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3-12-26   736

<진한이의 폭력 디비기> ‘사랑의 매’

인간은 직, 간접적으로 수많은 폭력을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어떤 폭력은 피해자가 그것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진다. 폭력을 폭력이 아닌 것처럼 은폐하거나 때로는 정당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 감춰진 폭력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기고자 주

중·고교 시절, 나는 소위 말하는 농땡이였다. 그렇다고 싸움을 잘하는 영웅적인 존재도 아니었으니 학교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에 불과했다. 덕분에 초등학교부터 수많은 종류의 체벌을 받아왔다.

나에게 가해졌던 수많은 체벌들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나는 그런 사랑을 결코 원치 않았다. 영화 ‘친구’에서 가장 리얼하고, 공감이 가는 장면은 유호성과 장동건이 선생님에게 맞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보다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 아픈 경험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 그 기억을 꺼내 본다.

“너거 아부지 머 하노?”

“이발사 일 하시는 데예.”

“너거 아부지는 머리 깎아서 니 가르키는데 성적이 이게 머꼬?”

그리곤 퍽!퍽!퍽! 그때 아버지 직업이 이발사라는 게 너무 원망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 직업은 아이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수많은 종류의 체벌 중에서 아직도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몇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1신

중학교 때 일이다. 체육시간에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옷을 다 벗으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있었다. 반 아이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속옷만 남긴 채 다 벗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디선가 낚싯대를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는 한 명씩 꼼꼼히 몸 상태를 살펴보셨다.

“야 임마 봐라. 때가 꼬질꼬질하네. 이게 머꼬.”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낚싯대를 몸을 향해 휘익휘익 저으셨다.

“아…악.”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감쌌다. 선생님의 낚싯대는 몸 부위 중에서 때가 낀 곳을 낚아 올렸다. 내 차례였다. 집안에 샤워 시설이 없어 목욕을 잘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내 몸 곳곳을

전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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