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3-05   1220

<안국동 窓> 김대환 신임 노동부장관께 보내는 공개서한

김대환 노동부 장관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참여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박영선입니다. 제게는 아무래도 장관이란 호칭이 부자연스럽네요. 고 김진균 교수의 정년퇴임 인사말에서도 언급되었던 바처럼 제게는 “김대환이라는 인물이 장관보다는 우리 사회와 대학의 민주화를 위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결성하여 한국의 정체성 규정과 지식의 내용을 규정하는 치열한 이데올로기 투쟁을 감행한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이미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임 노동부 장관인 김대환 교수께 공개적인 편지를 보내는 것이니, 일단 호칭을 김장관님으로 하겠습니다.

김장관님과 참여연대는 벌써 인연이 있습니다. 창립발기인으로 참여연대의 출발을 함께 하셨지요.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제가 장관님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참여연대 신참 간사로 일하고 있을 때, 한 노동조합으로부터 강사 섭외를 요청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장관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장관님과 일을 하기는커녕 가까이에서 뵌 적도 없었던 터라 몹시 망설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드렸었지요. 아마 제 요청에 응하지 않을거란 확신 때문에 제대로 설명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흔쾌하게 수락하시더군요. 노동조합이 부르는 곳이라면 가능한 마다하지 않고 가고자 한다는 아주 간명한 이유를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그 기억으로 저는 이번에 김대환 교수가 노동부의 새 수장이 된 것에 남다른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에 신임 노동부 장관과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이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정부와 노동계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언론의 호들갑스런 기사에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또 때마침 이수호 위원장도 그동안 민주노총이 관성적으로 되풀이 하던 파업투쟁보다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에 걸맞게 적절한 정책개입과 합리적 대화를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저만이 아닌 많은 이들이 노사관계가 해빙 모드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며 희망을 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지난 2월 25일 언론에 실린 노동부의 방침은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엊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노동부가 파견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분야를 26개 직종에서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관련부처와 조율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합리적 개혁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입성한 장관님께서 취임 후 처음으로 내놓은 정책이 하필이면 현재 난무하고 있는 사내 하청 및 도급으로 위장한 불법 파견을 모두 합법화시키고 정규직을 파견직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겠다는 것인가요?

지난 2월 14일 분신 사망하여 아직 장례조차 못 치른 고 박일수씨를 자살로 몰아간 것이 불법파견 아닙니까? 물론 현대중공업과 고 박일수씨가 일했던 인터기업의 관계는 형식상으로 하도급 관계라는 외관을 쓰고 있지만, 인터기업이 사업상, 노무관리상 독립성이 현저히 결여된 불법 파견업체라는 것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를 비롯해 모든 울산의 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하청기업의 노동자가 원청의 작업반장으로부터 직접 작업지시를 받습니까? 심지어 인터기업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작업도구까지 제공받았습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어떻게 김대환 노동부장관이 비정규직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하면서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의 고통과 절규에 역행하는 정책을 첫번째로 선택할 수가 있습니까. 이번 정책을 비롯하여 비정규 문제를 외면했던 노동부의 행태는 사회통합을 국정 지표로 삼고 있던 정부가 그동안 천명해왔던 비정규직 억제와 차별해소라는 기본 입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된 것이며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의 폐지 또는 더욱 엄격한 업종제한을 할 것과 불법 파견에 대한 형사처벌 등 강력한 관리 감독, 처벌을 요구해왔던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외면한 것입니다. 또한 불법파견에 대한 규제의 실효성을 도모하며 파견노동자에 대한 차별금지책을 만들고 파견근로허용 대상 업무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위한 별도의 노사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노사정위원회의 공익위원안조차 묵살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현재 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개선안은 비정규직확대안이 되어 버렸습니다. 98년 제정된 파견법은 불법파견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는다는 취지와 전문인력에 대한 일시적 수요 대처라는 목적으로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직 등 취약노동자의 희생이라는 참담한 정 반대의 결과만을 초래했을 뿐입니다. 법 시행의 결과가 이럴진대, 또 다시 파견근로를 무분별하게 확산시키는 합법적 수단을 사용주에게 쥐어 준다면 비정규직의 확대는 불보듯 빤한 일 아니겠습니까?

지난 해 9월 노동부가 ‘노사관계 개혁방향’을 발표한 후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이번에 발표한 비정규개선안도 작년의 그 로드맵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 “정부는 왜 업주로 하여금 파견노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꾸로 된 법안을 만드는지” 물었습니다. 답변은 “불법 파견이 너무 횡행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게 불법 파견 때문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면 왜 진작 불법파견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한번 실시하지 않았습니까? 불법파견 사용주에 대한 고발 등 적극적인 형사처벌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서 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답변은 이제 김대환 장관님의 몫이 되었습니다.

혹자는 파견제를 현대판 노예제라고 부릅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근로계약에 개입하여 즉 노동자의 노동력을 매매하는 중간에 영리를 얻는 착취자가 있다는 것이 바로 노예제와 다름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 때문에 도입될 당시에 그렇게 논란이 많았던 것 아니겠습니까?

김대환 노동부 장관님.

그동안 불법파견에 대한 근로감독과 형사처벌을 요구해 온 시민단체나, 파견법 폐지를 절규하던 노동자들은 왜 정부가 새삼스레 왜 이렇게 무리하게 법 개정을 추진하려는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동부가 내놓은 소위 개선안이 법제화된다면 현재 9만8천여명의 합법적 파견 노동자가 수백만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현재 20~40만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파견이 수많은 직종으로 번져나갈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입니다. 노동부는 나름대로 파견제 업종 확대에 따른 남용 방지책을 갖고 있다고 자신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상식으로는 비정규직 양산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규제안을 만드는 노동부의 계산법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양산 방안을 만들고 덧붙여 남용규제안을 만드는 것보다는 애초에 억제 방안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장관님께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사회 각계에서 한 목소리로 실정법상 보호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똑같이, 아니 더 많은 시간 혹독하게 일하면서도 여전히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고 노동법은 물론이거니와 4대보험가입조차 어려운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에 모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구를 더 이상 외면치 마시고, 지금 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무늬만 개선안인 파견법 개정안을 즉각 폐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개선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취임 축하인사가 아닌 쓴소리부터 하게 되어 무거운 심정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는 김대환 장관이라면 현재 악화일로로 치닫는 노동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쓴소리를 자처한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부르면 마다하지 않고 간다’했던 그 마음으로 노동현안을 지혜롭게 풀어나가길 기대합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박영선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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