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돌아오세요!”
원충연 영국 다벨 브루더호프 거주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 남동부의 사슴의 샘 마을에 사는 원충연이라고 합니다. 다벨Darvell이라는 이름이 오래된 영어로 사슴의 샘이라는 뜻이래요. 이곳은 아이들을 포함해 삼백 명 정도가 초대 기독교인처럼 더불어 사는 곳입니다. 저는 아내, 아들 셋과 함께 살고 나무로 된 어린이 가구와 장난감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멀리 있지만 시사잡지에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심 있게 읽습니다. 전에 읽었던 것 중에 지금도 자주 생각하는 기사는 한 고등학생과 어머니 사이에 일어난 끔찍한 일입니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로부터 지나친 공부 강요와 폭력을 당하던 학생이 결국 자기 어머니를 해친 비극 말입니다. 이 사건과 더불어 너무 자주 들려오는 십대의 자살 소식은 제 마음을 무겁게 누릅니다.
그 고등학생의 사건을 생각하고, 따돌림과 시험 부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십 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곳에서 제가 너무 ‘특권’을 누리며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저희 공동체 마을에서는 아이들에게 시험공부를 하라고, 좋은 대학에 가라고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아이들을 북돋아 줍니다. 다른 사람을 공부나 직업으로, 또는 외모로 평가하지 말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진실하게 대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노는 게 최고의 배우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들, 특히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자유로이 놀게 합니다.
그래도 아이 기르는 일은 쉽지 않고, 저 같은 사람은 배울 게 많습니다. 저는 젊은 아빠 축에 끼는데 어르신들은 늘 제게 “일이 끝나면 일 스위치를 아예 내려버리라.”고 충고하십니다. 다 잊어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이야기를 읽어주고 함께 노래하라고, 그리고 다른 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일 스위치를 내려라.”
사실 전 ‘일 스위치’를 잘 내리지 못해서 탈입니다. 며칠 전에도 일을 냈죠. 낮에 어떤 사람 때문에 화가 났는데 집에 와서도 그게 안 풀리는 거예요. 그래서 몸은 아이들과 함께 있었지만, 마음은 아주 먼 곳에서 헤매고 있었죠. 당연히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치원 다니는 큰 아이와 두 살배기 둘째는 ‘집 나간’ 아빠에게 시위를 벌였습니다. 둘 다 부모 말을 안 듣고, 형은 동생을 괴롭히고, 동생은 되치고… 난리였습니다. 사실 그런 아이들의 실력 행사는 “아빠, 돌아오세요!”라는 외침이나 다름없는데요… 결국, 전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고, 갓난아기를 돌보는 아내에게까지 불똥이 튀었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그냥 사라져 버렸습니다. 허무하게요.
아내가 제게 그 사람을 찾아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강력히 권하는 바람에 마뜩잖았지만 그래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간단히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용서했습니다. 그렇게 평화를 되찾은 저는 아이들 방에 가서 아직 잠들지 않은 큰 아이에게 “아까 아빠가 미안했어.”라고 했더니 아이는 “사랑해 아빠!”라며 간단히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 작은 경험으로 제가 느낀 건 ‘어떤 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내가 중요한 일을 하거나 어떤 문제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당신이 분노한 마음으로 어떤 아이 앞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의 마음에 악의 씨앗을 뿌렸을 수도 있다. 그 씨앗은 그대로 자라날 것이다.”라고 쓴 것 처럼요. 아이들은 놀랍게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 우리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은 마음도 주지 않으면서 “공부해라, 성공하라!”며 부담만 주고, 최신 스마트폰 같은 선물로 시간과 마음을 대신하려고 하고 있잖아요!
감사하면 평화가?
우리 공동체에는 크리스토프 할아버지라는 분이 계십니다. 공동체의 많은 이들을 섬기고, 마흔두 명의 친손자 손녀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이 분은 제가 총각일 때부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셨고, 아내와 사귈 때도 도와주셔서 지금도 궁금한 게 생기면 전 자주 이 분께 조언을 구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제게 늘 하시는 말씀은 “가족을 이룬 걸 감사하라.”입니다. 가족 문제에 대해 물어도, 다른 사람과의 문제에 대해 물어도,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물어도 언제나 “감사하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감사하는 자세가 좋은 건 알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닌데… 참, 도대체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그 말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지금 함께 하는 이를 진심으로 대하라는 말씀으로 들리더군요. 공동체의 어떤 분 말씀처럼 “감사가 있는 곳에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사랑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으니까요.
아무튼, 전 공동체와 가정에서 늘 실수 투성이지만 쉽게 용서할 줄 아는 아이들 덕에 매일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단순함을 배우려고 합니다. 그게 단순히 ‘아이의 순수함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일의 출발점이라고 확신하면서요.
지난 월요일은 몇 주 전에 태어난 셋째 아이가 처음으로 어린이집 아기 반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침 아홉 시가 되자 다섯 살 반 아이들이 요정 옷을 입고 막내를 데리러 왔습니다. 노랑, 빨강, 파랑의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요정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 집 쪽으로 오면서 노래를 불렀지요. “아가야, 넌 천사처럼 우리 집에 날아와 우리의 아기가 됐구나.” 그 속에 낀 두 살백이 둘째는 마치 자기가 정말 요정이라도 된 것 같은 표정이었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마치 아이들의 얼굴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거 같았지요. 요정들의 ‘호위’를 받으며 우리 부부는 막내를 유모차에 태워 어린이집 쪽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은 계속 노래를 부르며 행렬을 이끌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갈 때는 오가던 사람들이 멈춰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전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잔걱정과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져버렸고요. 마음속으로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그들의 세계를 존중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커도 서로 눈을 바라볼 수 있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습니다.
붙임
크리스토프 할아버지의 자녀 교육에 관한 진심 어린 충고를 읽어보고 싶으세요? kr.whychildrenmatter.com을 방문해 보세요.
<살림>은 네 분의 필자가 번갈아 연재합니다. 원충연 님의 글은 10월호에서 다시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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