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8년 07월 2008-06-02   674

이슈 1_17대 국회

17대 국회 평가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 joon57@mju.ac.kr

17대 국회의 시작

2004년 4월 15일에 실시한 제17대 총선은 탄핵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헌정 초유의 상태에서 실시한 선거라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되었다. 결과는 의정 56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화 진보세력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총선 사상 처음으로 채택된 1인 2투표제가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정치적 효과를 내서 민주노동당은 비례 의석 8석을 포함해 총 10석(3.3%)을 확보해 창당 4년 만에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둘째, 초선 의원이 전체 299명 중 187명(62.5%)을 차지할 정도로 신진 정치 시대가 열렸다. 각국 의회 엘리트에 대한 비교·연구에서는 ‘공직 경험’과 ‘다선 여부’라는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의원들을 4가지 경력 유형으로 분류한다. 즉 공직 경험이 없는 초선 의원은 ‘아마추어형’, 공직 경험이 있는 초선 의원은 ‘단계적 성취형’, 공직 경험이 없는 다선 의원은 ‘의회주의자형’, 공직 경험이 있는 다선 의원은 ‘경력주의자형’ 등으로 구분한다. 17대 총선 당선자를 이러한 경력 유형에 따라 분류해 보면, 아마추어형이 38.1%로 단계적 성취형(24.3%)보다 훨씬 많았고, 의회주의자형(19.1%)이 경력주의자형(18.4%)보다 약간 많았다. 특히 아마추어형은 16대 국회(22.3%)때보다 15.8% 포인트 많았다. 셋째, 현역 의원의 재선율이 낮았다. 16대 의원 중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을 모두 포함해 17대 총선에 다시 출마해 당선된 사람은 39.1%인 99명에 불과했다. 16대 국회의원의 60% 이상이 교체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이 전체 국회의원의 10%를 훨씬 넘는 여성 정치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16대 총선에서 여성 의원의 점유율은 5.9%(16명)에 불과했지만, 17대 총선에서는 13.0%(39명)로 그 비율이 높아졌다. 이상과 같은 17대 국회 충원 구조에서의 획기적인 변화는 의정 활동면에서 역대 국회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4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17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과연 국회 본연의 기능을 수행했는지에 맞춰질 수 있다.

의회 본연의 기능을 망각한 17대 국회

대통령제 국가에서 의회가 수행해야 할 3대 핵심 기능은 입법 기능, 대표 기능, 행정부 견제 기능이다. 올해 5월 24일을 기준으로 17대 국회 총 법안 발의는 7천489건이었고, 그 중 의원 발의는 6천387건(85.3%)으로 정부 제출 법안(1천 102건)을 압도했다. 의원 발의 건수는 15대 국회(1천144건)의 5.6배, 16대 국회(1천912건)의 3.3배에 이르렀다. 하지만 17대 국회의 의원 법안 가결율은 21.2%로 15대 국회(40.2%)와 16대 국회(26.8%)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반면 정부 제출 법안 가결율은 51.1%로 상당히 높았다.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은 둘 중 하나가 정식 법률로 공포된 반면, 의원들이 낸 법률안은 5건에 4건꼴로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원들의 입법 능력이 부족하거나 의원들의 생색내기 실적 경쟁이 과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태는 법안 발의만 신경 쓰고 통과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인 것이다. 민노당 노회찬 의원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17대 국회는 “정당 차원의 정략적 목적 아래 발의한 것 말고는 책임지는 일이 없었다. (의원)개개인의 의지에 의지하다보니 부실 법안이 많았다”.      
 
한편 17대 국회의 대표 기능은 입법 기능에 비해 활발하지 못했다. 의회 정치에서 ‘대표’란 의원들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역 주민과 형성되는 관계이다. 그런데 17대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대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였다. 의회란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회에 구속력 있는 법을 제정하는 회의체다. 그런데 한국 의원들은 자신들도 당 대표와 같이 동등하게 국민을 대변하는 독립된 헌법 기관이라는 인식이 없다. 또한 한국의 원외 정당체제에서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 당 대표가 당의 모든 운영과 재정을 관장함으로써 의원들이 국회직보다는 당직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재선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의원들은 지역 주민보다는 계파, 국익보다는 정파적 이익, 직능 대표보다는 사익을 쫓았다. 자신의 소신과 철학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 당론에 쉽게 종속되고 특정 계파에 줄서기를 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년 내내 여당은 친노무현 대 반노무현, 야당은 친박근혜 대 친이명박으로 나뉘어 패거리 싸움만 했지 진정 국민을 사랑하는 ‘국사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의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은 훼손되고 국회 고유의 기능인 대표 기능은 철저하게 망가졌다.

 끝으로 17대 국회도 여전히 생산적인 행정부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국회는 ‘행정부 견제’와 같은 고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부상했다. 대통령제하에 있는 한국 국회의 입법 과정은 ‘행정부 대 입법부’라는 관계 속에서 수행되기보다는 오히려 ‘정부·여당 대 야당’이라는 내각제 구도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즉 여당 의원들은 국민보다는 정부와 일체감을 가지면서 입법 활동을 하고, 야당 의원은 의정활동의 목표를 정부·여당을 반대하는 데 맞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의원들은 입법부 구성원으로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파적인 이해를 대변함으로써 여야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고착화시키고, 국회를 파행으로 이끌었다. 17대 국회에서도 국회는 갈등 조정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 증폭의 장소로 전락했다. 특히 17대 국회 출범 초반부터 신문법, 과거사법, 국가보안법, 사학법 등 4대 개혁 입법을 둘러싸고 진보-보수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국회가 파행되고 민생은 실종됐다. 오죽하면 국회 운영위원회가 2005년 12월에 정책연구 개발 과제의 하나로 실시한 ‘국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서도 밝혀졌듯이, 국민들의 68.1%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인 역할을 한 기관으로 국회와 정당을 지목했다. 한마디로 17대 국회도 여야간에 협력과 상생보다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였다. KSDC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70.8%가 입법부와 행정부의 갈등이 ‘심각하다’(‘매우 심각하다’ 24.3% + ‘다소 심각한 편이다’ 46.5%)고 응답했다. 더 구체적으로 무려 88.5%의 국민들이 여야 갈등이 ‘심각하다’(‘매우 심각하다’ 51.8% + ‘다소 심각한 편이다’ 36.7%)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하면 17대 국회는 시작은 화려했지만 끝은 초라한 ‘시화종빈(始華終貧)’의 국회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일하는 국회, 상생 국회’를 표방하고 화려하게 출범했지만 제대로 된 민생 법안을 생산하지 못하고 파행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무책임과 파행으로 점철된 17대 국회에 대한 일반 국민의 평가도 가혹했다. 국민들의 5.3%만이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국회가 발목을 잡아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66.0%가 동의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에서는 17대 국회는 탄핵을 주도한 16대 국회보다도 일을 ‘잘 못했다’는 응답자가 66.4%로 ‘잘했다’(8.7%)보다 무려 8배 가까이 높았다.

능동적인 국회 원해

국회가 입법부로서의 위상을 견지하고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 지 벌써 60년이 되었다. 어떤 때는 행정부의 시녀라는 오명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큰 틀 속에서 보면 의회 민주주의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런 오욕과 발전의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회는 국민에게 철저히 불신을 받고 있다. ‘능동적 ’ 국회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주변적’ 국회로 전락하고 있다. 메지(Mezey)는 의회의 정책 형성력과 의회에 대한 국민 신뢰라는 두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각국 의회 유형을 분류했다. 정책 형성력이란 의회가 어느 정도 행정부의 제안을 수정하고 용이하게 거부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 국민 신뢰란 의회가 국민으로부터 어느 정도 지지를 받고 있는가를 지칭한다. 미국 의회는 행정부의 제안을 대폭 수정하고 용이하게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대안을 제시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강한 정책 형성력과 국민으로부터 지지가 높은 ‘능동형’ 의회의 전형이다. 한편 한국 국회는 민주화 이후에도 행정부 안에 대해 대안 제시나 의미있는 거부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낮은 수준의 정책 형성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도 상당히 낮다. KSDC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62.0%가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고작 5.0%에 불과했다. 더구나 국민들의 5.3%만이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마디로 한국 국회는 ‘주변적 의회’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사회 과학 영역에서 과학적 설명이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관찰과 경험을 통해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한국 국회가 반세기를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나, 아직도 독자적인 정치적 위상과 권위를 확립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개혁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원인은 국회 제도, 정당 구조, 선거 제도와 정치 과정 등이 의원들의 생산적인 의정 활동을 위해 필수적인 요건인 자율성, 전문성, 책임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하게 훼손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의원들은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상호 존중과 의원 긍지에 대한 불문율이 존재하지 않으며 상호 비난과 의회 권위 죽이기에 익숙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18대 국회가 걸어야 할 길

의정 60년을 맞아 대한민국 국회가 주변적 국회에서 능동적 국회로 바뀌려면 18대 국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국민 우선의 국회, 일하는 국회, 상생 국회, 개혁 국회’의 길을 걸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국민 우선의 국회가 되려면 계파와 지역이 아니라 국민과 자신에게 줄을 서고, 국민이 요구하고 체감하는 정책에 몰입하며, 국민의 편에 서서 여야가 함께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려면 연중 상시 운영 체제를 만들고, 불광불급(不狂不及)의 도전 정신으로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 상생 국회를 위해서는 지시와 통제의 수직적이고 비생산적인 불문율에서 벗어나 상호호혜와 의원간 예의를 존중하는 수평적이고 생산적인 불문율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의원들을 강제적 당론의 덫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당론과 당론이 부딪히면 의원들의 자율성은 사라지고 파행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중요하고 민감한 정치 현안일수록 여야 의원간에 교차 투표가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국회법 제114조 2항에서도 명시된 자유투표의 정신을 살려 의원들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속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혁 국회가 되려면 의원들이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자신들의 의정 활동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평가받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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