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5년 12월 2005-12-01   423

관객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독립영화의 배급과 관련한 논의가 관객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위원회가 단편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와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관한 한일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 그리고 한국의 군대에 관한 문제를 다룬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의 전국 극장개봉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의 대중화와 배급의 활성화를 위해 출발한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위원회는 전국의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이들 영화들을 배급할 계획인데, 이는 소수의 영화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대안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배급위원회는 한국영화의 배급체계가 거대 배급사와 대작영화 위주로 편중되어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영화에서 배급은 제작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다. 영화가 적절하게 배급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극장에서 영화를 만날 수도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배급은 제작된 영화가 극장을 통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영역으로 상영을 통한 수익을 기대하는 영화산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시장경쟁력이 취약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경우, 배급은 사실 대작영화들보다 더 중요하다. 한국영화의 시장규모가 점점 커지고 극장이 거대화되면서 영화의 배급 또한 점점 독점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올 10월까지의 한국영화흥행수치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2005년 올 한해 한국영화는 개봉작을 포함해 총 78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2005년 1월부터 10월까지) 여기서 서울에서 관객동원 70만 명을 넘긴 ‘10위권’에 들어가는 영화들은 대부분 100여개 정도의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이와 비교할 때 독립계열의 영화들은 1개 혹은 2~3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에 머물렀다. 예를 들어 송일곤의 <깃>, 민병국의 <가능한 변화들>, 전수일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기덕의 <활>, 장률의 <당시>, 황철민의 <프락치>, 채기의 <빛나는 거짓>등과 같은 독립계열의 작품들은 한 두 개의 극장에서 상영되어 적게는 200명에서 많게는 2,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머물렀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활> 또한 한개관에서 개봉해 1, 2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배급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의 배급과 관련해 스크린이나 관객 수와 같은 양적인 문제만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들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에 있다. 영화에 대한 산업적 논의는 종종 영화가 어디에 존재하는가의 문제를 간과한다. 즉 관객들의 영화적 체험과 관련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멀티플렉스는 사실상 대작 영화의 집중화, 독점화 경향을 양산할 뿐만 아니라 차이를 무시하며 모든 영화를 등질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서로 다른 영화는 다른 방식의 상영기회를 찾아야만 한다. 가령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의 배급에서 기존의 상업극장은 하나의 상영장소에 불과할 뿐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상업극장만이 아니라 극장 이외의 공간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외국의 경우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의 배급은 상업극장만이 아니라 ‘비극장(non-theatrical)’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비극장이란 박물관, 대학, 아트센터 등 비상업적 용도의 모든 공간을 지칭한다. 이런 비극장을 통한 배급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의 상영이 단지 상업적 수익을 얻기 위한 기회가 아니라 관객과 다양하게 만나는 기회임을 보여준다. 영화상영과 더불어 진행되는 강연, 세미나, 감독과의 대화 등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 영화들은 현재의 관객뿐만 아니라 미래의 관객들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 해 동안 제작되는 독립 장단편 영화는 상당한 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 중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소수에 불과하다. 시네마테크나 단체들의 정기·비정기 상영회, 대학의 소규모 영화 상영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영기회들이다. 영화의 차이를 무시한 채 모든 영화를 상업극장에서 개봉하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비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노력이 또한 필요하다. 독일은 이미 70년대부터 상업극장의 대안으로 ‘공공영화관(Kommunale Kino)’을 설립하는 노력이 있었는데, 이들 공공영화관은 통상적인 상업영화관과 달리 예술영화, 독립영화들을 상영할 뿐만 아니라 고전 명작, 감독전, 배우전 등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본 또한 최근에 독일식 공공영화관을 모델로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공공영화관의 설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배급을 둘러싼 논의는 결국 영화 관람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영화가 거처하는 장소인 극장의 문제를 고민해야만 한다. 극장은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장소이자 영화체험의 공간이며, 영화를 둘러싼 담론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배급정책에 관한 논의가 결국 제작과 흥행의 관점만이 아니라 관객정책과 긴밀하게 결합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와 관련한 모든 논의는 결국 관객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김성욱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