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5년 03월 2015-03-02   3014

[특집] 핵의 평화적 이용? 그건 네모난 동그라미

특집 원전, 이제는 멈출 때

 

핵의 평화적 이용? 
그건 네모난 동그라미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참여사회 2015년 3월호 (통권 220호)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가 시작된 지 만 4년이 되었다. 그 사고는 일어나서 멈춰버린 일회적인 사고가 아니다. 여전히 멈출 수 없어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미래 어느 시점까지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고는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 사고로 인해 반경 20km이내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구역이 되어 버려 집과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16만 명이 넘고, 그들 중 상당수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채 신산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디 그들뿐이랴? 바다 건너 우리도 여전히 잠재적 피해자로 남아 있다. 일본에서 수입된 고철과 폐타이어가 우리 삶을 담고 있는 건물을 짓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고 있고, 밥상에 오르는 음식이 혹여 방사능에 오염된 건 아닌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빛바랜 명분 ‘핵의 평화적 이용’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로 인해 핵발전의 본질적 위험성을 인식하고, 그래서 탈핵으로 나서야 한다고 믿게 된 시민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방사능은 인간의 오감으로 알 수 있는 물질이 아니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고 직후의 충격이 묽어지며 긴장과 우려가 조금씩 느슨해져 가고 있다. 1986년 4월의 체르노빌 핵발전 사고로 핵발전이 얼마나 위험하며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인지 알 수 있었음에도 그런 인식이 갈수록 무뎌졌다. 급기야 25년이 지나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구호’가 한창이던 2011년 3월, 다시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를 목격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런 전철이 반복될까 두렵다. 두 번에 걸친 최악의 7등급 핵발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나라에서는 지금도 핵발전소가 지어지고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눈과 귀를 닫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안전한 관리와 통제가 가능하다는 오래된 신념을 붙들고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빛바랜 명분을 여전히 내걸고서.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은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평화를 위한 원자Atoms for peace”를 주창한 데서 비롯되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정말 평화를 위해 핵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걸까? 핵발전 지지자들은 핵기술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핵무기를 만드는 파괴적 기술이 될 수도 있지만, 핵발전을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만듦으로써 편리하고 안락하며 풍족한 삶을 위한 평화적 기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기술의 어두운 면을 걷어내고 밝은 면만 이용하면 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핵폭탄 제조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핵발전 기술은 언제든 핵무기 제조 기술로 전환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핵발전 자체도 끊임없이 우리 삶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평화롭다고 할 수는 없다. 핵발전으로 인해 우리의 건강과 안전이 위태롭다면, 핵 발전으로 인해 사회갈등이 끊이지 않는다면, 핵발전에 따른 방사성 폐기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이미 그 상태는 평화가 아니다.

 

핵발전과 핵무기 제조는 쌍생아

무엇보다 핵발전 기술은 핵무기 제조 기술에 뿌리를 둔 쌍생아로, 핵발전 기술은 여전히 핵무기 제조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평화적 이용이란 말은 허구다. 1941년 12월 미국에서 핵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공동으로 참여한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가 시작되었고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주의 로스 앨러모스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을 거쳐, 다음 달인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6일)와 나가사키(9일)에 핵폭탄이 투하된 후 1939년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종전 후 1949년에는 옛 소련이, 1952년에는 영국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핵보유국이 되었다. 핵무기를 보유할 때 핵무기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핵 억지력’을 명분으로 핵무기보유국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런 추세를 제어하여 핵무기 제조 시도를 막으면서 핵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다른 나라의 핵산업을 감시하고 통제하여 핵분야에서 세계적 주도권을 잡을 필요를 느꼈다. 

바로 이런 필요에서 핵분열을 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핵무기가 아니라 핵발전 방식으로 이용하자며 “핵의 평화적 이용”을 제안한 것이다. 핵발전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을 필요 때문에 핵의 평화적 이용이 주창된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정치적 의도가 핵심적 동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투입된 당시 비용은 20억 달러로 이를 2012년 가치로 환산하면 255억 2천만 달러, 한화로는 약 277조 77백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이었다. 이런 비용을 들여 생산해 낸 핵무기 기술을 핵발전 기술로 전환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다른 국가에 수출하는 것은 경제적이기도 한 것이었다. 

1954년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5MWe 규모의 오브닌스크 핵반응로를 만들었고 이어서 1956년에는 영국이 세계 최초 상업용 핵반응로인 60MWe 규모의 콜더홀 핵반응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미국이 펜실베니아 주에서 60MWe 규모의 십핑포트Shippingport 가압경수형원자로, 경수를 감속재와 냉각재로 사용하는 원자로의 일종 핵반응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본격적인 상업용 원전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웨스팅하우스가 250MWe의 양키로를 가동하기 시작한 1960년부터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세계는 핵발전 시대로 접어들었다. 현재 핵발전 보유국은 31개 국가로 핵발전을 시작한 국가들은 단지 에너지원으로서 핵발전을 도입했다고 보기 어렵다. 

핵무기를 보유한 영국과 프랑스 같은 국가들에서 지속적으로 핵물질을 보유하기 위해 핵발전과 재처리를 시작했을 뿐 아니라 핵무기 비非보유국이라 하더라도 핵무기 보유를 위한 정치군사적 의도가 암암리에 작용해서 사전 단계로 핵발전을 도입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일본이 대표적이며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핵발전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란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여전히 핵무기와 연결되어 있다.

 

갈등과 불안을 야기하는 핵 이용 문제

정치군사적 측면을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핵발전은 결코 평화로운,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 하기 어렵다. 핵발전소가 우리나라에서 가동되기 시작한 이래 핵발전을 둘러싼 사회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신규 원전 입지와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설, 노후 원전 수명연장과 폐로 문제, 핵발전 전력의 송전을 위한 (고압)송전선과 송전탑 설치에 이르기까지 핵발전 관련 시설물의 입지는 해당 지역주민들을 분열시켰고 우리 사회에 끝없는 갈등을 낳았다. 미래 세대에게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사용후 핵연료문제 해결을 위해 공론화위원회가 2013년 10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성탄절 전후에 있었던 해커들의 한국수력원자력 해킹사건은 우리의 안전이 언제든 파괴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핵발전소가 언제든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핵의 평화적 이용이 얼마나 부실한 궤변인지 짐작케 한다. 핵발전은 우리의 안전을 담보로 한 한탕주의 도박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세상에 존재하는 말이라 해서 다 말이 되는 건 아니다. 바로 그 단적인 예가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말이다. 그건 “네모난 동그라미”가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관련 학회와 정부위원회를 비롯해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탈핵에너지교수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함께 집필한 책으로 『환경사회학 이론과 환경문제』, 『탈핵학교』,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 『지속가능한 사회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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