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8년 07월 2008-06-30   1425

특집_유가 폭등이 미치는 영향: 수수께끼와 같은 초고유가 시대 서민들의 삶

수수께끼와 같은 초고유가 시대 서민들의 삶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chohk02@empal.com

 

작년 말 국제유가가 갑작스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을 때, 원유시장 분석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배럴당 100달러를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며 입을 모았다. 실제로 당시 국제유가는 100달러 고지를 두고 다가서다가 다시 물러나는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신년 벽두부터 그 마지노선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그 이후 국제유가는 마치 봇물이 터진 듯 순식간에 130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150달러 고지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 폭등은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 1990년대 국제유가는 배럴당 10달러대에서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고, 2003년에 이르러서야 배럴당 평균 20달러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이후 이라크 전쟁, 나이지리아, 케냐, 수단의 내전 등 주요 산유국의 정세불안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급상승세를 보이긴 했으나, 2007년 작년 초반까지만 해도 50~60달러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언제 국제유가가 제자리를 찾을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국제유가폭등은 원유시장 전문가들조차도 당혹스러워할 만큼 비정상적인 기현상이다. 80년대 이후 저유가로 인한 풍요로움에 젖어 있었던 세계경제에게 갑작스런 유가폭등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현재 배럴당 130달러대의 높은 가격도 문제지만, 더 무서운 것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상승속도와 고삐 풀린 말처럼 날뛰는 유가가 거의 통제 불능의 상태라는 점이다. 무서운 상승속도에 전세계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통제 불가능한 국제유가의 초고속 행진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앞으로 유가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도 거의 무의미하다. 원유시장 전문가들이 앞을 다투어 내놓고 있는 국제유가 전망치를 보면, 최고 500달러에서 최저 75달러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러다보니 도움은커녕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국제유가가 정말 시장의 수급상황에 의해 결정된다면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다면 초고유가 시대에 대한 걱정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최근 유가의 움직임이 극도로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국제유가가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어떤 대응이 현명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얘기하지 못한다. 한편에서는 유가폭등과 그로 인한 인플레가 일시적 현상이라며, 너무 흥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 현재의 인플레가 임금인상으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일시적인 인플레 현상이 그다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제원유 실물거래에 시장논리가 재가동한다면, 그리고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로 인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과 달러화 추락이 진정되는 순간이 오면, 국제유가도 제자리를 찾아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감은 현재 국제유가에 낀 투기거품이나 가격조작이 없다면, 80달러대가 정상가격이라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2006년 국제유가가 80달러대에 육박했을 때 아무런 아우성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그 정도 수준에 세계경제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 국제유가가 제자리를 찾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희한한 현실이다.

정부, 서민의 실질소득 올리는 방안 마련해야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초고유가 시대는 그것이 일시적이든 아니든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인플레 망령을 되살려 놓았다. 석유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 현대 사회의 혈액이라고 불린다. 우선 석유는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뿐만 아니다. 석유는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널려 있다. 집안을 한번 둘러보면, 가구, 내부 장식재에서 일상생활 용품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자재로 뒤덮여 있다. 모든 플라스틱 제품은 석유를 주원료로 해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입는 옷, 화장품, 각종 세제, 의약품, 아이들 기저귀, 장난감, 그리고 요즘 연일 서울 도심을 가득 채우며 밤거리를 밝히고 있는 촛불에도 석유에서 추출한 부산물이 주재료로 쓰인다. 또한 먹거리가 우리들 밥상에 오르기까지에도 석유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농산물 재배에 사용되는 비료, 농약, 살충제 등이 모두 석유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유가가 오르면 우리가 먹고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의 가격도 덩달아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고유가와 함께 찾아온 인플레가 세계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모든 나라에서 소비자들이 유가폭등의 여파를 동일하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중국을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그 충격을 흡수해왔다. 하지만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는 국제유가 상승이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물가상승의 주범이 되고 있다. 물가상승의 최대의 피해자가 저소득층과 서민층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요즘 장바구니 물가, MB물가, 백수물가 등 신조어가 탄생했다. 서민층들이 먹고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식료품을 비롯한 기본물품들의 가격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물가가 오른다고 해도 소비를 줄일 수 없는 것이 장바구니 물가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일반 소비자물가지수에 비해 장바구니 물가 상승폭은 3,4배 이상 높고, 그러다보니 서민층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플레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계층이 있다. 현금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인플레로 인해 돈 가치가 떨어지면, 현금자산 가치도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현금자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플레에 대한 공포감도 커진다. 저소득층과 부유층 재력가들 양쪽이 모두 인플레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다. 물론 저소득층과 서민층들이 인플레로 겪는 고통과 현금자산을 보유한 자산가들의 고통을 비교할 수는 없다. 전자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면, 후자에게는 가만히 앉아 재산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있자니 속이 타는 것에 불과하다.

인플레와 이에 대한 통화정책이 부의 재분배 효과를 갖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년 우리나라 소득 하위 20% 가계는 월평균 36만 원의 빚을 끌어다 쓰고 있는 데 반해, 상위 20% 가계는 매달 192만 원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가 현금자산이 많은 부유층들에게는 재산규모 축소를 의미한다면, 이와는 반대로 빚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빚의 규모가 줄어든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 자체로 일종의 부의 재분배 효과를 갖는다. 또한 요즘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흔히 듣게 되는데, 고금리로 혜택을 보는 쪽은 부유층들뿐이다. 이에 반해 빚을 내서 살아가야만 하는 저소득층이나 서민층들에게 금리인상은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고, 이자부담만 높아져 오히려 또 다른 고통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정부가 물가안정을 맹목적으로 추구한다면, 부유층만을 위한 정부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인플레로 인해 서민층이 겪는 고통은 소득이 물가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물가상승 속도에 맞추어 소득이 올라간다면 인플레의 직접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물가상승의 주범이 고유가이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안정되기 전에는 그 어떤 물가잡기 노력도 한계가 있다. 물가상승으로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잡히지 않는 물가를 잡겠다는 헛약속보다는 서민층의 실질소득을 올리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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