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을 정치인이 유용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될 수 있고, 언론인이 사용한 행위는 배임수재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검찰수사결과에 발표되고 있는바, 열거주의 과세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소득세법에서는 횡령, 배임수재죄에 해당될 경우 과세대상 소득으로 열거되지 않아 현재 법규하에서는 과세에 어려움이 있음.”
위 내용은 참여연대가 세풍사건과 관련하여 돈을 받은 정치인과 언론인들에 대하여 과세를 촉구한 것에 대해 국세청이 2003. 5. 19. 참여연대에 보내온 공문의 내용이다. 국세청의 과세불가 입장은 그 후 참여연대가 나라종금 사건, 불법대선자금 사건 등과 관련해 불법적인 돈을 받은 정치인들에 대하여 계속 과세를 촉구한 제보에 대하여도 한결 같았다.
그러나 국세청의 위 논리는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위법한 해석이다. 이에 참여연대는 배임수재나 뇌물의 경우에도 현행법상 증여세나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 적법한 법집행임을 계속해서 지적해 왔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처음으로 과세를 하는 사례라는 부담이 과세관청에게 있을 것이라는 점은 십분 이해되었다. 과세대상의 첫 사례가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정치인과 언론인이 아닌가. 어찌 과세관청이 과세를 함에 주저함이 없을 수 있을까. 이러한 연민은 국세청이 뇌물이나 배임수재의 경우에 지금까지 과세를 한 예가 없었다고 주장을 하였기 때문에 이를 믿었던 것에 기초한 것이었다.
하지만 배임수재죄에 해당될 경우 현재 법규하에서는 과세에 어려움이 있다는 해석과 더불어 배임수재의 경우에 과세사례가 없다는 국세청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임이 최근 드러났다. 과세관청은 부정한 청탁과 함께 억대의 돈을 받아 배임수재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에 대하여 그 돈을 사례금으로 보아 과세를 해 왔던 것이다. 그 사건들은 모두 국세심판청구를 거쳐 행정소송이 제기되었고,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의 판단까지 받은 사건이었다(대법원 2002두 431 판결 및 대법원 97누 19816 판결).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과세소득은 이를 경제적 측면에서 보아 현실로 이득을 지배관리하면서 이를 향수하고 있어서 담세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족하다. 그 소득을 얻게 된 원인관계에 대한 법률적 평가가 반드시 적법하고 유효한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범죄행위로 인한 위법소득이더라도 귀속자에게 환원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한 이는 과세소득에 해당한다”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국세청은 지금까지 마치 배임수재죄의 경우에 과세를 한 사례가 없는 것처럼 밝혀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나의 사건도 아니고 두 사건이나 모두 배임수재죄로 처벌받은 경우에도 과세관청은 소득세로 과세를 해 왔던 것이다. 그것도 모두 대법원까지 가서 적법한 과세처분임을 확인받은 사건들이다. 과연 국세청이 국세청장을 상대로 하여 심사청구를 하고, 자신들이 그 과세가 정당하다고 법원에서 주장을 하여 승소하였던 위 사건을 몰랐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배임수재의 경우에 과세를 할 수 없고, 한 사례가 없었다고 국민들을 속인 결과를 가져온 그 직무태만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달리 위 사례를 알았음에도 배임수재의 경우에는 과세를 할 수 없고 과세한 사례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라면 이는 명백히 국민들을 기만한 것이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한편 위 대법원 판결은 재정경제부의 “대가성이 있어 배임수재, 뇌물 등으로 형사처벌 되는 경우 사례금으로 보아 소득세로 과세가능하나 어차피 몰수, 추징될 것이므로 과세실익이 없다”는 논리도 잘못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은 “납세자에 대한 형사사건에서 그에 대한 추징이 확정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금원을 국가에 추징당하게 될 것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납세자의 그 금품수수가 형사적으로 처벌대상이 되는 범죄행위가 됨에 따라 그 범죄행위에 대한 부가적인 형벌로서 추징이 가하여진 결과에 불과하다”라고 판단하여 몰수, 추징이 과세행위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에 대한 해석은 법원이 최종적으로 하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최고법원인 대법원은 배임수재죄로 처벌받은 경우에도 소득세를 과세하는 것이 적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몰수, 추징이 선고된다고 하더라도 과세권 행사에 아무런 장애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인 국세청과 재경부는 함부로 사법부의 판단을 뒤집는 행위를 함으로써 사법부를 능멸하여서는 안된다. 그러한 태도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난 것은 물론 자의적인 법집행으로 권한을 남용하거나,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행위이다.
위 두 판결의 사안과 현재 과세관청이 밝히고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과세불가 사례를 비교해 보면 그 대상자가 일반인과 정치인이라는 차이 외에 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법은 합법적인 정치자금에 관하여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것 외에 일반인과 정치인을 차별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즉 법 앞에서 모든 이가 평등한 것이다. 그런데 왜 과세관청이 아무런 근거 없이 일반인과 정치인에 대하여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려고 하는 것인가. 과세를 하여야 하고, 또한 실제로 일반인들에게는 과세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나 언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세를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그들에게 원래 납부하여야 할 세금액만큼 돈을 주는 행위와 뭐가 다른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보다 분명해 졌다.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았던 경우가 아니라 과세관청 스스로 과세를 해 왔고, 법원에서 그 과세가 적법하다는 판단을 받기까지 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해야 하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세관청은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과세처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을 속인 과세관청에 대하여 더 이상의 연민도 남아있지 않다. 자신들을 속인 국세청의 태도에 대하여 국민들이 널리 공분이 일어나기 전에 과세관청은 즉각 불법정치자금에 대하여 과세를 해야 할 것이다.
2003년 3월 20일 이용섭 국세청장은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약속하였다. “세금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신념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과세하여 국민의 사랑을 받고 기업의 신뢰를 받는 국세청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이 약속이 허언이 아님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세금이 바로 서는 모습을 국민들은 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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