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호모아줌마데스 애엄마
2002년 동티모르 유혈 분쟁 취재 당시 유엔평화유지군 탱크 앞에 선 김재명 회원
그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겸손하게 쓸 것.
“겸손하게, 있는 그대로만 써 주세요. 마치 무슨 대단한 사람인 양 그리지도 마시고…”
아, 네. 그렇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근데 제가 워낙 겸손하지 못한 인간이라서… 겸손하게 쓰자, 겸손하게 쓰자, 마음속으로 세 번 외치고… 자, 이제 시작합니다.
무서운 이야기
인터뷰를 막 시작하려는데 그가 책을 건넨다. 『오늘의 세계분쟁』 와,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 그럼 싸인 좀…
“서명을 하면 나중에 남한테 주기도 그렇고 묵혀 두게 되니까 다 읽고 나서 필요한 사람에게 주세요.”
늘 쓸데없이 책 욕심을 부리는 내게는 철퇴와 같은 말이었다. 겸손하지도 않으면서 욕심까지 더덕더덕 붙은 내가 그와의 만남을 담백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걱정하며 질문지를 바싹 끌어당겼다.
“왜 하필 분쟁 지역이 제 인생의 화두가 되었느냐… 제가 중앙일보에 다닐 때 한반도의 분단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해방 이후 3년을 분단 정국이라고도 하는데, 그때 남과 북 어느 쪽에도 붙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통일을 위해서 일했던 사람들과 관련해서 취재를 많이 다녔죠. 흔히 중간파라 불리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남북의 분열이 전쟁으로 이어질까 봐 걱정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2년 후 전쟁이 일어났죠. 그렇게 한국은 분쟁 지역이 되었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분단 극복을 위해 다른 분쟁 지역들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렇게 외연이 넓어진 것이죠.”
20곳이 넘는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을 돌아다닌 그다. 낯선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방인의 얼굴을 렌즈에 담았으나 그의 가슴 속의 조준점은 분단으로 상처받은 내 나라, 내 땅을 향해 있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세계 분쟁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도 늘 마지막 순서에는 분단 중인, 여전히 분쟁 중인 이 땅의 이야기를 배치해 넣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분단’과 마주쳤던 개인적 경험도 있다.
“대학 시절 긴급조치 때문에 2년 정도 대전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았어요. 그곳에 비전향 장기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단지 다른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그들은 너무도 긴 세월을 그곳에 묶여 있었습니다.”
이 땅에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다음번 전쟁을 기약하는 형태(?)’로 끝이 났다. 여기까지는 국가 단위의 문제다. 한 사람 한 사람, 사람 단위의 전쟁은 감옥에서, 고문실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분단이 가져온 결과는 그랬다. 평범한 가족들이 남과 북으로 찢어져 살아가는, 민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을 반국가적 인사로 몰아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전쟁 중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
이스라엘의 총격에 죽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장례식에서 울부짖는 소년
“사람들이 전쟁을 하는 이유요? 음… 공격적인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들 많이 이야기 하는데 사실 그건 전쟁의 요인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현대 전쟁에서는 국가나 민족같은 큰 정치적인 집단 사이의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죠. 결정권을 가진 국가지도자들은 전쟁으로 생기는 이득이 전쟁을 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이득보다 클 때 전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그 ‘이득’ 안에는 자신과 자신을 지지하는 소수의 이득만이 계산될 뿐이죠.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국가나 민족 구성원들의 이득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결국 전쟁이란 몇몇 이들의 이득을 위해서 다수가 희생 당하는 것입니다.”
석유 때문에 전쟁이 나는 세상이다. 결국 생각해보면, 동네 주유소에서 파는, 1리터에 2000원 정도 하는 그 기름 때문에 전쟁이 났다. 사람의 목숨이 기름보다 더 낮은 자리에 서야하는 것이 전쟁이라면… 실로 무서운 이야기다. 이 무서운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우린 다시 ‘평화’를 이야기하려 한다.
“저는 평화를 굳이 어렵게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때, 다수의 안정과 평안이 이루어질 때 그게 바로 평화입니다.”
그렇다. 전쟁이 없는 것이 곧 평화인 것은 아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통해 이루어졌던 평화는 여러 식민지를 거느리고 그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로마인들의 이야기일 뿐, 로마의 억압적인 지배 아래 굴종의 삶을 살아야했던 사람들에게 그 시대는 노예 시절의 기억일 뿐이다. 테러리스트와 애국지사 사이를 오가는 안중근에 대한 극단적 평가처럼 전쟁과 평화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그래서 강대국의 시각에서 벗어나 분쟁을 바라볼 수 있는 그의 존재가 이 시대에는 더욱 소중하다.
팔레스타인 독립을 바라는 평화운동가들의 시위현장(2012년 2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벨윈)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난 가끔 삼국지 게임을 한다. 유비와 그 친구들을 데리고 드넓은 중원을 누비며 몇 번은 천하통일도 이루었다. 내가 아는 전쟁은 딱 그만큼이다. 실제는? 난 여태 진짜 총은 본 적도 없다. 그래서 궁금하다. 분쟁 지역에서 그는 어떻게 취재를 하는 것일까?
“현지에 가면 먼저 와 있던 기자들에게 도움을 얻어 일단 통역과 운전수를 구합니다. 무엇보다 가이드가 중요하죠. 돈을 좀 더 주더라도 대학교수라든가, 경험이 많고 인맥이 넓어서 그 지역의 상황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험하지 않으세요?
“뭐, 서울도 위험하잖아요.”
너무도 짧고 쿨하게 답변하는 그에게 말꼬리를 달았다. 에이, 그래도 서울은 폭탄이 터진다거나 그러진 않잖아요.
“지뢰나 폭발되지 않은 폭탄 같은 것들은 상당히 위험하죠. 위협도 몇 번 당했어요. 그것도 같은 곳에서 2년 간격을 두고 2번 연속으로…”
분쟁 지역의 대표 격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그곳에 있는 칸 유니스라는 난민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겪었던 일화다.
“거기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도 이스라엘군은 자신들의 작전 필요에 따라 집을 막 허물기도 하고 저항 세력들의 거주지를 일부러 파괴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것들을 취재하려고 갔었는데 사진을 찍으려니까 이스라엘군이 위협 사격을 하더라구요. 놀라서 달아났죠. 그게 2002년도였는데 2004년도에 KBS팀과 그곳에 다시 갔을 때, 카메라 앞에 서서 내가 2년 전에 여기서 이런 일을 겪었다는 말을 하는 순간 또 총을 쏘더라구요.”
아니 그렇게 위험한데, 포기하고 싶거나 이 일 시작한 걸 후회하신 적은 없으세요?
“그런 적은 없어요. 가끔 분쟁 지역에서 돌아오고 나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소명의식이요? 아휴,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고 싶진 않네요. 안 그래도 부탁드리려 했는데요, 쓰실 때 그저 참여연대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잘 살고 있는 사람, 그런 정도로 써 주세요. 제가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맞지만, 용광로 근처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크레인 위에서 일하시는 분들처럼 저보다 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저 지금 겸손모드로 잘 쓰고 있는 거 맞나요? 호호호… 그럼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진짜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중동 이란의 고대 유적지 페르세폴리스 궁전 앞에 선 김재명 박성희 회원부부(2009)
달달한 이야기
프레시안 기획위원 겸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라는 멋진 직함을 지닌 그이지만 한편엔 ‘남편’이라는 달달한 직함도 있다.
“결혼생활이… 계산해 봐야 하는데… (계산 중)… 벌써 33년이나 됐네요. 부부 간의 대원칙이요? 그런 거 없는데…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니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 부부가 아이가 없어서요, 아이들 때문에 발생하는 그런 분쟁들 없이 비교적 평안하게 지내왔죠.”
그래도 싸우기는 하시잖아요, 어떻게 화해하세요?
“글쎄요, 그것도 잘 생각나지 않는 거 보니 잘 안 싸우나 보죠…?”
아… 이러다 달달한 이야기는 분량이 미달될 듯하다. 그럼 일상은 어떠신가요?
“가끔 시간이 나면 같이 공연도 보러 다니고 그래요. 저희 집에 개가 두 마리 있는데,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개들 운동도 시킬 겸 아내하고 같이 산책을 가요. 그러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뭐 그러는 거죠.”
눈이 온 날 세검정 뒷산으로 진돗개 모녀 진주와 설이와 산책나온 박성희 회원.
박성희 회원은 케페통인 카페지기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2012)
모녀 사이인 진돗개 진주와 설이를 데리고 산책 가는 부부의 모습이 눈앞에 평화롭게 그려진다.
“아내와 둘이 어디 여행이라도 가려고 하면 개들을 맡길 곳이 필요한데, 예전에 한 번 개 훈련소 같은 곳에 맡겼더니 한두 시간 정도 훈련시키고는 하루 종일 묶어놓거나 가둬 놓더라구요. 사람한테 인격이라는 것이 있듯이 개한테도 견격이 있는 것인데 말이죠.”
진주와 설이는 좋은 주인을 만나 좋겠다. 착한 주인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장기적으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좀 줄이고, 놓아버리려고 해요. 지금 저희 사는 곳이 단독 주택인데, 아파트처럼 문만 잠가놓고 가기엔 부담이 좀 있어서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아내와 여행을 좀 다녀보고 싶어요. 예전에 함께 중동 지역을 한 달간 여행했는데, 제가 혼자서 분쟁 관련 취재를 갔을 때랑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더라구요. 취재차 갔을 땐 취재하고 호텔로 돌아와 쓰러져서 자고, 그것뿐이었는데 아내는 여행 안내서에 나와 있는 아기자기한 곳들,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들을 접할 수 있는 전통 음식점이나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거예요. 그런 아내와 함께하며 보았던 시리아, 이란은 제가 그전에 알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어요.”
당연하죠, 일터와 놀이터는 엄연히 다르잖아요. 게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아내와의 동행인데요. 그의 아내, 박성희 회원도 카페통인 카페지기 자원활동으로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고 있다. 처음 뵙고는 목소리가 너무 고와서 성우이신가 했다. 목소리만큼 마음씨도 무척 고우신… 아, 참, 겸손하게 쓰라고 하셨는데……. 김재명
몸이 좋지 않음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한 김재명 회원
따뜻한 통찰을 가진 이, 그의 편이 되었다
2005년 참여연대에서 강의를 맡게 된 것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회원 가입을 하고 현재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참여사회』에 ‘김재명의 평화이야기’를 무려 5년간이나 기고했다. 그리고 지난 호를 끝으로 기나긴 연재를 마쳤다. 이 인터뷰가 그의 모든 걸 담아내지 못하겠지만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작고 따스한 자리로서 기억되길 바란다.
2005년에 펴낸 책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제법을 어기고 전쟁을 벌이려는 유혹은 강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갈등을 푸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갈등을 풀고 평화를 심으려는 노력은 참을성을 요구한다.’
분쟁 국가의 일원인 우리가 왜 ‘화해와 대화의 정치’를 이야기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1946년 창설된 유네스코 헌장의 전문에는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라고 쓰여 있다. 힘없게 들릴지라도, 현실 정치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는 이들의 연대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는 그. 현실적으로 영구 평화가 불가능하다면,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아득한 절망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와 약자, 못 가진 자들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쪽을 택하겠다던 그의 말이 이 글을 쓰는 내내 가슴을 친다. 온 생애를 분쟁의 현장에서 기자로서의 길을 걸었던 이의 따뜻한 통찰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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