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8-19   756

<안국동窓>‘죄벌’의 나라

‘죄벌’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재벌’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죄벌’이라고 불러야 옳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재벌은 그악스럽게 돈을 벌기 위해 너무나 많은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는 ‘죄벌’의 나라이다. 이 때문에 이 나라는 ‘1만 달러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죄벌’을 그대로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벌이란 말 그대로 옮기자면 ‘돈이 많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벌이라는 말은 물론 이 정도의 뜻을 훨씬 넘어선다. 잘 알다시피 재벌은 한국 경제의 지배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느냐이다. 재벌은 한국 경제의 ‘부당한’ 지배자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이다.

재벌이 안고 있는 숱한 문제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로는 부당한 소유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최근의 조사에서도 다시금 명확하게 드러났듯이 재벌 총수는 불과 1-2%의 지분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거대기업군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어떤 경제상식으로 보더라도 이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주식회사란 주식을 소유하는 만큼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기업을 뜻한다. 그런데 어떻게 1-2%밖에 안 되는 지분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거대기업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정상적인 것이라면 재벌의 기업지배방식이야말로 소로스도 탐낼 독창적인 기업지배방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재벌을 그대로 두고 경제구조를 합리화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재벌은 한국 경제를 그 뿌리부터 집어삼키고 있는 거대한 불가사리이다. 한국 경제가 술 취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헤매는 것은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재벌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은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거대한 암종이다. 재벌이 사라져야 한국 경제를 합리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인력과 자본을 비롯한 자원의 배분을 정상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새로운 성장과 발전의 길을 닦을 수 있다. 재벌은 그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온갖 불법과 탈법도 서슴치 않고 저지른다. 이런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잘못된 것이다.

재벌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암종이라는 자신의 본질을 감추기 위해 재벌은 적극적으로 정치와 야합하려고 한다. 정경유착은 단순히 몇몇 썩은 정치꾼의 헛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와 경제가 서로 거래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재벌처럼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가 자신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깊이 결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줄을 대고 돈을 갖다 바치는 것이다. 썩은 정치꾼이 강하게 요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서천 소가 웃을 소리일 뿐이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에서 잘 드러났듯이 재벌은 망국적 정경유착의 주범이다. 정말로 정경유착을 근절하고자 한다면, 정치개혁만으로는 분명히 부족하다. 반드시 재벌개혁을 이루어야만 한다.

재벌에게 정경유착은 엄청난 불로소득을 위한 확실한 투자이다. 정치는 정경유착의 댓가로 재벌에게 문어발 확장, 각종 세제혜택, 그리고 거대한 잇권을 안겨준다. 100억을 투자해서 1000억이 아니라 10조, 100조를 벌 수 있는 것이 정경유착이라는 투자이다. 재벌에게 정경유착보다 더 확실한 투자는 없다. 그런데 불가사리 재벌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사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생하는 국민의 피땀이다. 택시기사가 단 돈 2-3만원을 벌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운전을 하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이 80억원이 넘는 최최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정경유착을 매개로 이렇게 극단적인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이면에 한국 경제의 부당한 지배자인 재벌이 자리잡고 있다.

재벌이 이 나라의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것도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승자독식의 논리로 무장한 재벌이 이 나라의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한, 이 나라의 경제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입만 열었다 하면 이렇듯 무시무시한 승자독식의 논리를 외치는 재벌 자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예컨대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인 삼성을 보자. 이재용은 도대체 어떤 경쟁에서 이겼길래 삼성의 승계자가 되었는가? 그는 어떤 경쟁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건희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편법상속’의 대가가 되었고, 이 나라 최대기업의 승계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이 나라의 불평등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이렇게 일반 국민에게는 승자독식의 원리를 강요하면서 스스로는 그런 원리와 전혀 상관없는 ‘세습왕조’를 세우는 재벌은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다.

수사망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갔던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슬며시 돌아온 다음 날, 경총은 회의를 열어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잘못된 국민 정서’를 탓했다. 경총은 뻔뻔스러울 뿐만 아니라 멍청하기도 한 것 같다. 모든 재벌이 잠재적 범죄자는커녕 현재적 범죄자인 이 ‘죄벌’의 나라에서 경총의 이런 주장은 그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경총만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경총과 같은 단체의 이렇듯 물색없는 주장 자체가 ‘죄벌’의 문제를 다시금 분명하게 확인해주지 않는가?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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