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6년 09월 2006-09-01   1357

주한미군 범죄 현황과 문제점

1945년 9월 8일, 미군이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첫 발을 들여놓을 때 이를 환영하려던 한국인들은 미국의 요청으로 출동한 일본경찰에 제지당했고 그 과정에 2명이 사망하였다. 미군 당국은 일본 경찰의 행위를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며 두둔하였다.

미군 주둔 이후 한미행정협정(SOFA)이 체결되기까지 한국 정부는 미군범죄에 대한 일체의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그에 따라 어떠한 공식 통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군정기에는 미 군사법원에서 영어로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SOFA가 발효된 1967년까지도 일명 대전협정에 따라 미군당국이 주한미군에 대한 모든 재판권을 행사하였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1967년부터 2005년까지 발생한 미군(군속 등 포함) 범죄는 54,633건이며 범죄에 가담한 미군(군속 등 포함)은 61,934명이다. 67년부터 87년까지 대체로 평균 1년에 1,972건, 하루 5건의 범죄가 발생하였다. 그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0년대 들어 이틀에 3건 정도 발생하는 추세이다. 특히, 2000년 들어 총 발생건수가 5백건대로 대폭 감소하였는데, 이는 1999년 10월 이후 피해액 200만원 미만의 물적 피해 교통사고는 입건하지 않는 제도를 시행하면서 통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SOFA 체결에 따라 한국이 미군범죄에 대한 재판권을 갖게 되었지만 그 행사율은 매우 저조하다. SOFA 규정상 한국정부가 1차적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에도 미국이 포기를 요청하면 호의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군범죄에 대한 재판권 행사율은 1991년에야 처음으로 1%대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 7%에 진입하였고 여중생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국민 비난이 빗발치자 2005년에는 총 290명 중 57명(23.7%)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했다. 재판권 행사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히 낮은 실정이다.

한국정부는 이처럼 70% 이상 재판권 행사를 포기하고 있지만 미군 측은 한국정부의 재판권 포기 요청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우리나라는 2002년 7월 여중생 압사사건을 일으킨 미군 장갑차 운전자와 탑승자 2명에 대해 미군 측에 재판권 포기를 최초로 요청했다. 그러나 미군당국은 이 사고가 공무 중 발생한 사고이며 국제적으로도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재판권 포기를 거부했고, 앞으로도 1차적 재판권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최근 주한미군의 감축으로 인해 미군범죄는 감소될 것으로 기대되나 1971년 미 7사단 철수로 미군이 2만여 명 줄었으나 67년 1,710건이었던 미군범죄가 83년 2,079건으로 오히려 증가한 점에 비춰볼 때 낙관하기만도 어렵다. 미군범죄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더 많은 시민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고유경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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