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기록
살아남은 시나리오 작가가 쓴 ‘시나리오 작가 이야기’
칼날주자 시나리오 작가
#1. 살아남은 자의 슬픔
故 최고은 작가님의 기사를 접한 날 나는 <한겨레>신문을 읽으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설날 부모님 댁에서 받아온 ‘명절나물’을 밥에 비벼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었다. 체하지는 않았다. 비위가 좋은 편인가보다. 하루 종일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까지 운운하게 되는 이 상황이 낯설다.
나는 올해로 서른여덟 살이 되는 시나리오 작가다. 정식으로 시나리오를 써온 지도 딱 10년이다. 10년 전 첫 직장이 영화사 시나리오 팀이었다. 그 시절에는 영화사가 시나리오를 중요시해서 ‘인하우스’라는 시스템으로, 영화사 내부에 자체 시나리오 팀을 꾸리던 게 유행이었다. 투자사는 영화사에 시나리오 개발비로 경상비를 지급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상황이 지금보다 좋았던 것 같다. 첫 직장인 C영화사에서 작품의 막내작가로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일 년 동안 명절에만 집에 가면서 합숙한 결과였다. 첫 작품을 마치고 나는 회사를 나와 혼자서 시나리오를 쓰기를 감행했다. 그땐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나름대로 쉽게 느껴졌다. 서울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었기에 먹고 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 삶을 지지해 주신다고 생각했다. 1년 동안 세 편의 시나리오를 탈고했지만 하나도 영화사에 팔지 못했다. 부족한 탓이었다.
그때 아는 분을 통해 출판사에 취직했다. 4년 간 출판사에서 만화책과 소설책을 만들며 잘 지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퇴근하면 시나리오를 썼다. ‘주말작가’로도 지내며 여자 친구와 트러블도 많았다. 그러다 다시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시나리오만 쓰며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나온 게 2007년 2월. 퇴사와 함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동인천에 월세방을 얻었다.
출판사를 그만두던 서른넷의 겨울, 이 선택이 내 인생을 결정할 것이란 걸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힘겨운 이 세상의 아버지가 되는 삶과, 글을 쓰며 홀로 사는 가난한 독거총각이 되는 삶. 후자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지금도 전혀 후회가 없다. 선택이란 건 하나를 택하는 게 아니라 하나를 버리는 거라고 배웠다.
#2. 전업 시나리오 작가로 살기
전업 1년차 때는 퇴직금으로 살았다. 그때 준비하던 작품 두 개는 영화가 되지 못했다. 하나는 아는 감독과의 프로젝트였고 다른 하나는 나와 내 친구가 같이 쓰던 프로젝트였다. 전자는 전업 1년차 때 엎어졌다. 고료를 받지 못했다. 결국 그 제작사와 6개월 일하며 받은 건 총 60만 원의 진행비와 저가 추석 선물세트가 전부였다. 아이템 역시 제작사의 것이라 내가 쓴 초고 시나리오를 마음대로 운용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영화계 복귀 수업료는 쓰리고 비쌌다. 후자는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1)에서 공동추천을 받고 추후 영화사에도 팔렸다. 그러나 이 또한 제작자와의 친분 관계를 고려해 2000만 원 계약에 계약금 200만 원만 받고 작품을 넘겼다. 추후 인센티브 조항 등이 있었지만, 200만 원 계약금을 공동작가인 친구와 나누니 100만 원이 손에 쥐어졌다. 현재 이 작품 역시 여전히 제작사가 영화화 하지 못한 채 고이 방치되어 있다. 결국 잔금이자 실질적 고료는 제작투자가 들어가야 들어오기에 떼인 곗돈마냥 넋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공동작가인 친구는 저간의 과정에서 지친 나머지 이 바닥을 떠나 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다.
전업 2년 차부터 금전적인 압박이 시작됐다. 당시 내 나이 서른다섯. 연애도 결혼도 꿈꿀 수 없는 시절이었다. 제대로 된 직장으로 돌아가라는 암묵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행히 영화사를 차린 후배의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며 지냈다. 한 달에 육십만 원. 그나마도 많이 챙겨준 거였다. 그렇게 6개월을 살고 나머지 6개월은 여러 잡문을 쓰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들에게 빚도 지며 살았다. 친구들은 시나리오가 팔리면 갚으라고 했다. 아직도 그 빚을 못 갚고 있다.
전업 3년 차에는 결국 부모님의 성화를 못 이겨 서울에 방을 구했다. 그리고 새 출판사에 취직했지만 두 달 다니고 퇴사했다. 불황에도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는 훌륭한 직장이었다. 두 달 간 5백만 원을 벌었고, ‘5백만 원이면 6개월은 아르바이트도 안 하고 글만 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출판사에 돌아간 건 잘못이었다. 내 안의 창작 욕구는 생각보다 크고 힘찼다. 고래를 욕조에 가둘 수 없듯이 말이다. 그것으로 나의 마지막 회사 생활은 종료되었다. 그 후, 꽤 유명하고 잘 나가는 감독님의 보조 작가로 일했다. 한 달에 100만 원. 작가 생활하며 처음으로 안정적인 ‘월급’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팀에서 준비하던 시나리오는 무산됐고, 감독님은 다른 완성된 시나리오를 받아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갔다.
지난해는 전업 시나리오 작가로 지낸지 4년이 된 해다. 평일엔 여러 아르바이트 잡문과 영화사에서 들어오는 작은 일거리를 맡아 일했다. 주말에는 자영업을 하는 친구(맞다. 영화계를 떠난 그 친구)의 가게에서 일하며 그리고 틈틈이 개인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이제는 이 바닥을 떠나기도 싫고 떠날 수도 없다. 내가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친구들의 관심과 부모님의 보살핌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게 남아있는, 내가 완성해야 될 작품들 때문이다. 따져보니 10년 동안 10편의 시나리오 완고를 썼다. 하나는 영화가 되었으니 10타수 1안타라고 할까. 타자라면 2할 8푼은 쳐야 되는데…라며 자조도 많이 했다. 故 최고은 작가님이 생전에 ‘나는 5타수 무안타 작가야’라고 말씀하셨다는 기사에 뜨끔도 했다.
#3. 한 편의 시나리오가 영화가 된다는 것은…
영화계의 현안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도 많고 또 너무도 없다. 공허하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나서서 개선을 외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 그 안에서 최선의 것을 이루자는 주의였다. 그저 내 몫만 주어지면 됐다. 투쟁해서 얻기보다는 홀로 인정받길 원했다.
출판사 다닐 때 작가들을 상대하며 그들의 저작권을 챙겨주던 나는 영화사와의 ‘모든 권리가 을에게 귀속된다’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푼돈이라도 시인, 소설가, 작곡가, 화가는 저작권을 인정받는다. 저작권이라는 말 자체가 작품을 완성했을 때부터 자연적으로 형성이 되는 권리이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저작권을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판다는 건, 시나리오의 모든 권리를 넘겨준다는 표현이다. 그나마 영화가 되지 않으면 잔금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2)
제작사도 가난하다. 경상비 투자는 없어졌고, 개발하는 작품은 투자사의 입맛에 맞춰야하며, 검증된 감독과 피디들이 투자사와 직거래하는 상황이다. 콜라는 맛있으면 된다. 코카콜라 레시피를 소비자가 알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영화가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객들이 산 영화표 값이 어떻게 배분되는 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영화계가 창작자의 생존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이유를 알고자 한다면 이 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관객 여러분이 구입한 영화표 9000원의 반은 극장이 가져간다. 이후 남은 4500원은 투자사와 배급사와 제작사가 가져간다. 제작사는 투자사와 배급사의 눈치를 보니 얼마 못 가져간다. 4500원의 반의 반 정도라면 다행일 정도이다. 고로 극장과 투자사, 배급사라는 시스템이 영화의 권리를 쥐고 흔든다. 공고하다. 대한민국 자본의 주체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제작사도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에 빠진 이 시스템에서 시나리오 작가는 카스트 제도의 ‘수드라’다. 낄 자리가 없다. 이것이 영화는 흥행을 해도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그 몫이 돌아올 수 없는 현실이다. 심지어 흥행조차 못하면 이름값(크레딧)조차 얻기 힘들어진다.
생각해보면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 선배들이 많다. 봉준호, 박찬욱, 최동훈, 이창동, 김지운 감독님 모두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하지만 이는 감독으로 가는 과정일 뿐 시나리오 작가 본연의 정체성은 아니다.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는 다 감독이 된다. 시나리오 작가의 대우가 후지니까 감독이 되는 게 아닌가도 생각해본다. 현재 한국의 감독 지망생들은 시나리오를 써야만 감독이 될 수 있고, 기존의 시나리오 작가는 감독이 되거나 드라마 작가로 전향해야만 살 수 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서 장수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한편으로 시나리오는 수많은 사람의 손을 타며 고쳐진다. 한 선배 시나리오 작가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완성한 순간 한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달라붙어 그 작품을 고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영화사 대표의 부인(영화업계와 무관)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손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창의적인 모니터와 합리적인 대안을 수용해 다음 고를 뽑아야 함이 프로 작가의 의무이지만, 작품에 대한 ‘대안 없는 지적’은 작품에게도 작가에게도 소모적인 싸움일 뿐이다. 시나리오에 대해 진지하게 수련해보지 않은 사람이 제작과정에서 시나리오 수정을 지적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4. 오늘도 나는, 쓴다
올해로 서른여덟. 아직도 일은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준비 중인 아이템도 많다. 생계는 유령작가 일과 초기 계약금으로 버틴다. 적어도 나 하나는 먹고 살만하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거나 한 여자를 책임지기도 힘들다. 그래서 연애나 결혼은 포기했다. 다행히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마련한 전셋집이 있고, 나 혼자 먹고 살 정도는 글쓰기로 벌고, 집필 중인 빛나는 작품들(이라고 쓰고 희망이라고 읽는다)도 있다.
이 땅의 많은 작가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좋은 글을 두드려주길 기원한다. 원래 글은 전쟁터, 폐허, 두려움, 삼엄함 속에서 더욱 울창해지니까. 영화계에 큰 슬픔이 있었던 2011년 2월을 보내며, 시나리오 작가가 이렇게 산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예, 살아있습니다.”
글쓴이의 온라인 닉네임은 ‘칼날주자’다. 전업 4년차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 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 10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그 중 1편이 영화가 됐다. 오늘도 그는 타석에 선다.
————————————————————————————-
각주
1)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마켓은 현재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 작가 데뷔 루트임에도 정부에서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정상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2) 물론 ‘이 시나리오의 영화 판권을 몇 년 간 A영화사에 양도한다’라는 좀 더 개선된 조항의 계약서가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아직 이런 조항의 계약을 제시받아본 적이 없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