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9년 06월 2009-06-01   1537

최성각의 독서잡설_천작(天爵)이라는 말을 가르쳐준 다자이 오사무(大帝治)




천작天爵   이라는 말을 가르쳐준
다자이 오사무太帝治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斜陽』 외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다자이 오사무太帝治’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때는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70년대 초반, 독수리 한 마리가 로고로 새겨진 동화문고(44번)를 통해서 였다. 『사양斜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茶川龍之介의 『라쇼몽羅生門』과 같이 실려 있었다.



사라져 가는 ‘문고정신’

그때는 참 문고가 많았다. 그 유명한 삼중당 문고가 있었고, 삼성출판사에서도 한국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붉은 표지에 넣어 싼 값으로 발행했다. 동화문고가 있었고,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같은 고전들을 많이 펴낸 동서문고도 있었다. 감동에 차서 밑줄을 박박 그으며 보았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도 동서문고본으로 처음 접했다.

물론 그 문고들 거의가 세로 조판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가로로 편집된 책들은 읽어도 세로로 조판된 책들은 못 읽는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따라 부르기는커녕 이해도 못할 랩도 잘 부르고, 위험한 브레이크 댄스도 잘 추고, 영어회화도 유창하고, 휴대폰 문자도 귀신같이 보내곤 하는 젊은이들을 나는 우리 세대보다 진화된 세대로 간주하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세대들이 출현했다고 감탄하고 있었다. 우리 세대만 해도 대학생인데도 부모 잘 만나 늘 양복을 차려 입고, 머리 속에 아무것도 든 게 없다고 해도 좋을 법한 녀석들이 졸업하기 바쁘게 덜컥 교사가 되고 공무원도 되던 그런 시절이었다. 재주가 뛰어나도 직장 구하기 힘든 나쁜 시대에 태어난 요즘 젊은이들이 참 안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바로 세로조판의 책을 못 읽는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한글이 알파벳 문자와 달라 가로와 세로로 다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편리한 노릇인데 가로로 조판된 책만 읽을 수 있다니, 눈동자를 위아래로 깜박깜박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한심한 녀석들 같으니라고는…’ 그랬다.

당시 문고판들은 세로조판이 많았고, 그것도 2단으로 조판해서 한 페이지에 많은 분량의 글을 담고 있었다. 물론 가격도 쌌다. 최근에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불려갔다가 망신을 당한 황 아무개의 단편선집 삼중당문고 193번, 『삼포 가는 길』도 500원이었다. 당시 문학공부를 하려던 젊은이들에게 193번은 교과서였다. 그토록 서정적이면서 눈물 나도록 치열하게 1970년대를 묘사하던 그 작가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메시아 사상에 젖어 하필 이때 좌에서 우로 왔다갔다하다니……. 아무튼 삼중당문고보다 더 오래된 을유문고도 1,000원 안팎이었다. 250원짜리 동서문고도 있었고, 박영문고, 정음문고도 있었다.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으로 시작한 삼성문화문고도 1970년대 초반의 출판물이었다. 그 윗세대들, 그러니까 단기 4292년 즈음에 발행된 형님 세대들이 보던 양문문고나 신태양문고, 사상계에서 펴내던 문고도 기억난다.

비록 살림살이 어렵고 나라형편이 가난하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출판인들에게는 출판정신이라는 게 있었던 것만 같다. 싼값으로 양서들을 널리 보급한다는 ‘문고정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풍요로워졌건만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책에 정신없이 비싼 가격이 매겨진 악서와 잡서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으니, 풍요와 정신의 기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판명된 셈이다. 심지어 최근 어떤 출판사 사장이 “지금 시대는 내용보다는 디자인이에요. 디자인으로 승부를 내야 한답니다” 어쩌고 했을 때에는 뺨을 후려치고 싶은 지경이었다. 어떻게 책이라 불리는 서물書物이 거기 담긴 내용이 아니라 디자인으로 승부를 해야 할 것이란 말인가.



하늘이 내린 작위, 천작!

『사양』을 만난 이후,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다 찾아보게 되었다. 처음 접했던 『사양』이 그토록 강렬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내용도 다 잊어버린 그 중편의 무엇이 그리 강렬했을까? 그것은 단 한 마디의 말, ‘천작天爵’이라는 단어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앞부분에 나오던 그 단어만은 잊을 수가 없다.

하늘이 내린 작위 천작! 그 말을 읊조리노라니 가슴 속에서 쓸쓸하지만 환한 빛 같은 게 피어 오른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의 일찍 죽어버린 슬프고 불쌍한 한 천재(?)작가의 생애가 스러지는 석양빛(사양)과 기묘한 조화로 중첩되면서 처음 접했던 그 단어가 환기했던 추억이 그토록 오래 남았던 것이다. ‘천작’이라는 단어는 소설이 시작하면서 곧바로 출현한다.


아침, 식당에서 수우프를 한 스푸운 훌쩍 들이마신 어머님이,
“아.”
하고 나직이 소리를 지르셨다.
“머리카락인가요?”
수우프에 뭐 언짢은 게 들었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아니.”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 스푸운 훌쩍 입 속에 흘러 넘기시고, 딴 생각을 하는 듯한 조용한 얼굴로 옆으로 향하여, 부엌 창 밖에 만발한 산벚꽃을 쳐다보셨다. 그렇게 얼굴을 돌린 채 다시 또 한 스푸운 수우프를 쪼끄마한 입술 사이로 흘러 넘기셨다. 스푸운으로 훌쩍 한다는 표현은 어머님의 경우 결코 과장이 아니다. 부인 잡지 같은 데에 나오는 음식 먹는 예법과는 전혀 식이 다르시다. 내 동생 나오지直治가 언젠가 술을 마시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작위爵位가 있다고 해서 귀족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야. 작위는 없어도 천작天爵이라는 것을 가진 훌륭한 귀족도 있고, 우리들처럼 작위만을 가지고 있으나, 귀족은커녕 천민賤民에 가까운 사람도 있지.……(중략)……진짜 귀족은 저 이와지마 녀석처럼 서투르게 뽐내는 짓은 하지 않아. 우리 집안에서도 진짜 귀족은 아마 어머니 한 분이겠지. 어머니는 진짜야. 남이 흉내를 못 내는 데가 있어.” (『사양』, 민병산 번역, 동화출판공사, 1972년)


세월이 흘러 40대 초반께, 잠시 시간강사로서 학생들에게 소설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사양』의 첫 장면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하곤 했다. “단 몇 줄의 글로 ‘어머니’라는 인물과 ‘나’라는 인물의 성격과 관계를 이렇게 군더더기 없이 상큼하게 등장시킨 소설을 너희는 일찍이 본 적이 있느냐?”고 묻곤 했다. 학생들은 시간강사가 강요하는 감동에 예의상 호흡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부분을 다시금 정독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지금은 그 내용을 다 잊어버려 다시 읽지 않으면 한마디도 말할 게 없는 이 소설의 첫 장면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귀족인가, 평민인가, 혹은 천민인가? 만약 귀족이라면 그것은 작위만 가진 얼치기인가, 천작의 품위를 가진 진짜 귀한 사람인가 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말하는 귀족은 흔해빠진 ‘부자’와 ‘권력자’를 뜻할 리가 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그 자식에게 조차도 진짜 귀족, 즉 천작을 받은 여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을 뜻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주변에 없는 것 같아 “에라, 찾느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볼까”하는 오기를 잠시 부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감생심, 나는 천작을 찾는 사람이지 천작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포기했다.



자기부정으로 드러낸 맑은 순수

1909년 생인 다자이 오사무는 고리대금업으로 성장한 신흥자본계급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자기 집안의 부의 내력에 대해 괴로워하고 혐오하는 감수성을 지녔던 인물이었다. 그런 계급적 한계에 대한 자각이 한 원인이 되었는지 고등학생 때부터 자주 자살을 시도하곤 했다. 동경대 불문학과에 입학해 도망치고 응석부리기 마땅한 ‘문학’이라는 특별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죽음을 동경했다. 긴자의 술집여성과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여자만 죽고 혼자 살아 남는다. 그의 자기혐오는 더 깊어진다. 대학 때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뒤, 죽기 얼마 전(35세)에는 루쉰魯迅의 일본에서의 행적에 대한 추적도 했다고 한다. 전후에는 자기파괴가 마치 삶의 목적인 양 몸부림치다가 결국 39세라는 좋은 나이에 동거하던 야마사키 도미에라는 여성과 강물에 빠져 숙망의 동반자살을 완수(?)함으로써 그토록 벗어 던지고 싶었던 삶을 마감한다. 자의식 과잉, 자기혐오와 자기응시의 천재로서 지금도 다자이 오사무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나 가와바타 야스나리, 나쓰마 쇼세키 등의 대가들보다 더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의 무덤에는 일 년 사시장철 꽃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자이 오사무만큼 사랑을 받는 작가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소월일까, 이상일까? 김삿갓일까? 그렇다고 단재 신채호도 만해 한용운도 아닌 것 같다. 존경과 사랑의 행로는 무늬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일본인의 사랑도 존경심 때문이라기보다 요절에 그가 남긴 특별한 정서의 문학 등 다른 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사양』 외에도 『뷔용의 아내』, 『만년』, 『달려라 메로스』, 『여자의 결투』, 그리고 『인간실격』까지 거의 다 번역되어 있다. 모두 빼어난 절창은 아니지만, 어느 작품이든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파온다. 『인간실격』은 20대 이후에 봐도 공감을 자아낼지 모르지만, 그를 이야기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가족과의 불화와 자신의 병적 나약함을 섬세하게 그린 수작으로서는 단연코 『만년』을 꼽을 수 있다.

천작은 오로지 어머니에게만 허락된 품성이라 천민일 수밖에 없다는 자의식에 도망칠 곳은 죽음밖에 없었던 다자이 오사무. 문학은 가끔 유약함과 자기혐오, 반도덕적 광기, 퇴폐적인 자기부정을 통해 의도했든 아니든, 맑은 순수와 서늘한 도덕을 드러내기도 한다.



캡션
소화 3년경 하숙집에서 다자이 오사무
Bar Lepain에서의 다자이 오사무



책캡션
나생문 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최태응, 문병산 역
동화출판공사


만년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소화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창종 옮김
도서출판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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