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9년 02월 2009-02-01   1221

최성각의 독서잡설_’반권력’이 의무라고 가르쳐준 책들




‘반권력’이 의무라고 가르쳐준 책들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지난 설밑이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이 나라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사람들이 타죽었다. 철거민들 다섯 명과 특공대원 한 명이 그들이다. 그들이 죽자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은 사자(死者)들이 테러리스트, ‘외부세력’, 화염병과 새총으로 무장한 시민들의 안위를 해치는 폭력배들로 몰아붙였다. 그러므로 이야기인즉, 죽어 마땅하다는 해석이었다. 말리지 못할 한 극단적 보수논객은 그들을 화공(火攻)으로 깨끗하게 지상에서 ‘철거시키고’, 살아 있는 철거민들 여러 명을 즉각 잡아가둠으로써 ‘위대한 서울 시민들’의 안녕이 보장되었고, 국가의 정체성이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특공대를 투입한 새 경찰청장 내정자는 특공대원의 장례식이 거행된 국립현충원에서 눈물을 내비치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더욱 확고하게 법질서를 수호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죽은 특공대원이 “단지 경찰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청장 내정자의 그런 애도사는 그가 죽인 다섯 명의 철거민과 참사 직후 즉각 잡아가둔 철거민들이 이 나라에서 제거해야 할 ‘무장폭도’라는, 널리 퍼뜨리고 싶은 믿음에 인장(印章)을 찍는 발언이었다. 그런 애도사가 퍽이나 대견스럽고 믿음직스러웠는지 청와대에서는 그의 퇴임을 설 이후로 미뤘다. 죽지도 않고, 목이 잘리지도 않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위기에도 강하고, 위기가 아닐 때에도 강하다. 그뿐인가. 경찰은 그 막강한 힘만으로도 부족해 깡패들까지 수하에 거느리고 작전을 개시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전에도 늘 느껴온 일이긴 하지만, 이 사건은 근대 이후의 ‘국가놀이’가 얼마나 처참하고 무서운 놀이라는 것을 다시금 가슴 아프게 절감하게 한다. 지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인 국가폭력이 민초들의 마지막 자기보호 본능으로써 손에 든 화염병과 새총을 상대로 무자비한 진압을 마친 뒤, 득의의 개가를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목숨 말고는 더 빼앗길 게 없는 가난한 민초들의 ‘그것’마저, 그것은 그것 자체로 하늘이건만, 그것마저 빼앗아야지만 국가는 마음을 놓을 수 있다니, 이 국가놀이가 어찌 처참하고 비극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시인 고은이 노래했다. 노래라기보다는 외마디 탄식이다.


식민지는 얼마나 자신의 국가를 갈망하는가.
국가는 얼마나 국가의 범죄와 탐욕을 쌓아가는가.
-「국가」전문(고은, 『개념의 숲』, 신원문화사, 2009, 88쪽)



“이 시대 우리들은 모두 불행합니다”


죽은 철거민들은 바보들이다. 왜 대한민국에서 철거를 당하는 팔자로 태어나 화염병과 새총을 들었단 말인가. 철거를 당하지 않는 팔자가 가장 좋겠지만, 재주 없고 재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철거를 당하더라도 ‘엄동설한’에 철거당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기습당하지 않고, 죽이기까지는 않는 온순한 나라에서 태어날 것이지, 왜 하필 이토록 잔혹한 나라에서 태어났단 말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바보들이 바로 바보이기 때문에 흉살(凶殺)을 당했다. 그래서 참사 직후 한 철거민이 국화 한 송이를 영정도 없는 분향소 천막에 꽂으며 울부짖었다. “다시 태어나려거든 철거민으로는 태어나지 말라”고. 그 울부짖음 때문에 겁 많고 소심한 민초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죽기 직전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즈음 필자와 같이 용산 현장을 찾아가 조문을 했던 풀꽃평화연구소 정상명 대표는 그가 발행한 웹진 ‘풀꽃평화목소리’에서 그들이 죽음에 맞닥뜨렸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애도했다.


“갑자기 사방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구치며 자신들을 덮치는 순간,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절망과 비통함은 어땠을까요. 그들 누구도 결코 죽으려고 농성한 것은 아닌데, 이런 결과까지 이르기 위해 농성을 한 것은 절대 아닌데, 농성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서 일었던 절망감은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안녕! 한 마디 인사도 못 남기고, 불길 속에서 세상을 하직한다고 받아들여야 했던 그 순간, 그들은 얼마나 슬프고 무서웠을까요. 집이 헐리자 겪게 된 서러웠던 시간을 보상받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끔찍한 현실이 얼마나 한스러웠을까요. 나중에야 확인되었지만, 그런 강제 철거의 고통을 먼저 겪었다는 이유로 지금 막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되기 위해 그곳 망루 꼭대기에 같이 있다 사망한 그분들에게 세상은 어떤 것으로 해석되었을까요. 무엇보다도 그들은 얼마나 분하면서도 허망했을까요.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들 마음속을 후비던 고독을 감히 누가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특공대의 한 일원으로 죽음을 맞이한 젊은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국가는 그 젊은이를 언제든지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도록 훈련시켰는데, 정작 죽음에 임한 그 젊은이에게 국가의 명령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곳은 과연 죽을 만큼 명예로운 현장이었을까요.”(풀꽃평화목소리www.naturepeace.net, 「이 시대 우리들은 모두 불행합니다」 299호).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저,김종철,이반 공역, 녹색평론사, 2002년

자국민을 향해 자행되는 국가폭력


누가 죽였을까. 국가라는 이름의 힘이 죽였다. 국가란 누구인가? 오로지 부국강병이 그 사명인 국가는 팽창과 존속을 위해 군대와 경찰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국가의 물리적 힘이다. 그 힘은 어마어마하게 무섭고 강하다. 군대는 아시다시피 적군으로부터 나라를 막는 구실을 하기 위해 조직된 폭력조직이다. 적군의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폭력조직’이라는 말에 진저리를 칠 필요는 없다. 경찰은 어떤 존재일까? 자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도적놈을 잡는 구실을 하라고 조직해준 폭력조직이다. 말하자면, 사회의 안녕을 위한 착한 일에 쓰라고 허락한 폭력조직이다. 점잖게 말한다면, 군대나 경찰은 ‘정당한 폭력을 독점하고 행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가 자행한 폭력은 갱들이나 용역직원(속칭 철거깡패들)들이 휘두를 수 있는 폭력과 비교할 수 없이 신성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나 거의 예외 없이 한 나라의 군대와 경찰은 적국보다는 자국민을 괴롭히고 상처를 입히고 죽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곤 했다.

하와이대학의 럼멜이라는 학자는 얼마만큼의 인간이 국가에 의해 살해되었는가,라는 통계를 수집해온 전문가다.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국가에 의해 살해된 인간의 수를 조사해봤더니, 무려 203,319,000명이었다. 2억 명이 넘었다. 나치가 저지른 600만 명, 스탈린 시절 고의적인 아사정책이 있었기에 그 숫자도 포함시켰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살육에 대해서까지 이 학자는 합산했을까 모르겠다. 그런데 경악할 일은 국가가 누구를 죽였는가? 국가가 살해한 대상은 적국의 군대나 양민(외국인)보다는 자국민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럼멜에 의하면, 국가에 의해 살해된 2억 명 가운데 129,547,000명, 약 1억 3천만 명이 자국민이었다. (더글러스 러미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김종철/이반 옮김, 녹색평론사, 2002, 33~34쪽).

꼼꼼한 이 학자의 산수(算數)로 인해 우리는 국가가 그 힘을 허락한 근원이나 바탕이나 토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예의를 차렸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복종을 견지하며 죽을 때까지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리아나 팔라치의 『한 남자 A MAN』(김범경 옮김, 한벗, 1981)를 만난 1981년, 그때 나는 광산촌의 교사였다. 나는 장화에 청바지를 입고 낮에는 광부들의 아이를 가르치고, 기회만 허락되면 광부들과 같이 갱에 들어갔고, 밤에는 세계적인 인터뷰어 팔라치가 경험했던 끔찍하고 비극적이고 무섭고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숨죽이고 읽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결단코 ‘광주’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보다 먼저 터진 ‘80년 사북사태’는 바로 옆동네의 일이었다. 유난히 다른 세기보다 대량학살이 승했던 20세기, 그 학살명령을 내리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던 권력자들만 찾아 공격적인 인터뷰를 펼침으로써 언론학도들로 하여금 ‘팔라치학(學)’을 공부하게 한 긴 머리의 여성, 오리아나 팔라치가 빠진 사랑 이야기는 광산촌의 젊은 교사를 흥분시켰고, 한숨짓게 만들었고, 오랫동안 신열(身熱)로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내가 팔라치의 끔찍하고 무서운 사랑 이야기에서 배운 것은 그것이 반체제의 영웅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빠짐없이 발견되는 허영심에 관한 내용이었다기보다는 ‘반권력’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리스 군부독재에 맞서 영웅적으로 저항한 시인 알렉코스가 출옥하는 날, 그를 인터뷰하러 형무소에 갔다가, 마주치는 순간 감전되듯 숙명적으로 빠진 둘의 사랑 이야기는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는 흔해빠진 연애 이야기가 아니었다.

1976년 알렉코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팔라치는 대저택의 가장 작은 골방에서 1년 반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커피와 담배만 입에 대면서 불덩이 같았던 알렉코스와 함께 싸우면서 나눈 사랑의 이야기를 네 차례나 고쳐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은 혁명의 이야기, 자유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 TNT를 같이 나르는 동지로서의 사랑 이야기, 혁명가의 순정한 광기와 한계에 대한 이야기, 폭정은 결코 저항에 의해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 불법성에 목이 막혀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는 이야기였고, 임신을 시킨 연인에게 낙태까지 시킨 슬픔에 관한 이야기였으며, 무엇보다도 반권력이 자유로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의무라는 확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때로는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기를 쓰고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붙여보니, 권력자들이라는 족속들이 우리 보통사람들보다 결코 더 똑똑하지도, 더 성실하지도, 더 부지런하지도, 더 현명하지도 않더라는 이야기, 단지 그들은 보통사람들보다 더 잔인하고 더 무책임할 뿐 아니라 남달리 탐욕적이더라는 이야기가 그 책에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신성한 우리 개개인의 운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생사를 좌지우지하고, 모욕을 주고 나서도 사과를 하지 않는 데 대한 울분의 책이었다. 그럼에도 권력은 이 지상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언제나 권력이 이기고, 설사 무너져 내려도 다시 전처럼 색깔을 달리하여 다시 일어나는 영원한 권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권력에 복종할 수 없는 사람들, 미친 짓인 줄 알면서도 불복종을 견지하지 않고서는 어떤 삶도 의미가 없다는 깨달음 때문에 죽을 때까지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의 주인이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용산참사는 임기에 의해서든, 항거에 의해서든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명박 정권의 불안과 초조를 드러내는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권력으로 하여금 살인까지 하게 부추기는 더 무서운 힘인 자본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이번 사건에도 그 배후였다는 것을,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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