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5년 12월 2005-12-01   1258

숨은 비지 찾기, 숨은 회장님 찾기

대법원의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원고승소 확정판결에 대해


다윗의 승리!

지난 10월28일, 대법원의 한 판결에 관심이 집중됐다. 초조한 마음으로 판결을 기다린 건 원고인 참여연대나 피고인 삼성전자나 마찬가지였다. 그 의미만큼 충분히 깊이 있게 보도되지는 못했지만, 계란이 바위에 상처를 남겼다거나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거꾸러뜨리는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언론의 호들갑이 이어졌다. 대법원이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전·현직 이사들에게 비자금 조성 및 불법 정치자금제공, 계열사 간 부당거래 등의 책임을 물어 190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1998년 10월 참여연대와 삼성전자 소액주주 22명이 이사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지 꼬박 7년 만의 일이었다. 사법부의 최고기관인 대법원이 국내 최고 기업 삼성에 대해 주주대표소송에서 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 책임을 확인한 초유의 사례가 대한민국 상법 교과서에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확인한 사실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사주의 이익을 보호하려다 경영진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 배상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주도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사주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진의 책임문제부터 짚어보자.

싼 것은 비지떡임에 틀림없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1994년 4월 삼성종합화학의 유상증자에 참여, 1,000만 주를 액면가인 1만 원씩에 사들였다. 그리고 불과 8개월 뒤 그 주식 2,000만 주를 주당 2,600원에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삼성건설과 삼성항공에 팔았다.

여기서 경영진의 주의 의무 위반을 확인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매각 당시 2,600원의 매각가가 ‘적절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 ‘적정가’였는가 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제도에서 우리는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를 수없이 경험하거니와 그 모든 거래에서 가격이 구매와 판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경고하듯, 지나치게 헐값이라면 거기엔 뭔가 숨은 이유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비상장주식의 가치는 평가방법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어 적정가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피고측은 평가방법중 하나인 상속세및증여세법상 보충적 주식가치평가방법에 따라 매도가격을 결정했고 이에 따른 적정가였다고 주장했다. 비상장주식의 평가문제가 갖는 모호성을 무기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6년 동안 취득해온 가액의 1/4 수준이며 1주당 순자산가액의 1/2밖에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삼성종합화학의 지배주주였고 2,000만 주를 처분하면 그 지위를 잃게 되어있었다. 더구나 당시 삼성종합화학에 대해서는 수익성이 호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었다. 결단코 이렇게 헐값에 팔아버릴 물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법원은 이 거래에 숨겨진 ‘비지’, 즉 싸게 넘겨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려는 의도를 찾아냈고, 그 과정에서 경영진이 회사에 끼친 손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 것이다.

비상장주식은 평가방법의 모호성 때문에 이보다 조금 먼저 나온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형사판결에서도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또 근래 삼성뿐아니라 SK, 현대차그룹등 재벌기업의 상속과정에서 편법적 수단으로 각광받은 바 있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유사사건에 중요한 기준을 제공했다는 의미도 함께 갖는다.

‘회장님’의 존재증명

대법원의 판결이 확인한 두 번째의 사실, ‘기업주가 회사자금으로 불법정치자금을 주었다면 이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88년 3월부터 1992년 8월 삼성전자를 통해 조성한 75억 원을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뇌물로 주었다. 이에 대해 그동안 피고측은 준 건 사실이고 잘못한 건 맞지만 정치권력의 압력 때문이었고 정상적인 기업경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상황론을 내세웠다. 이 주장에 따르면 정경유착 과정에서 기업총수는 지극히 수동적인 피해자였다는 것, 공개석상에 드러나지 않아 ‘은둔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총수이긴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과정에서조차 단역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시기가 다르지만 총수가 이러한 과정에서 결코 단역이 아님은 얼마 전 X-파일이라는 극적인 드라마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그 드라마에서 분명 ‘회장님’은 후보들을 판단하고 관리하는 ‘빛나는 주역’이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불법정치자금 공여가 기업 총수의 판단과 지시에 의한 것으로 이를 통해 회사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 역시 그에게 있다는 것이니 ‘회장님’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사법부로부터 찬란하게 증명 받게 된 셈이다.

다윗의 짱돌은 계속 날아간다.

비록 원고가 제기한 문제 전부가 인정받지는 못했고 배상액 역시 크게 삭감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총수의 이익 중심으로 구성된 우리 기업의 왜곡된 지배구조와 회삿돈을 자기 것처럼 유용해 온 나쁜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 판결을 두고 언론이 사용했던 성서의 수사로 돌아가 보자. 골리앗이 정의로웠다면 그는 결코 다윗의 짱돌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의 짱돌은 골리앗의 큰 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의 폭압과 불의를 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가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던져 온 ‘짱돌’은 비로소 성과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에게 그룹 경영권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 삼성SDS, 제일모직, 서울통신기술 등 삼성 계열사들이 저지른 수많은 편법, 위법, 탈법 행위들은 여전히 거대한 골리앗처럼 남아 있다. 참여연대는 현재 이재용씨를 위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고의로 실권한 제일모직 임원들에 대해 주주대표소송을 추진하고 있으며, 삼성 SDS와 서울통신기술의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다윗의 짱돌이 앞으로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독선적이고 위법적인 골리앗이 있는 한 짱돌은 그를 향해 계속 날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끝까지!

신희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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