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닭대가리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필립 K. 딕의 사이언스 픽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968)는 세계전쟁 이후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인 미래세계를 그리고 있다. 방사능으로 인해 지구의 동물은 급격히 사라지고, 인간의 삶 역시 척박하다.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구인은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어 인간을 이주시킨다. 화성으로 이주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화성으로 떠나고 지구에는 소위 ‘2등 시민’들만이 남아 인공동물을 기르는 데서 위안을 찾는다. 이 ‘2등 시민’들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있는 이들은 소위 ‘스페셜’Special로 구분되는 지능 저하자들이다.
비공식적으로는 ‘닭대가리’Chickenhead라고 불리며 차별받지만, 공식적으로 이들은 엄연히 ‘특별한 이들’, 곧 ‘스페셜’이다.
한국의 공중파 방송들에도 다양한 ‘스페셜’들이 존재한다. 이 ‘스페셜’들은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모순들에 파고들어 문제점을 밝혀내고, 약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현실적인 개선방향들을 제안하려 노력했던 기존의 탐사보도 방송들이 뿌리 뽑히거나 흔들리는 자리에 등장했다. 공중파 방송사 사장들이 친정권 인사들로 교체되고, <PD 수첩>의 피디들이 지방의 한직으로 좌천되고, <추적 60분>의 특정 주제가 방송직전 ‘불가’ 판정을 받는 등의 사건에 발맞춰, 작년 이후 지금까지 각양각색의 ‘스페셜’들이 이 탐사보도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마이크로하고 소프트한 ‘스페셜’ 다큐
이 ‘스페셜’에는 특징이 있다. 가끔 유명한 연예인들이 나레이션을 맡고, 주제는 그간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모순들이 아니라 일상의 문화현상이나 주류 엔터테인먼트의 경향으로 바뀌고, ‘심층’ 보도가 아닌 ‘표면’ 스케치에 몰두한다. 이 문화적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은 가령 ‘케이-팝’K-pop이라 불리는 아이돌 댄스음악의 세계적 인기를 뒤따르며 눈물짓는 프랑스 팬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거나, 김태희나 비 같은 특정한 연예인들이 어떻게 좌절을 딛고 ‘스타’가 되었는지를 ‘재조명’하거나, G20과 같은 국가행사의 진행과정을 3일간 좇아다니거나,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몇 년을 고시원에서 살아야 하는 청년들의 문제를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로 낭만화하거나, 심지어는 젊은 남녀들을 ‘애정촌’에 모아놓고 그들이 일주일간 짝짓기를 하는 과정을 짐짓 심각하고 진지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적 의제들이 가지는 정치적·사회적 의미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적으로 다룬다면 아마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언제나 문화적 의제의 소재에만 머무르면서 이를 예쁘게 포장하거나, 부드럽게 감싸거나, 낯뜨겁게 홍보하는 데에서 그친다. 이렇게 소소하고micro 부드러운soft 문화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마이크로-소프트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들이 주로 ‘스페셜’이나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무엇이 이 사회의 ‘특별한 의제’이고, 무엇이 ‘자료로 기록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미디어의 ‘정치적’ 입장이 여기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화면에 담는 행위는 반드시 다른 어떤 것을 담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한정된 프로그램들 중에서 아이돌 그룹이나 김태희나 박지성이나 짝짓기와 같은 문화적인 의제들을 ‘스페셜’하게 보도하는 일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다른 주요한 의제들을 배제해야만 가능해진다. ‘SM 타운’ 소속 아이돌 가수들의 파리 공연에 따라가 케이-팝의 세계화라는 현상을 어떻게든 기정사실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재빠른 방송사는 높은 등록금을 견디지 못하고 거리에 나온 대학생들을 따라다니지는 않고, 김태희와 박지성의 24시간을 밀착 취재하는 방송사의 열정은 한진중공업 현장의 크레인에 올라가 반년 가까이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24시간에는 배당되지 않는다. 방송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터넷 미디어인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동일하게 드러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 네이버의 검색창에 아래 떠있는 주요한 검색어들은 이런 것이다. “구하라 용준형 열애 / 김정태 간경화 고백 / 황수정 공식입장 / 유하영 남편공개 / 임재범 나치의상 논란”. 미디어의 ‘정치성’이라는 것은 이처럼 의제 자체를 선택하고 배제하는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한국 주류 미디어의 ‘스페셜’은 자신을 ‘스페셜’하게 포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대중을 ‘닭대가리’로 만들려는 야심을 품는다. 물론, 그것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모두가 날씨를 말한다. 우리는 아니다”
1968년 혁명 당시, 독일사회주의학생연맹SDS은 붉은 색으로 강렬하게 덮인 한 장의 포스터를 만들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얼굴을 가운데 두고, 이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이 쓰여 있었다. “모두가 날씨를 말한다. 우리는 아니다.”Alle reden vom Wetter. Wir nicht. 어쩌면 68 혁명 중 가장 강력한 시위가 독일에서 펼쳐졌던 것은, 바로 중대한 모순들을 못 본 척 하면서 부드럽고 소소한 “날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독일의 주류 미디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비판과 정치가 거세되어 버린 가벼운 ‘엔터테인먼트’만이 ‘스페셜’ 취급을 받을 때, 바로 그 때 놀라운 정치적 ‘역풍’은 반대쪽에서 서서히 불어오기 시작한다.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변사또가 시와 노래와 춘향의 수청이라는 ‘엔터테인먼트’에 가장 ‘스페셜하게’ 몰두했을 때, 암행어사 이몽룡이 들이닥치게 되는 것이다(김문수가 <춘향전>에서 ‘따먹는’ 것만 보고, 이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아쉽지만, 이것이 그의 한계일 것이다). ‘스페셜’이 ‘닭대가리’가 되는 것은 이처럼 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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