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2년 09월 2012-09-05   1806

[기획] 몰라서 못 지키고, 알아도 지킬 수 없는

몰라서 못 지키고, 알아도 지킬 수 없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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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못 지키는 분들을 위한 법 소개
현재 행정안전부 소관으로 되어 있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은 법명에 ‘기부’가 들어간 유일한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에 보고된 전체 기부 금액 중 1%의 규모만이 기부금품법에 등록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회원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1천만 원 이상의 금액을 모금하고자 할 때, 모집자의 개인정보와 모집 목적, 모집 방법, 모금액 사용 계획 그리고 모집 비용 예정액 등을 사전에 지자체(10억 원 이하)나 행안부(10억 원 이상)에 등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집 종료 보고 및 향후 모집 사용 보고가 뒤따르게 되어 있지요. 다만, 여기에서 단체가 가만히 있는데 찾아오셔서 기부하시는 돈은 단체의 ‘모집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등록하지 않아도 됩니다.

매우 단순한 법인데, 대부분의 단체들이 알지도 못하고 거의 준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단체들이 ‘회원’에게 회비를 받고 있고, ‘정기기부자’는 ‘회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모금 캠페인 중 건당 1천만 원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 타이밍에 움찔~! 하는 분들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그런 사항에 대해 주무부처가 찾아다니면서 관리감독하지는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일 년에 다섯 번의 캠페인을 해서 각 4백만 원씩 모금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를 지금까지는 건당 1천만 원 이하로 보아왔지만, 이를 하나의 ‘건’으로 보아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라는 주무부처의 요구가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3년 이하 징역이 제일 큰 패널티였는데, 이제는 ‘지정기부금단체 자격취소’까지 법 적용이 엄중해졌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지키면 되겠다고요? 알면서도 지킬 수 없는 기부금품법만의 사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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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도 지키기 어려운 기부금품법
현재의 기부금품법은 단체의 모금 능력이나 기부자들의 단체에 대한 갖는 신뢰를 높이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단체는 주무부처에 매년 사업계획과 예·결산을 보고하고, 10억 이상 자산 규모의 법인은 국세청 감사를 받은 회계자료를 공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별개로 5년마다 기획재정부에 지정기부금단체 지정도 새로이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극히 일부분을 기부금품모집법에 별도로 등록하여, 회계를 별도 처리하거나 별도 회계감사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은 행정적 낭비를 낳고 있습니다. 어느 단체에서는 매년 법에 따라 전체 회계감사를 받고 재정 자료를 공개하는데,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할 때마다 신뢰도가 높아지기는커녕 기부자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고 합니다. 기부금품법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기부자들로서는 ‘저 단체는 총 모금액이 50억 원이라더니, 저기 별도로 올린 2억 원은 무슨 내용인가? 나머지 48억 원은 불법모금인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곤란한 상황이지요.

 

또한 법 준용을 위한 현실적 해석이 없어서 지키면서도 불안합니다. 앞서 언급한 기부금품법 등록에 있어 ‘건’을 어느 범주로 볼 것인가에 대해 기준이 없어 단체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한편 계획에 없던 모금이 예상치 않게 잘 되면 사전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모금’이 됩니다. 모집 금액의 15%까지 쓸 수 있다는 ‘모집 비용’은 그 의미도 불분명하고, 현실적 적용도 어렵습니다. 지자체에 질의하면 문의하는 민간단체보다도 잘 모르고 있고, 주무부처는 공식적으로 답변해 주기보다 개별적 팁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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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특정 단체나 이슈를 제기하는 그룹에 대해 ‘기부금품모집법’ 위반을 이유로 검찰 조사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회원 규정이 정관에 명기되지 않았다거나, 개별 모금이 기부자의 자의에 의한 것이었느냐는 식으로 꼬투리를 잡기 시작하면, 연간 천만 원 이상 모금을 하는 모든 단체가 ‘불법모금단체’로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아예 모금을 하지 말라는 ‘기부금품법 개정안’
18대 국회에서 발의·검토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하여 지난 8월 3일 다시 입법예고된 기부금품법 개정안에서는 다음 사업에 대해 기부금품 모집 등록을 하지 못하도록, 즉 모금 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1 영리·정치·종교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2 국가 또는 지방자체단체의 정책에 찬성 또는 반대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3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하는 경우
4 법령 위반 등 불법행위를 할 목적으로 하는 경우
5 그 밖에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해치는 경우로서
   제1호부터 제4호까지의 사유에 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위 조항은 기부 또는 모금 행위를 법으로 제한하여 국민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일뿐더러 주무부처의 해석 권한이 지나치게 넓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시민단체가 하는 활동 중 ‘정치’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어디 있으며, 국가나 지자체 정책과 관련 없는 활동이 어디 있습니까? 이 법을 적용한다면, 헌법소원을 위한 공익소송 모금도 불가능해지고,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활동가를 위한 모금도 할 수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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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그냥 다 회원 기부로 받고 건당 천만 원만 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과 정부가 규제하지 말아야 하는 내용을 규제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식으로 기부와 모금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모금 관련 법에서 중요하게 다룰 것은 ‘모금 과정에서 기부자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옥 매트를 팔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의료 효과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다단계로 사기를 쳐서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지나친 규제는 모금자와 기부자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김여진 씨는 트위터를 통해 홍대 청소노동자를 돕기 위한 모금을 성공적으로 벌인 바 있고, ‘결식예산 0원’ 소식이 들리자 일주일 만에 결식아동 돕기에 3억원이 넘게 모금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은 의견을 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돈을 보태 활동을 키우고, 정부가 못하는 일에 먼저 손을 뻗으며 참여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8월 3일 이후 40일간 입법예고 기간입니다. 많은 단체들이 모르고 있는 사이, 사문화되고 있다고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큰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7일 기부금품법에 대해 국회에서 입법 토론회가 있었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개정안을 반대하고 본질적으로 적용 가능한 기부금품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고 단체들이 활동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하는 기부금품법 만들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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