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2년 06월 2012-06-02   1833

[상담] 터닝 포인트, 니 뒤에 있다

터닝 포인트, 니 뒤에 있다.

김남훈 프로레슬러, 육체파 지식노동자

 

8376 사본

Q
남훈님께서 지금의 길을 걷게 된 터닝포인트라고 할 만한 사건이나 책, 또는 어떤 멘토의 말씀이 있었나요?

 

A
잠깐 상상을 해보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원시시대로 가봅시다. 이제 막 수렵을 시작했을 때의 그 시점으로 말이죠. 동굴에서 살 테고 그곳에는 동거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냥을 하러 나가야 합니다. 뭔가를 먹어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사냥감을 찾아 다니다가 마침 운 좋게 포획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아뿔싸! 사냥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겁니다. 방향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대체 어떡해야 할까요.
현재로 돌아옵시다. 그 원시인이 다시 동굴로 돌아갔을 지 아니면 결국 귀환에 실패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천신만고 끝에 동굴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다면 아마 그 다음부터는 멀리 길을 떠날때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확인하거나 무언가 표시를 남겨두려고 했겠지요. 그런, 계속 뒤를 돌아다보는 습관은 수컷인 남성에게 후방인지능력을 키워줬을 테고고 지금 운전대를 잡은 남자들이 후진을 잘하는 이유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어떤 일의 계기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제가 처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 모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한 것에서 였지요. 부끄럽지만 그 이전까지 그 분들 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분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식대가 300원이라는 부분에서 감정이 마구 솟구치더군요. 그것을 풀기 위해선 그 분들을 도울 무언가를 찾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단번에 인생을 바꿔줄 유인을 찾습니다. 방아쇠만 당기면 자신이 불굴의 용사로 다시 태어나 모든 일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아쉽게도 그렇게 보이는 사례들은 강연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기 위해, 또는 상품을 팔기 위해 포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매우 개인적이고 아주 사소한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것이 내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 달라집니다.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점차 커다란 인생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 그리고 이런 경험을 다른 이들도 할 수 있도록 선물해 보세요.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됩니다.
제가 악역 레슬러로 막 경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10여년 전의 일입니다. 경기장에서 일본 선수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눈물과 땀과 피가 범벅이 되서 대기실로 돌아왔는데 김일 선생님이 앉아계셨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오랜 선수 생활의 후유증에 숙환까지 겹쳐 거동이 불편하신 상태였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보더니 “악역이지? 악역은 맞는 게 이기는 거야”라고 한 말씀 해주셨지요. 그  순간 발 끝부터 목구멍까지 꾹꾹 차있던 무언가가 내려가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막 경기를 뛰는, 정말로 핏덩이 같은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을 해주신 거지요.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타인의 경험을 받드세요. 그게 삶의 터닝 포인트이고, 극적인 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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