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6년 07월 2006-07-01   963

게으름 부릴 수 있는 권리의 불평등

현대인은 노동과 여가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 노동이 절제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긴다면, 여가는 절제를 뛰어넘는 쾌락을 추구한다. 근대이전의 사회에서 여가는 사회적 특권을 향유한 계급의 전유물이었고, 대다수의 평민들은 노동 중심의 삶을 살았다. 심지어 19세기 말에 들어서면 작업 도중 불필요한 잡담도 금지되고, 노래를 부르거나 하는 광경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문자 그대로 작업장은 일하는 장소여야만 했다. 여가는 노동의 영역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공동체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사적인 자유시간의 몫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여가가 노동에서 소외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먹고살게 되면서야 보이기 시작한 여가

현대사회의 여가도 다르지 않다. 긴 노동시간과 높은 노동 강도, 그로 인한 피로의 누적. 노동자들은 여가시간이 주어지더라도 피로감 때문에 그 ‘자유시간’을 창조적이고 활동적으로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이든 빨리 하기를 원하고, 서두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빨리빨리 병’이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먹고살기 힘든 고통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던 시절이었다.

1960년대의 경제개발계획은 그 대응책이었다. 이 시기 우리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고속도 아닌 초고속의 속도감이 자리 잡게 되면서, 잠시 멈추어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는 시대착오적인 나태함으로 치부되기 시작하였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온통 힘을 쏟다 보니, 생존 이상의 그 무엇에는 지극히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벗어나면서 생활 속에 슬며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여가’이다. 여가는 바쁜 가운데서 달리 활용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뜻한다. 되돌아봄의 시간, 본래적 생명력을 충전하는 시간, 여가에 내재한 의미이다.

주5일제 도입에도 여가는 불만족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종업원을 둔 기업의 법정 근로 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약 260만 명의 노동자가 토, 일요일을 쉬는 주5일 근무시대가 본격화 되었다. 이렇게 늘어난 여가시간에 대해 우리들은 만족하고 있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려 72.7%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는데, 경제적 부담과 시간부족이 주된 이유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한국의 직장인들은 주말 활용방안으로 퇴직 대비, 소득 증대, 자기 계발 등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계발에 관심을 둔 이들을 일컫는 ‘샐러던트(saladent)’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여가시간을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직장인은 영어와 컴퓨터는 물론이고 제2외국어와 자기 분야의 지식을 키움으로써 성공적인 경력 관리를 위해 주말 시간을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직장인 10명 중 7명이 ‘투잡스(two jobs)’에 관심이 높다니 늘어난 시간에 소득증대가 큰 관심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주말창업으로 소득 증대를 꾀하고 장기적으로는 창업을 통해 퇴직 이후를 대비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한다. 여가가 여유분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틈새를 메워줄 수 있는 물질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새로운 불평등이 되어버린 여가

더욱이 여가는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의 장(場)이 되었다. 성별, 소득, 세대, 직종에 따른 시간 활용의 차이로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한다. 주5일제 근무자 중 남성이나 젊은 세대, 사무직 노동자나 고소득층은 레저활동이나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반면 여성, 노인, 저소득층은 텔레비전 시청이나 수면에 소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주5일 근무자는 토요일에 늘어난 여유시간인 3시간 48분을 수면 53분, 가사노동 51분 등으로 사용하고, 교제 및 여가활동에는 1시간 53분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 사이에도 차이가 있어 남성의 경우 자기계발에 11분 더 사용하지만, 여자는 가사노동에 36분을 더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세 이상 성인남녀를 비교해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24분 의무적인 활동을 더 하고 있으며, 여가시간은 남자가 22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노인의 경우 하루의 절반가량인 11시간 16분을 식사 및 수면 시간으로 보내며,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시청으로 보내버린다.

자유인의 삶의 기초, 여가

사정이 이렇다보니 과연 진정한 여가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게 한다.

그리스시대의 여가는 자유인의 삶으로 여겨졌다. 이 시대 여가는 단지 노동을 벗어난 자유시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자신을 훈련하고 경작한다는 의미를 가졌으며, 자유인의 삶의 기초로서 생각했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비로소 여가적일 수 있는 것이며, 오직 좋은 국가만이 시민에게 진정한 의미의 여가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여가를 위해 행했던 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좋은 삶’과 동일한 것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여가적 삶은 그리스 사람들이 추구했던 바로 그 삶이다.

오재환부산발전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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