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4-07   928

<경제프리즘> 케이씨씨와 소버린

올해 주주총회 철에 가장 많은 관심을 끈 회사는 에스케이와 현대였다. 두 재벌그룹이 관심거리가 된 이유는 경영권 분쟁이었다. 에스케이는 외국투자회사인 소버린의 도전을 받았고, 현대는 친족회사인 케이씨씨(금강고려화학)의 도전을 받았다. 에스케이는 외국자본의 도전이었고 현대는 토종자본의 도전이어서 크게 대조를 이루었다. 에스케이는 ‘범법자가 경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경영의 명분을 앞세운 투자자의 도전이었고, 현대는 “현대는 정씨 것이다. 김씨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인 망언을 앞세운 집안싸움이었다.

에스케이와 현대의 경영권 분쟁에서 주목할 점은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이나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투명경영과 책임경영 체제를 갖추고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서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여 왔던 재벌들이 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면서도 시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두 회사 모두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이제 최태원 회장과 현정은 회장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최 회장은 5조원이 넘는 분식회계와 부실을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특히 최 회장은 에스케이 해운에서 증발한 2300억원의 현금의 실체와 차명계좌로 회삿돈을 빼돌려 700억원이 넘는 자신의 상속세를 내는 데 사용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 사실을 밝히고 되돌려 놓아야 한다. 현 회장도 6천억원이 넘는 현대상선의 분식회계를 해결해야 한다. 집중투표제 도입, 소액주주 추천 사외이사 선임은 물론이고 케이씨씨 매각지분을 매입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현대는 정씨 것도 김씨 것도 아니며 현 회장 스스로 말한 것처럼 국민기업이기 때문에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경영권 방어 이후에 두 그룹의 명암은 크게 엇갈렸다.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이후에 에스케이는 주가가 무려 다섯 배까지 올랐고 현대엘리베이터도 두 배까지 올랐다. 그러나 경영권 방어 이후에 에스케이의 주가는 하락하지 않았으나 현대엘리베이터는 급락했다. 이러한 차이는 소버린과 케이씨씨의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외국자본인 소버린은 경영권 공격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분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토종 자본인 케이씨씨는 소유지분 전량 매각을 선언했다. 소버린은 경영개선책을 요구했지만 케이씨씨는 경영과는 관련없는 ‘정씨 것’임을 내세웠다. 소버린은 자신들과 관계가 없는 객관적인 인사들로 사외이사만을 추천했으나 케이씨씨는 ‘정씨’와 회사 임원들을 사내이사와 사외이사에 추천했다. 외국자본이 토종자본을 여러 면에서 앞선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

에스케이는 그 자체로 좋은 회사다. 그러나 총수의 경영권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 영업과 무관한 계열사 주식에 수조원을 투자하고 계열회사들의 부실을 메워주는 부담으로 멍이 든 회사다. 더구나 친인척 지분을 다 합해도 1.1%밖에 소유하지 않은 소액주주에 불과한 최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회삿돈을 빼돌려 자신의 상속세를 내는 불법행위까지 저질렀다. 소버린은 바로 이런 문제의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어떤 국내 기관투자자도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거나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채권은행들은 오히려 에스케이에 부당거래를 강요했다. 외국자본이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갖는 것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우리 스스로 우리 기업을 지켜내려는 노력은 찾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외국자본이 안방에서 설치는 꼴이 보기 싫다고 폐쇄경제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시장경제를 한다고 하면서 상장기업을 ‘정씨 것이다’라는 식으로 경영권을 지킬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개방경제에 걸맞은 국내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키우고, 투명하고 책임지는 경영체제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소버린과 케이씨씨의 경영권 도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 이 글은 4월 7일자 한겨레에 실린 컬럼입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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