 사회체계까지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개발독재는 사라졌으나 개발주의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개발국가도 역시 그렇다. 개발주의는 ‘무조건적 경제성장을 위한 무분별한 개발을 절대선(絶對善)으로 여기는 태도’를 뜻한다. 이 파괴적 태도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일종의 사회적 암이다. 이 암을 낳고 기른 것은 바로 개발독재이다.

그런데 개발독재는 개발국가의 한 유형일 뿐이다. 따라서 민주화를 통해 독재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개발독재가 정립한 개발국가 자체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개발국가는 여전히 의연하다. 그 중요한 증거로 각종 개발정책이 난무하고 개발공사가 의연한 것을 들 수 있다. 개발국가란 ‘국가가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개발의 주체로서, 그것도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더 많은 성장의 도구로 여기는 파괴적 개발의 주체로 구실하는 국가’를 뜻한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개발사업과 이것을 주도하는 여러 개발공사들은 이러한 개발국가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개발국가의 가장 타락한 형태가 바로 토건국가이다. 이것은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하여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국가’를 뜻한다. 본래 토건국가라는 개념은 현대 일본사회의 부정적 특징을 가리키기 위해서 고안됐다. 그런데 이 개념은 현대 한국사회에도 잘 들어맞는다. 토건업체와 정치권이 유착하여 시민을 착취하는 체계는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맹렬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16대 대통령 선거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재벌과 정치권의 추악한 결탁이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났는데, 여기서 핵심적인 구실을 한 것이 바로 재벌의 토건업체들이었다.

토건국가에서는 경제성과 환경성이 없는 것으로 입증된 사업을 필요한 사업이라고 우기며 강행하고,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해 자연파괴사업을 강행하며, 지역 주민들을 매수하고 협박해 문화파괴사업을 강행하는 일을 언제나 쉽게 볼 수 있다.

부패와 파괴로 얼룩진 토건국가, 생태 민주 옷 갈아입고 새로 태어나야

토건국가의 문제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부패 문제이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정경유착과 민중의 착취를 뜻한다. 정경유착을 통해 토건업체가 정치권에 전하는 돈은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 토건국가는 정경유착과 민중의 착취를 위해 자연을 대대적이고 지속적으로 파괴한다.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토건업체는 막대한 돈을 챙겨 정치인이나 공무원과 나눠먹는다. 셋째, 토건국가는 자연과 일체로 존재해온 지역사회와 문화를 송두리째 파괴한다. 이를 위해 한 손에는 보상금을 쥐고 주민을 매수해 지역사회를 분열시키고, 다른 한 손으론 개발독재 시대의 국가주의 공익론을 내세워 주민을 협박한다. 넷째, 토건국가는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는 현대의 고도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갈수록 커지는 자연재해에 대처하기에 턱없이 부실한 사회체계를 만든다. 다섯째, 비대한 토건업은 왜곡된 산업구조의 개혁을 가로막아 사회 전체의 발전이 지체되고, 파국의 싹이 자라나게 된다.

토건국가는 정치권과 토건업체와 개발공사의 ‘삼자동맹’을 핵심으로 해서 학계와 언론계가 결합된 ‘토건복합체’를 통해 작동한다. 토건국가의 ‘삼자동맹’은 정치권과 토건업체 사이의 정경유착, 정치권과 개발공사 사이의 정관유착, 개발공사와 토건업체 사이의 관경유착이라는 삼중의 유착관계를 통해 작동한다. 따라서 토건국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유착관계 모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주체는 정책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치권이다. 따라서 토건국가의 개혁이라는 과제는 정치개혁이라는 과제와 직결되어 있는 거대한 구조적 개혁 과제이기도 하다.

토건국가의 개혁에서 제도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공사의 개혁이다. 개발독재의 구조적 산물인 개발공사는 이른바 국책사업의 실행자로서 ‘삼자동맹’을 구성하는 핵심적 조직자의 구실을 한다. 개발독재는 민주적 효율성을 무가치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겼다. 개발공사가 반민주적으로 개발사업을 강행하는 이유는 개발독재 시대의 관행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민주적 효율성에 대한 자각이 낮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공사와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전국 곳곳에서 심각한 갈등이 빚어지는 까닭은 개발사업은 물론이고 개발공사 자체가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갈등 관리’를 하는 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갈등 관리가 아니라 개발공사의 개혁이다. 그 방향은 무엇보다 민주적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개발공사의 구성과 운영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해서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반생태적이고 반경제적인 개발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기획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비슷한 기능을 가진 개발공사를 통폐합하고 그 기능의 생태적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인력 자체를 생태적 지식과 기능을 갖춘 인력으로 바꿔야 한다. 이러한 생태민주적 전환만이 개발공사의 올바른 개혁방향이다. 그리고 이것은 환경영향평가의 실질화와 함께 토건국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다.

홍성태 『참여사회』편집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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