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7-07   536

<경제프리즘> 사법부에 의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4승4패1무”. 이는 어느 신문기자가 참여연대가 삼성계열사와 임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민형사소송 중에서 확정이 된 사건을 기준으로 소송의 승패를 분석한 성적이다. 성적만 보면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가 국내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삼성그룹을 상대로 해서 선전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기자의 분석에서 나타난 중요한 사실은 가처분신청사건에서는 참여연대가 강세를 보였고, 본안소송에서는 대부분 삼성이 승리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법원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영진의 행위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그 행위를 중지시켜 그 행위의 적법성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겼지만, 본안소송에서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와 경영관행의 판단기준이 되는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을 과거 재벌의 경영관행을 그대로 인정하고, 조장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연대의 재벌개혁운동은 재벌기업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소수주주권의 행사, 각종 소송의 제기 등과 같은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전개되었으며, 상법과 증권거래법의 개정으로 재벌기업의 지배구조개선을 유도하는 제도개혁운동도 뒤따랐다.

그러나 아무리 이상적인 제도를 갖추고, 기업지배구조의 모델을 만든다 하여도 과거의 경영관행이 남아 있고, 반복되는 한 기업의 가치와 주주의 이익이 상실될 위험은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영에서 소외된 주주들로서는 경영진을 감시, 통제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소수주주권행사나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 기소 등을 통해 잘못된 경영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법원의 판단이 매우 절실하고, 효과적이다.

그런데 최근 최근 삼성전자 전환사채발행무효소송 판결에서 보여준 대법원의 입장은 과거 재벌기업의 불법적인 경영관행을 정당화시켜주고, 조장시키는 것으로서 19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으로 형성이 된 기업지배구조개선의 공감대를 깨뜨리는 결정이다.

대법원은 주식전환금지가처분 등 거래의 안전이 확보된 사안에서 거래안전을 이유로 편법적인 전환사채발행을 무효로 할 수 없다고 하거나, 전환사채발행을 결정한 이사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효이지만 항소심에서 늦게 주장되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 등 법리적으로 무리한 판단을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결정의 심각한 문제점은 과거 재벌의 가장 큰 페해였던, 재벌총수의 이해관계에 따른 이사회의 의사결정, 위조된 이사회, 편법적인 지분상속, 주식희석화로 인한 주주가치침해 등을 사실상 정당화시키고, 허용해줬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이사들은 도장만 맡겨놓고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사후에 이사회 결정을 양해함으로써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지배주주의 특수관계인에게 신주 또는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를 30 ~ 40% 정도로 적당하게(?) 할인발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증권시장 규율이나 다른 판결에서 보여준 대법원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대법원은 전환사채를 저가로 발행받은 코스닥기업의 대표이사를 배임죄로 처벌하였다. 검찰도 삼성에버랜드가 이사회 결의 요건을 충족시키지도 못하면서 이재용씨에게 저가로 전환사채를 발행한 것을 배임으로 보고 관련자들을 기소하였다.

증권시장에 대한 규제도 엄격해지고 있으며, 전환사채의 전환가액은 반드시 시가 이상으로 결정되도록하고 있다.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하여 제3자배정에 의한 유상증자의 경우 보장되는 할인률은 10% 이내이다. 전환사채와 같이 주식인수권이 있는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받은 두산, 현대산업개발 등 일부 재벌기업의 지배주주들은 신주인수권행사조건이 지배주주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 기존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신주인수권을 모두 포기하기도 하였다.

주주의 이익보호, 이사회의 실질적인 역할, 기업의 투명성 보다는 재벌총수의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결국 이사회의 의사결정기능과 경영진에 대한 감시기능을 무력화시키고, 회사의 불투명성을 더욱 조장하게 되었으며, 잘못된 경영관행에 대한 사법적 구제와 시정의 가능성을 봉쇄시켜 사실상 우리나라 증시의 투자환경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19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증권관련집단소송제의 도입, 사외이사 제도 등 각종 지배구조개선 정책으로 과거의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어느정도 줄여나갔다 싶었는데 사법부의 이번 결정으로 한국기업가치에 대한 할인률이 다시 커졌다.

참여연대와 삼성그룹간에는 또하나의 중요한 소송이 남아있다. 삼성전자 이사들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이다. 1심 법원은 이사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경영판단의 법칙(Business Judgement Rule)이 인정되지 않고, 비상장주식의 평가기준을 세법상의 평가기준이 아닌 실질가치나 거래가치로 보아 비상장계열사의 주식을 고가로 매입하거나 저가로 매입하는 행위는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이며, 부실기업인수에 대한 신중한 판단 없이 내린 이사회의 의사결정은 이사의 선관주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혀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삼성전자 전환사채발행무효소송에서 보여준 대법원의 가치판단기준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주주대표소송에서도 대법원이 불법적인 재벌의 경영관행을 인정하여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적극적인 방조자가 될지 우려된다.

김선웅(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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