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6년 07월 2006-07-01   1327

[참여사회 인터뷰] 남은 삶, 버마 민주화 불 밝히는 심지가 되리라

버마 민주화 운동가 사라이 툰 딴 박사

지금 국제사회에서 ‘미얀마(Union Myanmar)’로 불리는 나라가 있다. 하지만,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세력은 여전히 ‘버마’라는 국호를 고수한다. 1988년 버마에서는 ‘8888 민주 항쟁’으로 일컬어지는 격렬한 반독재 투쟁이 전개되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하여 30여 년 간 독재를 했던 네윈은 결국 물러났으나 또 다시 쿠데타에 성공한 군부가 집권하고 말았다. 이 때 신군부가 국호를 미얀마로 바꾼 것이다. 신군부는 1990년 총선에서 야당인 NLD(민족민주동맹)이 80.8%의 득표율로 압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권이양을 거부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 세력은 지금도 ‘버마’란 국호를 고수하고 있다.(그들의 뜻을 좇아 이 글에서도 ‘버마’로 표기한다.)

버마 민주화 운동가 사라이 툰 딴 박사

버마 민주화 운동의 스승이자 영화 ‘비욘드 랭군’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을 숨겨주는 교수의 실제 모델인 사라이 툰 딴(Dr. Salai Tun Than)을 만났다. 그는 미국을 떠나 죽음을 각오하고 버마로 돌아가기 위한 장정에 나섰다. 그를 만난 곳은 번잡한 부천역 근처 NLD 한국지부였다. 단촐한 공간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민주화가 이뤄지면 바꾸려고 계획한 버마 국기와 버마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 아웅 산 수치 여사의 초상화. 그 앞에 선 사라이 툰 딴 박사는 78세의 고령에도 청년의 기백이 느껴졌다. 그에게서 우리의 영원한 투사들인 함석헌, 문익환, 계훈제의 모습을 떠올렸다.

독재 부정부패 인권탄압, 버마는 ‘전쟁’ 중

버마의 현실이 어떤지 궁금했다. 한마디로 “정치, 경제, 사회 모두 문제”란다. 그래서 버마는 “군부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 ‘전쟁’ 중”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국민 지도자, 민주 지도자를 죽이고 가택연금하는 것이라 한다. 13년 동안의 가택연금 끝에 2002년 5월 6일 석방된 아웅 산 수치 여사는 2003년 5월 30일 디페인으로 이동하다가 반NLD 군중의 습격을 받았다. 그녀는 다행히 피신했으나, 그 현장에서 70여 명이 살해되었다. 하지만, 신군부는 이 사건의 책임을 NLD에 돌리며 256명을 체포했다. 이 중 아웅 산 수치 여사와 NLD 의장 우틴우 등 107명이 지금도 감금 상태다. ‘디페인 학살’이라 불리는 이 사건 수사는 여전히 미궁이다.

버마는 1인당 GDP가 미화 99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빈국이다.

“월급과 물가의 차이가 많아 생활이 힘들고, 실업자도 많습니다. 경제 정책은 소수에게 혜택을 주는 쪽으로 결정되고요. 부정부패의 심각성 또한 말로 다 못하지요.”

버마는 다종족 국가이다. 가장 큰 종족은 버마족으로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한다. 이 밖에 카렌족, 카인족, 샨족, 러카인족, 친족, 몬족, 인도인, 중국인 등이 있다. “소수민족들은 기본권조차 누릴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강제 노동, 강제 이주, 군인이나 무장세력에 의한 살해와 성폭행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이 지금 난민으로 국경지역을 떠돌고 있다.

금지된 말, 민주주의 인권 평화

버마에서 민주주의는 불온한 말이다. 인권, 평화 등과 함께 금지된 말이다. 사라이 툰 딴은 군부독재체제의 문제로 우선, “기본 인권이 없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길 없는” 현실을 들었다. 또한, 불교 신자가 90%인 버마에는 소수 종교인 기독교와 무슬림에 대해 제약이 심하다.

“나는 기독교인인데 종교의 자유가 없다보니 감옥에선 기도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 역시 그에게는 간과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 역시 소수민족인 친족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감옥에서 본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유엔 인권 대사가 감옥을 찾아가 장기수와의 인터뷰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국은 군인을 장기 수감자로 둔갑시키는 것은 물론,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가 들통이 났지요.”

버마에는 1,000명이 넘는 양심수가 있고,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군부의 탄압을 피해 고단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농대 교수에서 민주투사의 길로

사라이 툰 딴은 원래 농대 교수였다. 1965년 군 장성이 교수를 주먹으로 때리는 폭행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1988년 본격적으로 반독재활동을 시작한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구성된 학생 조직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총선을 요구했고, 사람들에게 선거와 민주주의를 가르쳤습니다.”

그 이후 낙향한다.

“시골에서 2년 동안 살면서 농부들을 돕고 제 전공 분야의 연구를 했지요. 그런데 군인들이 찾아와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등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많았어요.”

박사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2001년 버마 양곤 시청사 앞에서 민주화를 호소하는 1인 시위를 했다. 10분도 되지 않아 끌려가 7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투쟁은 인권의 사각지대인 감옥 안에서도 계속됐다.

“감옥에서 인권 침해를 많이 당했어요. 나보다도 주위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단식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안 먹으니까 군인들이 겁을 먹고 그를 석방했다. 2001년 12월 시작된 감옥살이는 2003년 5월 4일 그의 생일에 끝이 났다.

감옥을 나온 그는 국제사회에 버마의 현실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여권을 신청한다. 하지만 여권 발급은 2년이나 걸렸다. 2005년 11월에야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버마에서의 감옥생활을 다룬 책과 농업교재를 냈고 민주화 시대를 대비해 헌법을 준비하는 모임에 참여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

이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물론 주변에서는 말렸다.

“미국서 살고 있는 자식 둘이 있는데도 애들 집에 머무르지 않고 버마관련단체에서 생활했어요. 버마로 돌아가지 말라고 애들이 울기 때문이었죠. 만나면 마음 아프니 오지 말라고 하고 자식들을 피해 다녔어요.”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도 망명을 권유하며 귀국을 말렸으나 그의 뜻을 꺾지 못했다.

“나는 죽어도 버마에서 죽겠다고, 버마에 가서 평화적으로 시위해야만 버마가 변할 수 있다고 대답했어요. 누군가 도와주기만 기대하고 있다면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평화주의자다.

“나는 평화적으로 투쟁하는 것을 좋아해요 군인들이 총을 쏘면 맨 앞에서 맞을 겁니다. 이제 버마 사람들은 두려움을 버리고 모두 참여해 평화적으로 투쟁해야 합니다. 평화적인 투쟁은 버마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초조해 했다. 버마 군사정권은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있고, 아웅 산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이 다시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교역에 앞서 민주화에도 관심을

국제사회는 버마의 독재와 인권탄압을 비난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대두하고 있다. 그 역시 유엔의 개입을 요구한다.

“군부가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고, 소수 민족에 대한 탄압으로 난민이 발생하고 있어요. 마약이 버마에서 생산되어 세계로 거래되고 있고 에이즈도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버마의 민주화를 돕는 것은 인류 평화를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라크식의 무력개입은 절대 아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국에 들른 것도 버마 민주화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서다. 최근 한국 기업들이 버마의 전력 개발에 참여하는 등 버마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무역이나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독재 체제에서는 일부 사람들 배만 불리는 것이지 서민들에겐 전혀 혜택이 돌아가지 않죠. 버마에 투자하고 싶다면 먼저 버마 민주화에 관심을 가져주고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조국에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교육에 온 몸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꼭 입국합니다.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할 겁니다.”

노운동가는 결연하게 말했다. 그가 즐겨 부른다고 말한 투쟁의 노래 “We Shall Overcome”처럼 버마의 민주화는 언젠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사라이 툰 딴 박사는 태국 외무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수지 여사의 환갑에 맞춰 6월 19일 버마로 귀국하려던 그의 꿈은 비행기를 타기 직전 무산되었다. 그 날, 한국에서는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되었고, 국회의원 63명은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는 편지를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

글 김정인 「참여사회」 편집위원,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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