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위당 선생을 생각하다
윤형근 모심과살림연구소 부소장 ecosoul@hanmail.net
“촛불을 켜는데 먼저 초 한 자루에 불을 당긴 다음 그걸로 다른 초에 불을 붙였더니 그때 다섯 살인가 여섯 살인가 되는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촛불을 가리키며 ‘아빠, 왜 불이 저리로 갔는데 그냥 있는 거야?……”
나를 남에게 주었는데 오히려 나는 더욱 풍성하게 남아 있는 거라. 저쪽 촛대로 옮겨가 있는 불도 그게 다름 아닌 ‘나’니까.” (『노자 이야기』 중에서)
“아주 부드러워야 할 필요가 있어. 부드러운 것만이, 생명이 있는 것만이 딱딱한 땅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거든……사회를 변혁하려면 상대를 소중히 여겨야 해. 상대는 소중히 여겼을 적에만 변하거든. 무시하고 적대시하면 더욱 강하게 나오려고 하지 않겠어? 상대를 없애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 다르다는 것을 적대 관계로만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말이야.” (『좁쌀 한 알』 중에서)
세상의 의(義)를 구하는 촛불들이 잃지 말아야 할 자세, 비폭력을 넘어 평화를 찾는 태도…….
스승이 그리울 때
길을 잃고 미혹에 빠졌을 때 지혜를 구할 스승이 있는 자는 행복한 사람이리라. 세상이 어지럽고 소란스러울 때, 길을 열어줄 어른이 계신 곳은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세상이 요동치는 이즈음,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십수 년이 지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말씀과 발자취를 그리워한다.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었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이 단 한 번 보고 홀딱 반했다는 사람, 목사 이현주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이라 했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 했던 사람, 소설가 김성동과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기고, 판화가 이철수가 진정한 뜻에서 이 시대의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는 꼽았던 사람…….
이런 여러 사람들이 선생을 만났던 감동 그대로 나는 무위당 선생의 말씀과 발자취를 전할 재주가 없다. 생전에 몇 번 뵐 수 있었던 행운 탓에 이번처럼 글로 선생을 알려야 할 때가 있으나 주제넘고 과분할뿐더러 자신도 없다. 다만 선생의 행적과 말씀을 되새길 수 있는 책이 몇 권 있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선생은 글을 거의 남기지 않으셨다. 선생의 이름을 걸고 처음 세상에 나온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는 강연과 대담을 묶은 것이고, 『노자 이야기』는 이현주 목사와 이야기 나누며 노자 81장을 풀어놓은 것이고, 10주기를 기념하여 나온 『좁쌀 한 알』과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는 주위 사람들이 겪은 선생님에 대한 일화집이고, 또 선생님을 알고 지내던 후학들이 선생님을 기리는 글 모음이다. 그리고 서예가로 글씨와 난초 그림을 담은 도록(圖錄) 몇 권이 있다. 얼마 안 되지만, 이 책들만으로도 선생님의 진면목을 살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오늘의 세계화 체제 속에서 시장 전체주의 논리가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망가뜨리고 있는 시대에, 이런 상황일수록 용기를 잃지 말고, 만물일체(萬物一體)와 천지동근(天地同根)의 이치를 깨달으며,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로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필요에 대해서 말할 때, 무위당 선생의 간곡한 음성에는 뒤틀린 삶으로 인하여 크고 작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과의 근원적인 공감과 연민, 그리고 그들에 대한 자애가 넘쳐흐르고 있다.”(김종철, 「무위당과 공경의 사상」,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중에서)
선생은 글을 쓰기보다는 말씀을 나눠주시는 분, 말씀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분이셨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시고 따뜻한 위로와 삶의 지혜를 나누셨기에 오랜 군사독재 치하의 숨 막히던 시절, 원주는 반체제 지식인, 활동가들이 숨을 돌리는 안식처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무위당 선생의 너그럽고 넓은 품 때문이었고, 그 품에서 휴식을 취한 그분들은 위로와 용기를 얻어 다시 싸움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원주 봉산동 자택에는 군 장성에서부터 장바닥 아주머니들까지 선생님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찾는 사람은 누구라도 허투루 대하지 않고 지극함으로 따뜻하게 맞아 사람마다 그 서 있는 자리에 맞게 가야 할 길을 일러주시곤 하셨다.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을 어떻게 할지를 소중하게 여기라 하시며, 공무원에게는 민(民)을, 장사꾼에게는 손님들을 하늘처럼 섬기며 정성을 다하라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김지하 시인이 증언한 이런 일화도 있다. 봉산동 다리 건너에 있는 본댁에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원주시청 앞 찻집까지 가시는 데 보통 한 시간에서 두 시간 반이 걸렸단다. 가시면서 이런 좌판, 저런 손수레, 바구니 장사 아주머니, 하다못해 지나가는 나그네에, 동네 순경까지 만나서 소소한 이야기들, 즉 아버지 잘 계시냐, 조카 결혼생활은 잘 하느냐, 요즘 사는 게 어떠냐,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셨다는 것이다. 민초들의 삶과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쁨과 슬픔, 아픔을 함께 나누는 자애로웠던 이런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수성 예민한 소녀들과 유모차를 끌고나온 어머니들의 목소리에 단 한 번만이라도 귀 기울이며 그들의 마음을 읽어줄 사람이 왜 이리 절실하고 그리운지…….
선생이 그린 난초가 민초의 얼굴을 닮았고 그 얼굴에서 부처의 미소가 발견되는 것도 우연이 아닐 터이고, 작고, 여리고, 하찮은 미물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허투루 대하지 않고 공감과 연민, 자애로 감싸던 선생의 태도가 생명사상으로 이어졌음을 미루어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이 과연 의로운 일입니까?
한 번은 무위당 선생께서 한살림 사람들에게 맹자(孟子)를 인용하시면서 경쟁과 효율만을 좇는 산업문명에 대해 일침을 가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 강의는 유교를 가부장적 보수 이데올로기라 하여 폄하하고 있던 나의 오만을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우려는 태도를 놓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 어떤 사물도 스승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나라에 큰 일이 불거질 때마다 유독 그 강의가 생각나 맹자를 뒤적거리곤 한다.
양나라의 혜왕(惠王)이 맹자에게 묻는다. “선생님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져오셨겠지요?” 그러자 맹자가 답한다. “만약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하시면, 대부들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내 영지(領地)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고, 선비들이나 서민들까지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위아래가 서로 다투어 이(利)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논리 정연한 맹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만승(萬乘)의 천자를 시해하는 자는 필시 천승(千乘)의 제후일 것이고, 천승의 제후를 시해하는 자는 필시 백승(百乘)의 대부 중에서 나올 것입니다. 일만의 십분의 일인 일천을 가졌거나 일천의 십분의 일인 일백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결코 적게 가졌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의(義)를 경시하고 이를 중시한다면 남의 것을 모두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진 자로서 자기의 부모를 저버린 자가 없고 의로운 자로서 그 임금을 무시한 자가 없습니다. 왕께서는 오직 인(仁)과 의를 말씀하실 일이지 어찌 이를 말씀하십니까?”
그렇다. 문제는 ‘국익(國益)’이었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심지어 최근 광우병 쇠고기 수입까지 모든 나라일 선택의 기준이 이익이 되는 일, 돈이 되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맹자는 말한다. “모두들 이익만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나라의 리더들이 이로움만을 추구한다면, 공무원들이나 지식인들, 나아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이로움이 될 것입니다. 모두 자기 잇속만 차리게 되면 나라에는 인권도, 정의도 사라질 것입니다. 공무원들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자기 잇속만 챙기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지식인들이 인권이나 정의를 말하지 않고 주판알만 튕긴다면, 모든 사람들이 제 배 채우기만 급급하다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명분 하나 없는 더러운 침략 전쟁에 군대를 보내 이국땅 아이들을 사지(死地)로 모는 데 일조하는 것도 국익을 위해서다. 농업을 버리고 자동차를 택한 한미FTA 체결도 결국은 경쟁과 효율이 가져올 이로움 때문이다.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으로 이로움이나 경쟁력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이로움이나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모든 정책의 기준이 이로움과 경쟁력이 되었고, 잇속 잘 챙긴 사람들이 청와대와 장차관 자리에 앉았다. 결국 국익을 위해서라면, 이로움이 생긴다면, 자연을 거슬러 생긴 광우병의 위험이 상존하는 쇠고기 몇 조각 수입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게 우리의 현실이고, ‘이것만이 살 길’이라고 내세운다. 우리는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의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며,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자존(自尊)마저도 내버린 것 아닐까. 그러는 사이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은 더 궁지에 내몰려,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에 육박하는 자살률을 가진 사회가 되어버렸다.
“경쟁과 효율을 따지게 되었을 때에는 일체가 어떻게 되느냐. 적수가 돼. 그렇게 되지 않아요? 일체가 적수가 된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오늘날 산업문명이 고달픈 것이 경쟁과 효율을 가지고 따져 올라가기 때문에 한이 없어요. 그리고 인간도 일체가 이용의 대상인 동시에 자연까지도 이용의 대상이니까. 자연까지도 이용의 대상으로서 무자비하게 해오다 보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요? 사람이 살 수가 없게 되었지.”(「왜 한살림인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중에서)
선생이 맹자 이야기를 꺼내신 것은, 지역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는 한살림의 일이 내 가족의 건강을 챙기거나 나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내 잇속 챙기려고 주판알 튕기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였다. 허나 그것은 비단 한살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이 일이 과연 의로운 일입니까?”라고.
“이 시대에 정치를 말한다면, 한반도 전체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든가 나아가서 한반도는 전세계 속에서 이런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든가 해서 거기에 온 국민이 승복할 때에 발전적일 수 있지 않겠나?”(『노자 이야기』 중에서)
촛불 든 소녀들의 희망, 유모차를 끌고나온 엄마들의 바람은 ‘국익을 좇는 나라’가 아니라 ‘의로운 나라’, 이제 더 이상 경쟁과 효율이 아니라 자연과 공생하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 아닐까?
사람이 지켜야 할 온전한 도리
원주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가톨릭의 평신도운동을 일으키고, 정의구현사제단, 가톨릭농민회, 민청학련과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뒷바라지하며, 강원도 일원의 지역사회개발운동, 신용협동조합운동, 유기농업운동, 생협운동의 주춧돌을 놓고, 한살림운동에 앞장 서셨다는 대략의 발자취만 따져도 그 공적이 적지 않건만, 선생이 남 달랐던 것은 말년에 호(號)조차 ‘좁쌀 한 알’이라 스스로 몸을 낮추며,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고 공적이라 내세운 일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이름조차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인데, 그것은 전적으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이나 자주 인용하셨던 노자(老子)의 “낳았으되 소유하지 않고(生而不有), 키웠으되 부리지 않는다(長而不宰)”는 구절을 몸소 실천하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의 실천은 우리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내가 옳은 일 했느니, 내가 잘했으니 하고 떠들면서 자기를 내세웠을 적에는 뭐냐 하면 그걸 가지고자 하는 것이거든. 그랬을 적에는 벌써 오류를 범하게 되는 거지. 편집(偏執)되는 거 아니겠어?”
그렇더라도 말씀이 기록되어 책 몇 권으로라도 선생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선생의 말씀을 거역하고 후배, 제자들이 선생의 사상적 자산을 잇기 위한 ‘무위당 좁쌀 만인계’(http://www.muwidang.org)를 최근 14주기를 맞아 조직하기 시작한 것도 너무 늦었지 싶다. 선생의 사상과 실천이 정리되고 다듬어져 우리가 길을 가는 데 사표(師表)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녕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마음이 심란하고 미혹될 때, 꼭 무위당 선생의 책을 펼쳐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마치 오늘 들려주시는 말씀 같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의 한 구절로 이야기를 갈무리하련다.
“특히 중요한 것은 모든 거와는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다. 하나라는 것, 모든 생명체와 모든 유기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여직까지 경쟁의 시대에서, 또 인간의 편리함만 생각하고 있던 그러한 시대에서 온 그러한 습관 때문에 모든 것을 가리게 되고 모든 것을 일일이 따지게 되고 어떤 때는 자기 스스로만 생각하게 되고 독선적으로 생각하게도 되고, 인간의 횡포와 독선이 얼마나 이 자연을 망가뜨렸기에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게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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