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를 기억할 때 정부의 기록보관소에 있는 공식 문서와 같은 문서자료나 텍스트를 통해서만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와 같은 일반인은 손이나 타자기, 또는 컴퓨터로 쓴 문서보다 사진이나 이미지, 그림, 영상, 축조물을 통해서 그 시대를 체감하고 그 시대의 삶과 역사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다. 고구려의 벽화가 남겨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라미드나 그 벽화가 없었더라면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물에 반영된 시대상
이처럼 우리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통해 그 시대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뉴욕항에 ‘세상을 밝히는’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신대륙에 상륙하는 유럽의 이주민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의 이미지였으며 이후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제 21세기의 미국의 상징은 세계무역센터 또는 그라운드 제로가 된 듯하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바탕에는 기억과 기념에 대한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숲 속에서 작은 봉분을 보게 되면 누군가가 그 속에 묻혀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돌프 로스(1839~1879)라는 건축가는 그것을 건축이라고 하였다. 피라미드도 무덤이고 고인돌도 무덤이다. 그 작은 봉분이 그 안에 묻힌 사람의 삶의 모든 기억을 담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봉분을 통해 우리들은 그 사람의 삶과 죽음을 기념한다. 그 기념에 의미를 덧붙이기 위해서 우리는 비석을 세우기도 하고, 그 무덤을 치장하기도 한다. 결국 기념한다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다.
우리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시대의 정치적 사건, 전쟁의 승리 또는 패배, 경제적 성과, 사회구조, 일상생활의 역사를 증언하고 기억하고자 그 시대를 상징하는 기념물을 만들어 왔다. 그러한 기념물 중 오랜 시간을 지속할 수 있는 축조물은 가장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의 막강한 힘과 치적을 드러내고 후세에 과시하기 위한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이러한 기념비적 축조물에 집착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기념비적 축조물 또는 기념물은 19세기의 문화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난 시대 인간 정신의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증거물”이자 “주어진 시기의 사고구조와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시대의 기념비 또는 기념건축물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은 우리시대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기념하는 건축물인가?
우리는 해방이후 많은 기념비와 기념 건축물을 계획하고 지어왔다. 6·25기념탑, 유엔참전기념탑, 월남참전기념탑, 항일독립운동기념탑, 4·19기념탑, 5·18기념탑, 독립기념관, 전쟁기념관, 이승복기념관, 백범기념관 등과 같은 대표적인 것들 이외에 수많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부분의 축조물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들이 있다. 거대주의, 축이 강조된 좌우대칭, 수직적 요소의 강조, 자기 과시적이고 남성적인 조형이 그것이다. 이것들 앞에 서면 왠지 사람들은 왜소해 보인다. 공격적이고 억압적인 형태 앞에서 왠지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고 주눅 들게 된다.
좌우대칭의 미학은 고전주의 건축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전제주의 국가에서 지어진 건물이나 조형물에서도 많이 채택되는 방식이다. 실제로 스탈린 시대의 구소련에서도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고, 2차대전 중의 일본 건축양식 중 제국주의 양식의 건물들도 좌우대칭이 중요한 요소였다. 안타깝게도 용산에 지어진 전쟁기념관 건물의 경우 일본 식민지 시기의 제국양식과 그 형태나 디자인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진전을 이룬 뒤에 지어진 건물이나 기념비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필자는 5·18광주민주항쟁 기념비를 보면 민주적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독재시대의 산물이 독립기념관의 기념비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가령 그 기념비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월남 참전 기념비라고 설명해주더라도 그 설명에 의문을 품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5·18광장에 들어선 광주 민주의 종을 보면 차라리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여기에도 한국에서 제일 큰 범종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만 뭔가 대단한 의미가 부여되고, 그 앞에 설치된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표지석과 기념비는 주요 공직자나 저명인사의 홍보비가 되어버렸다. 더구나 이 종각의 위치도 5·18광장과 금남로로 연결되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다. 결국 5·18기념식에 5·18 관련 단체가 참석을 거부하는 바람에 울리지도 못하는 종이 되어버렸다.
기념물은 현재를 보여주는 증거물
대표적인 기념건축물 중 하나인 백범기념관의 경우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국민적인 관심 속에 현상공모를 통해 당선된 계획안을 막강한 저명인사로 구성된 건립추진위원회는 건축가에게 설계변경을 강요하였고, 결국 건물은 우여곡절 끝에 완공되었으나 건축가 자신은 그 건물에 대해 자신의 작품임을 부정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결국 지어진 건물은 미국의 링컨기념관과 식민지 시기의 제국양식이 뒤범벅된 건물이 되어 버렸다. 독립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김구 선생의 삶이 과시적이고 억압적인 양식의 건물과 함께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이처럼 우리 시대의 기념비적 축조물 또는 기념물은 우리 시대의 ‘인간 정신의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여기서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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