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2년 05월 2012-05-02   1778

[특집] 사찰은 다 나빠: 손쉽고도 장난이 아니다

사찰, 손쉽고도 장난이 아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총선이 끝나자 그 결과를 납득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개탄했다. “사찰보다 막말이 중요한가?” 실제로 총선 결과와 그에 대한 보도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진보 진영이 사찰을 잘못된 프레임에 가두어 온 데서 초래되었다. 사찰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문제로 본 것이다. 김종익씨 사건에 대한 폭로 이후 진보 진영은 줄곧 ‘사찰=MB’의 프레임으로 문제를 바라보려고 했다. 물론 국무총리실의 법외적인 사찰의 몸통이 청와대이고,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었다는 정황이 드러난 이상 대통령이 책임질 일은 틀림없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으로는 총선 정국에서 이미 대중적으로 MB와 어느 정도 ‘차별화’해 버린 ‘박근혜의 새누리당’에 책임을 물 수가 없다. 또 문재인 당선자의 말대로, 노무현 정부 하에서 동향에 관한 보고가 일선 경찰의 정보 보고이기 때문에 합법이고 문제가 없다는 식의 프레임은, ‘누가 되어도 바뀔 게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선거 막판에 사찰 문제가 ‘감찰’이냐 ‘사찰’이냐 로 좁혀져 버린 까닭은 우리 스스로 사찰을 대통령의 스타일 문제로 국한해 왔기 때문이다.

  사찰의 ‘해법’을 대통령 개인의 선의에 맡겨둘 수는 없다. MB 정부 들어 일어난 수많은 감시와 표현의 자유 침해는 개악된 법제도 하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원래부터 버젓이 있어 왔던 법제도 하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권력의 ‘오남용’으로 보고 ‘덜 하는’ 대통령을 찾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2

                           바바라 크루거 <사찰은 그들의 바쁘고도 쓸데없는 일>

 

민주 정부에는 사찰이 없나?

사찰기관은 그 자체의 논리로 계속 굴러가서 때로 그 운용이 통치자 개인의 의지를 넘어서기도 한다. 최근 해외에서 정보 유출 문제로 큰 파문을 일으킨 에셜론이 그러했다. 에셜론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정보기관들이 함께 운영해 온 감시망인데, 1973년까지는 선출직 호주 총리도 그 존재를 몰랐었다고 한다.

 
  행정부의 수반이 개혁적이라고 해서, 민주 정부라고 해서 사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몽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몽상을 꾸어 왔다. 2005년 안기부 X파일 파문이 나라를 뒤흔들었지만 파문만으로 그쳤다. 국가정보원이 CAS, X25 등 불법으로 제조하여 사용했던 휴대전화 감청 기계를 파기했다고 주장했을 때 그 말을 순진하게 믿었다. 휴대전화 감청을 금지하지도 않았고, 국가정보원의 감청 권한을 손보지도 않았다. 몇몇 책임자를 사법 처리했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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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 바너 <사찰 2010>                                                      

 

언제, 어디서든 감시당할 수 있다

나는 국무총리실, 그리고 예능 담당 직원이 있었다는 국가정보원이 사찰에 사용했던 방법이 궁금하다. 미행으로 끝났을까? 불법 녹취는 없었을까? 불법 개인정보 제공은 없었을까?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일일이 쫓아다닐 필요도 없이 개인의 모든 행적을 쫓을 수 있다. 전자 미행 제도가 이미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누군가 감시한다면 나의 생각 뿐 아니라 나의 인적 관계까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검찰이 월스트리트 시위대의 트위터를 털어 논란이 되었는데, 똑같은 일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내 인터넷에 올린 글의 임자가 알고 싶으면 포털에 연락하면 된다. 전기통신사업법상 신상정보 제공 의무는 없지만 포털로서는 제공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 휴대전화 위치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수사기관이 손쉽게 제공받아 왔다. 특히 실시간 위치정보는 ‘종로3가→종로2가→종로1가’ 하는 식으로 매 십분 간격으로 이동 경로를 통신회사가 수사관에게 실시간 문자메시지로 보내준다. 희망버스 사건으로 기소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에게 이런 식의 추적이 이루어졌었다.

 
  어떤 장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궁금할 때는 기지국을 털면 된다. 한 기지국 당 통상 신호가 12,000개씩 잡히니까 몇 개를 털면 수 만 시민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 수 있다. 그 중 대부분은 그저 지나가는 시민이겠지만 경찰이 수사 협조를 위해 필요하다고 법원의 결재를 받으면 방법이 없다.

 
  어디를 가도 하나쯤 있는 CCTV도 경찰력을 대행하고 있다. 제공받는데 영장도 필요 없으니 국무총리실은 물론 언론 기관들도 찍힌 사람들 의사와 무관하게 마구 제공받아 때로는 사람이 버스에 치여 죽는 장면이나 장례식장에서 각목을 휘두르는 장면이 인터넷에, TV에 볼거리로 제공된다.

  신용카드, 직불카드는 물론 교통카드까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소상한 내역이 영장 없이 제공되곤 한다. 전자주민증이 시행되면 금융 거래가 없어도 신분증을 제시했던 곳의 정보가 제공될 것이다.

 

프레임 바꿔 법을 손질해야

 
불법적인 ‘사찰’이건 합법적인 ‘감찰’이건 수사기관이 영장도 없이, 심지어 수사기관도 아닌 곳들이 이런 전자 미행을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경찰이나 국가정보원, 공직윤리지원관실 등 명분을 가진 공공기관이라 하더라도 자기 직무를 넘어서는 정보 수집 자체는 확실히 금지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법률로는 이런 일들을 제한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손 볼 곳이 많다. 왜 우리는 단호하지 못했는가? 왜 불법사찰금지법 논의가 박근혜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었는가? 이제 우리가 사찰 논란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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