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건국대 법대 교수 shan59@naver.com
한국의 검찰은 아주 특별한 권력이다. 그들은 수사와 기소라고 하는 형사사법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정식재판도 받지 않은 채 피의자를 처벌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형사사건이 발생하면 그들의 역할은 피의자를 우선 구속하는 일에 집중된다. 수사는 그 후의 일이다. 혐의만 인정될 수 있으면 일단은 구속시키고 이 구속된 상태를 미끼로 자백을 이끌어낸다. 형사재판과 법관이 하는 일은 사후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에 한정된다.
여기서 무죄추정이니 인신보호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검찰이 혐의를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은 일단 검찰에 의하여 유죄판정을 받는다. 물론 그 형식은 구속영장이고 그 결과는 구속이라는 사실상의 처벌이다. 구속되면 유죄라고 간주해버리는 세간의 편견은 이를 더욱 가중시킨다. 구속되는 것 그 자체로 그 사람은 범죄자이자 일탈자이고 사회적 낙오자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검찰의 손에 달려 있다.
그들의 권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기소독점주의니 기소편의주의는 그 특별한 권력을 완성시키기 위한 장치가 된다. 마음에 들면 풀어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소하는 막강한 재량권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에 기대어 선 검찰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했던가. 이들의 그 막강한 권력도 정치권력 앞에서는 무력하다. 현 검찰제도의 태동기인 일제하에서부터 권위주의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혹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형사사법 권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지난 정권들에서까지 한국의 검찰은 정치권력을 숙주로 삼아서만 자신의 권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스스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기를 욕망하였기에 한국의 검찰은 보다 강력한 권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권력을 사유화하기를 갈구하였기에 한국의 검찰은 국민의 지지로부터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다. 198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재벌을 중심으로 한 자본권력이 지배력을 확보하게 되고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의 광풍까지 몰아치면서 한국 검찰의 숙주는 이원화되는 경향까지 보인다. 삼성그룹에 대한 수사에서 너무도 잘 드러나듯 이미 그들의 법은 친자본 편향으로 경도되어 있다. “삼성장학생”과 같은 비아냥거림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의 물신주의는 경제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정작 국가신인도의 토대가 되는 법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사법도 우리의 일상이다”
15년 전 우리 시민사회의 주도로 사법개혁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사법도 서비스다”라는 슬로건은 우리 검찰의 권력성을 혁파하고자 하는 외침까지도 아우르고 있었다. 민주화의 진척을 구가하는 오늘날에 와서 이 슬로건은 “사법도 우리의 일상이다”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 누군가가 먼저 가공하여 우리에게 제공하는, 그래서 그 누군가가 주체이며 우리가 객체가 되는 서비스의 개념에서 탈피하여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소비하는 일상의 개념 속에서 사법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제대로 된 배심제로 이끌어내는 과업은 그 한 예일 것이되, 검찰을 중심으로 하는 형사사법권의 작동과정 전반에 대한 시민적 감시와 참여 역시 이런 요청을 실현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검찰의 업무가 수사하고 기소하는 자와 수사받고 재판받는 자의 구획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제기되는 생활욕구들을 형사사법의 체계 속에 유효하게 편입시키면서 그를 통하여 사회질서를 나날이 새롭게 구성해 나가는 민주적·참여적 법치가 실천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조직 자체를 시민들에게 열어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검찰의 권력성을 털어버리고 그 조직의 폐쇄성을 해체해버리는 것, 검찰에 대한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감시망을 확보하고 다양한 의사수렴 절차들을 마련하는 것, 개인과 개인의 권리와 의무만이 충돌하는 형사사법체계가 아니라 공동체적 법감정과 정의감정이 당해 사건에 수렴되면서 그들의 법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법원이 작동하게끔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검찰개혁의 모토가 되는 것이다.
검찰구조부터 바꿔야
검찰을 개혁하려면 먼저 검찰의 구조부터 바꾸어야 한다. 실제 말단검사부터 검찰총장에 이르기까지 10여 개에 달하는 검찰계급의 존재는 가뜩이나 권력지향적인 검사들로 하여금 더욱더 그 권력을 추구하게끔 만든다. 검사동일체니 상명하복이니 하는 것은 이런 위계조직을 설명하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준사법기관이라는 외형에 어울리지도 않는 계층조직을 만들어놓고 이 상층부에 오르는 것을 미끼로 검사들을 통제하고 이 과정에서 형사사법권을 일부의 고위검찰 혹은 그들을 거느리는 정치권력·경제권력이 장악하는 틀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점은 고등검찰청의 존재로 더욱 분명해진다. 3심제를 취하고 있는 법원과는 달리 형사사법절차의 한 당사자적 지위가 예정되어 있는 검찰의 경우에는 미국의 예에서 보듯 고등검찰청이니 대검찰청이니 하는 조직 자체가 불필요하다. 제1심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이라면 당연히 항소심까지 담당하는 것이 논리적인 면에서나 업무효율성의 측면에서도 타당한 일이다. 더구나 재정신청제도가 확대됨으로써 검찰항소제도에 대한 기대가 그리 강하지 않은 현재의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검찰은 수행하는 업무가 거의 없는 고등검찰청을 사수하기에 정신이 없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승진을 위한 수많은 자리를 제공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승진에 탈락한 검사들을 위한 위무의 자리까지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의 존재는 더욱 이상하다. 사건의 수사와 기소는 일선 지방검찰청이 수행하고 있는데도 조직 내에 중앙수사부, 형사부, 마약조직범죄부, 공안부 등 4개 부와 총 9개의 수사과 및 2개의 기획관을 두고 있다. 이는 명실상부하게 조직의 중복이되 그것이 지방/전국이라는 관할권의 문제를 극복하는 수준을 넘어 중앙검찰조직이 지방검찰조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전국적인 사건이나 여러 개의 지역에 걸쳐 발생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사건의 경우 몇 개의 지검을 통합한 합동수사반을 구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팀제 운영이 얼마든지 가능할뿐더러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조직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거의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요컨대 존재이유가 없거나 박약한 곳에 근대사법체계에서는 보기 드문 계층조직을 만들어놓고 검사들을 승진 등의 인사권으로 통제하는 구조가 우리 검찰체제이다. 그리고 일제 이래 국민 위에서 무소불위로 행세하였던 ‘영감님들’의 권력이, 검사장이 부장검사에게 부장검사가 휘하의 검사들에게 폭탄주를 권하는 와중에 하나의 아비투스가 되어 전승되는 기제 또한 여기에 있다.

법무부, 검찰청 감시 감독 기능 제대로 해야
검찰권력이 정치권력 혹은 그와 병행하여 존재하는 자본권력과 결탁하는 또다른 통로는 법무부의 존재이다. 실제 우리 검찰조직은 이들 법외적 권력에 참으로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다. 대통령-법무부장관-법무부 검찰국-일선검사로 이어지는 통제라인이 대통령-검찰총장-대검각부-일선검사로 이어지는 통제라인과 함께 공존하면서 상호 그 효과를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통제의 유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인사권 역시 이런 두 라인을 통해 그대로 작동하고 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법무부의 구성은 이런 이중적 통제를 가능케 하는 가장 두드러진 요소가 된다. 법무부장관은 대통령에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인이다. 그런 법무부장관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하는 법무부의 조직 자체가 검찰로 충당되고 있음은 사법이 곧장 정치에 예속되는 증거이다. 정부조직체계상 검찰청을 감시하고 감독하여야 할 법무부의 주요 보직이 하나같이 검사로 보임됨으로써 외관상으로는 법무부/검찰청이라는 이원조직구조를 갖추고도 실질에 있어서는 법무부=검찰청인 왜곡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런 식의 인적 결합을 바탕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적 수뇌부들이 검찰업무과정에 개입 가능한 무수한 비공식통로들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검찰의 위계조직 해소 급선무
지난 5월 세계은행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한국의 법치의 수준은 OECD국가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정부와 법원이 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법을 자신의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왜곡해버린 한국의 검찰이 존재한다. 국가신인도를 비롯하여 시장의 건전성·공정성을 향한 신자유주의적 맥락에서조차 한국의 검찰은 부정적인 역기능만 수행하고 있음을 이 세계은행의 발표가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해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검찰을 명실상부한 준사법관으로 제자리매김하는 것, 요컨대 검찰을 검찰답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우선 검찰의 위계조직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1인의 검찰관과 그를 보좌하는 다수의 부검찰관으로 구성되는 미국의 검찰제도와 달리 개개의 검사가 곧 형사사법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사법관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 우리 검찰제도라고 한다면 그에 조응하도록 그에게 검찰조직 내에서 최고의 지위를 부여하면 된다.
거기에 무슨 부장검사, 차장검사라는 직책은 필요 없으며 그 업무에 제1심 지방검찰청이 어떻게 고등검찰청이 어떻게 토를 달 일이 아니다. 만에 하나 필요하다면 지검장이나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수사팀을 구성하면 된다.
다만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첨언할 일은 수사담당검사와 공소담당검사를 구분하는 이상한 관행을 조속히 폐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검사가 준사법관으로 독립하여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면 그 직무수행에 대하여 종국적인 책임 또한 독립하여 부담하여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아울러 고등검찰청 그 자체와 대검찰청 내부의 각종 수사부, 법무부의 검찰국은 즉각 폐지하는 한편 법무부의 조직 또한 문민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등검찰청이나 대검찰청의 경우 조직의 중복과 함께 불필요한 통제장치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또한 법무부의 경우에는 그 내부의 검찰국은 폐지하거나 기능을 대폭 축소하여 가장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의 검찰업무만 담당하게 하여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법무부의 모든 구성원은 검사가 아닌 자로 충당되어야 한다. 실제 검사가 수행하는 형사사법권과 법무부 내에서 이루어지는 법무행정은 그 내용이나 업무처리방식에서 질적인 차이를 가진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이 모든 업무들을 검사가 처리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업무의 전문성·효율성의 확보라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검사들로 하여금 인권이나 송무, 변호사 등 법률전문직, 기본적 법률에 대한 입법정책 등 우리나라의 모든 법무관련 업무권한을 장악하게 함으로써 고도의 권력집중이라는 병소만 야기할 뿐이다.
검찰에도 지방자치제 도입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개혁은 검찰업무에 대한 시민적 감시와 참여의 틀을 마련하는 일이다. 법무·검찰조직을 이원화하고 법무부로 하여금 검찰을 견제·통제하게 함은 검찰에 대한 문민적 통제의 첫 단계에 불과하다. 혹은 감찰위원회나 징계위원회 등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완화하고 수사와 기소에 있어서 검찰의 지나친 재량권을 통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몇 년 전 논란 끝에 미봉책으로 그치고 만 공판중심주의는 과도한 검찰권력을 통제하는 유효한 방식이 된다. 아울러 공무원의 부정·부패사건이나 권력형사건, 경제사범 등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영역에 대하여 기소법정주의를 채택하거나 대배심제도와 같은 기소배심제도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시민들이 직접 검찰업무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민사회의 법감정에 부합하는 검찰작용이 이루어지도록 담보해내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과 같은 검찰관료체제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미국의 경우와 같이 검찰사무를 지방단위-예컨대 현재의 고등법원관할지역단위-로 구획하고 그 관할지역의 주민들이 당해 검찰청의 장을 선출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적극 검토하여야 한다. 이 검찰의 지방자치제는 크게는 사법의 지방자치제와 결부되어야 할 것이지만, 반드시 그와 연동될 필요는 없다. 검찰의 업무는 그 자체로서 완결적인 것이 아니라 형사재판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하는 것인 만큼 검사장의 선거제를 도입하는 것은 법원의 경우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다. 그래서 주민들의 생활이 시장-시의회-교육감-경찰청장(자치경찰제의 경우)-검사장이라는 5개의 기관을 통하여 대의될 수 있도록 구조화하고 이를 통해 상호견제와 감시 그리고 적재적소에 주민참여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지역의 법감정 담아낼 사법체계의 형성
대체로 사법개혁의 기본이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국민 위에 군림해왔던 사법·법조제도를 혁파하여 국민의 사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청이며, 둘째는 사법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능동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민주적 사법의 실현이다. 즉 사법의 민주화와 함께 사법의 분권성(특히 지방분권), 사법의 민감성, 사법의 개방성-참심·배심 등은 그 예이다- 등 다양한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사법의 분권성은 아직까지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후기산업화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발전양상은 각각의 생활공동체를 단위로 형성되는 분권화된 법체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국적인 통일성보다는 지역적 특수성, 특히 지역주민의 법감정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사법체계의 형성 및 이를 바탕으로 법공동체의 형성이 더욱 중요한 시대적 요청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검찰은 아쉽게도 이러한 요청에 극렬히 역행하고자 애쓰고 있다. 심지어 그 동안 어렵사리 이루어놓은 개선까지도 되돌려놓는 반동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법치-민주적 법치를 향한 큰 흐름 자체를 바꾸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미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너무 많이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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