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5년 03월 2015-03-02   2001

[만남] 운명의 수레바퀴 – 윤소영 회원

 

운명의 수레바퀴

– 윤소영 회원

 

이선희

사진 오유진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남산을 지날 때면 점占이 보고 싶어진다 

왜 흘린 세월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꼬리가 있었는지 뿌리를 가졌는지 

남산에서는 내 오래전을 뒤집어쓰고 끊어진 혈을 여미고 싶다

이빨이 몇 개였는지 불에 잘 탔는지 

목은 하나였는지 화석은 될 만 했는지 

그 발치들을 가져다 멋대로 차려 놓고 싶다

 

이병률 시인의 <점>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문득 내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 사람들은 운명을 점쳐보고 싶어 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참여연대 아카데미 ‘타로’ 강좌에서였다. 10명도 안 되는 수강생들이 어설프게 타로 실습을 하던 날, 그녀는 차분하고 긍정적인 해석으로 사람들을 미소 짓게 했었다. 그런 그녀는 어떤 고민이 있어서 타로 수업을 듣게 되었던 것일까?

“일도 정리해야 되고, 활동가로서든, 윤소영으로서든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고민이 되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곳에서 심리 검사도 해보고 그러다가, 타로 수업을 재밌게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즉흥적으로 신청했어요.”

 

 

인생은 BCD

10년차 녹색연합 활동가 윤소영 회원. 조용하고 편안한 인상이었던 그녀의 현재 직업은 활동가다. 그녀는 어쩌다가 활동가가 되었을까? 

“대학 졸업하고 5년 정도 일반 기업에서 일했어요. 22살에 남성들이 많은 회사에서 일하다보니 제약이 많더라고요. 5년 정도 일하면 대리를 달 시기가 되는데, 저보다 늦게 들어온 남자 후배한테 기회가 돌아가더라고요. 그때는 사회 초년생이었으니까 여기에서 프로가 되어보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었는데, 성차별 같은 문제에 직면하다보니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학위를 딸까 고민하다가 2006년 4월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은 상상 이상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서 똑 부러지는 안영이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은 피해갈 수 없었다. 2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세상의 벽은 높고도 답답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녹색연합에서 지리산 녹색 순례를 간다는 공지를 보고 무작정 신청했어요. 9박 10일 동안 지리산을 걸어볼 기회가 언제 있겠어요? 마침 일도 그만뒀겠다, 망설임 없이 갔죠.” 

차별로 고민을 하다가 지리산 등반이라니? 일 그만두고 할 수 있는 게 많았을 텐데, 왜 굳이 지리산을 갔을까? 원래 산을 좋아하세요?

“산을 좋아하긴 했어요. 회사에 산악회 같은 거 하나씩은 있잖아요. 야외 활동을 좋아해서 회사 다닐 때 산악회 활동을 했었고, 순천이 고향이라 지리산에 자주 갔었죠. 그래서 지리산에 대한 편안함이 있어요. 지리산이 아니었으면 굳이 가지 않았을 거 같고, 그랬으면 녹색연합과 인연이 깊어지지 않았겠죠.”

9박 10일 동안 지리산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하다 보니 활동가들과 친해졌고, 일을 그만두고 왔다는 말에 “우리(녹색연합) 일 많아요.”라며 누군가가 그녀를 사무실로 초대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알았다고 그랬는데, 따로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양손 가득 먹을 거 싸들고 사무실로 갔었죠. 그러다가 자원 활동을 하게 됐어요. 직장 다녀서 행정업무에 능했으니까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어요. 강원도 태백의 금대봉이라는 곳에 현장 출장을 간 적도 있어요. 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오대산에서 진행하는 청년생태학교라고, 여름 프로그램도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녹색연합 활동을 접하게 됐죠.”

지리산 등반에서 시작해 강원도 출장, 그리고 오대산에서 텐트도 없이 비박으로 진행하는 여름캠프 참여까지….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 현장 체험을 그녀는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사이에 놓인 C(Choice)라고 했던가? 몇 번의 선택은 어느덧 인생의 추를 돌려놓고 있었다. 5개월 동안 자원 활동을 한 뒤, 그녀는 활동가로 일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활동가가 되겠다고 생각 안했어요. 일을 그만두고 나서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 자원 활동을 좀 하고, 준비해서 대학원에 진학해야지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가을쯤 같이 일했던 분들이 공채가 뜰 텐데 지원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학교에 갈지, 활동가가 되어 볼지 그때 고민한 거 같아요.”

고민 끝에 학위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을 뿐,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그녀는 녹색연합 활동가가 되었다.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직업 활동가로 산다는 것

들어가서 활동을 해보니 괜찮던가요?

“들어가자마자 참 힘들었던 거 같아요.(웃음) 자원활동 했던 부서가 백두대간 보존팀인데, 백두대간 보호법을 만들고 보호구역을 지정하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생태보전의 아이콘 같은 곳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들어간 해에 그 팀이 해체됐어요. 팀장은 안식년에 들어갔고, 다른 활동가는 부서를 옮기면서 저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거예요. 이후의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됐던 거 같아요.”

활동가가 아닐 때는 즐겁기만 했던 현장 출장도 일이 되자 힘들게 느껴졌다. 뭐든 일이 되면 힘들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직업의 세계는 오묘한 무거움이 있다.

“1년차 때는 현장을 많이 다녔어요. 가장 기억이 나는 일은 강원도 고성으로 혼자 출장을 갔던 일이에요. 마산봉이라고 군부대를 해체하고 생태를 복원한 현장이 있었어요. 거기에 가서 현장기록장에 주변 상황을 적고,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내려오는 길에 비가 쏟아지는 거예요.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눈물의 하산을 했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런 현장 활동이 싫었다면 녹색연합 활동가를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하는 활동은 그녀에게 에너지가 되었다.

“2년차 때 한반도 운하 문제와 관련해 다른 환경단체랑 상황실을 꾸렸는데, 거기에 파견을 나가게 됐어요. 자원활동 한 기간을 포함해도 2년이 채 안된 활동가한테 보도자료, 기자회견문, 취재요청서를 쓰라는 요구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닥치니까 또 하게 되더라고요. 상황실 여러 활동가들이랑 아스팔트 위에서 밤샘도 하고…. 좋았던 거 같아요.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는 에너지만으로도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러나 활동가로서 성장한다는 느낌이 주는 즐거움이 언제까지나 계속 될 수는 없었다. 회사에서는 5년을 일해도 승진이 어려웠지만, 근속년수가 짧은 시민단체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많아졌다.

“내년에 무슨 사업을 해야 할지 상을 못 잡기도 했고, 후배들은 들어오는데 가르쳐가면서 일할 만한 장악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점 요구되는 것이 많아지니까 신입 때 막연히 느꼈던 부담과는 다른, 책임감을 동반한 부담이 있었던 거 같아요.”

머리가 복잡하고 건강이 나빠진 그녀는 활동을 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서울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운명의 수레바퀴

쉬면서 뭐하고 지내셨어요?

“그냥 놀았어요. 봄에 고사리 끊으러 가고, 여름에는 스노쿨링하고, 가을에는 오름에 다녔어요. 어떨 때는 제주에서 사귄 친구들이랑, 우리도 육지 사람들처럼 놀자 이러면서 주말에 게스트하우스 잡아서 놀기도 하고요. 제주에서 스윙댄스도 배웠어요. 몸이 많이 아파서 내려간 다음에 두어 달은 거의 운신을 못하고 있다가 5월쯤 날이 따뜻해져서 바닷가에 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떼 지어 바닷가에서 춤을 추는 거예요. 너무 자유로워보여서 검색을 했더니 제주 시내에 동호회랑 바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배우게 됐죠.”

짬뽕을 먹으면 자장면이 먹고 싶고, 자장면을 먹으면 탕수육이 먹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던가.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제주도 생활도 어느 시점이 되자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가을쯤부터는 육지 소식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한반도 운하가 4대강으로 탈바꿈하면서 큰 문제가 되었는데 자신이 거기에 속해있지 않은 것이 답답했다. 겨울을 보내면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회현안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회원관리팀으로 복귀했네요?

“처장님이 복직여부를 물어보면서 시민참여팀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현장에서는 정책을 다루거나 관과 하는 일이 많아서 시민들과 뭔가를 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사람들을 만나는 속에서 현장의 경험들이 깊이가 더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갈증은 채워졌나요?

“그런 거 같아요. 4년 동안 시민과 회원을 만나고 나니까 이제 관계나 우정이란 단어를 조금 쓸 수 있겠다 싶어요. 마주보고 이야기 할 때만이 아니라, 전화나 이메일을 보낼 때도 이심전심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우리 사이에 어떤 에너지가 흐른다는 느낌이 들면 큰 힘이 되기도 하고, 이런 에너지가 모일 때만이 관계라는 말을 쓸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복귀한 뒤에 4년을 더 일한 그녀는 올해 안식년을 가게 됐다. 6년을 일하면 1년의 안식년이 주어지지만, 늘 인력난에 허덕이는 시민단체에서 먼저 휴식을 제안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시 고민이 생긴 걸까?

“4년을 일하다보니 또 다른 한계에 부딪친 거죠. 회원들과 교감을 한 것은 너무 좋았지만, 교감을 위해서 또 다른 장치를 마련하고 싶은 생각이 있고, 연차가 있다 보니 조직 안에서도 어떤 구성원이 되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더라고요. 전체 인생으로 보았을 때도 내일모레 마흔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다음에 대한 고민도 돼요.”

안식년 동안 뭐 할지 계획 세웠어요?

“구체적인 계획은 못 세웠어요. 막연하게 무기를 한 가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활동가로서의 무기일 수도 있는 거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한 역량이 될 수도 있고요. 점점 두려워지는 게 많아요. 혼자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여행가거나 공부해보려고요.”

운명의 수레바퀴. 타로에서 어떤 전환이나 변화를 의미하는 카드다. 운명이 어떤 변화의 기로에 섰을 때, 그녀는 기꺼이 변화를 선택했다. 회사원에서 활동가로, 서울에서 제주로, 자신의 세계(월드 – 타로에서 완성을 의미하는 카드)를 찾아 끊임없이 떠났다. 스페인 여행을 가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제주에 정착해 살고 싶다는 그녀는 1년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녀의 운명의 수레바퀴가 어디로 회전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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