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5-01-31   853

<경제프리즘> 과거분식에 대한 집단소송 적용 유예는 불가하다

작년 연말 국회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5년 1일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증권집단소송법이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전망이다. 재계와 정부가 법 시행 이전에 행해진 과거분식을 해소하기 위한 유예기간을 둘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데, 잘못하면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을 유보시키는 이상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은 소송절차에 관한 법률 규정으로, 새로운 법을 만들어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증권거래법 등 기존 법률에서 이미 규정하고 있는 불법행위에 관한 소송절차를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애초 별도의 유예 기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제정 당시, 과거 분식회계를 정리할 수 있도록 1-2년의 유예기간을 달라는 재계의 요구를 국회가 받아들여,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들은 2004년 7월부터, 자산 2조원 이하 기업들은 2005년 7월부터 법이 적용되도록 시행을 유예한 수정안이 2003년 6월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되었다. 그러나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증권집단소송법은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치면서 시행이 또 한 차례 연기되었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들은 2005년 1월 1일, 자산 2조원 이하 기업들은 2007년 1월 1일로 법 시행을 6개월 더 미룬 것이다. 그 결과, 자산 2조원 이하의 기업들은 4년에 걸쳐 과거 분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고,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들도 2년에 걸쳐 분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아직까지 과거 분식을 해소하지 않고 있다가 법 시행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작년 연말에 또 다시 유예기간을 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증권집단소송제도 도입 움직임은 1996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정부가 구체적인 입법 계획을 밝힌 것도 이미 2001년이었다. 따라서 재계가 집단소송법 도입에 대비하여 분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또한, 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기업들은 2년 혹은 4년 동안 집단소송을 당할 걱정 없이 분식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과거 분식을 해소할 기간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재경부와 금감위가 원칙을 저버린 채 재계의 주장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재경부는 2003년 재계의 법 시행 연기 요구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던 바 있는데, 무엇 때문에 입장을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명도 없이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재경부가 과거 분식에 대한 증권집단소송법 적용을 유예하기 위해 내놓은 법개정안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재경부는 시행일 이전에 저질러진 과거 분식만을 골라내서 법적용을 유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법제도의 막대한 혼란을 가져오는 위험한 발상이다.

기본적으로 회계연도는 결산일 기준으로 마감이 되고 결산일 이후에는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분식을 수정하지 않은 채 보유하고 있거나 전년도의 분식을 전기오류 수정 손실로 반영하여 해소하지 않고 또 다시 회계기준을 위반하여 해소하는 경우는 모두 새로운 회계연도에 발생한 새로운 분식행위이다. 이제까지 감독 당국도 이러한 원칙에 따라 분식회계를 적발해왔다. 따라서 하나의 재무제표에서 과거의 분식과 새로운 분식을 구분해낸다는 것은 개념적으로 성립하지도 않을 뿐더러 각 회계연도별로 별 건의 분식행위를 규율해온 기존 법체계와도 충돌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개별 분식행위가 언제 발생한 것인지를 추적하여 발생시점에 따라 과거 분식과 새로운 분식을 구분한다 하더라도, 증권집단소송 적용 여부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이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의 재무제표에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전년도의 분식과 당해연도에 발생한 역분식(분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회계기준 위반 행위), 이들과 별개로 순전히 당해연도에 새로이 발생한 신규분식이 혼재되어 있는데 결과적으로 주가가 하락한 경우, 이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해가 어느 분식으로부터 연유한 것인지를 구분하여 소송 적용 대상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전경련에서 용역을 의뢰하여 국회에 제출된 모 법무법인의 보고서조차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회계 이론상으로는 과거회계분식을 단절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과거를 단절시켜 현재 시점부터 새롭게 발생하는 분식회계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구분을 하는 것은 상당한 난점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소송과정에서 이를 구별하는 과정에서 많은 다툼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작년 연말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는 과거분식에 대한 증권집단소송법 적용을 유예하도록 하는 법개정안을 부결시킨 것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은 명확히 현재 시행 중인 법이다. 명분상으로도 전혀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시장과 사법제도의 혼란만을 야기할 ‘과거분식에 대한 집단소송법 적용 유예’ 주장은 이제 철회되어야 하며, 정부와 기업 모두가 제도의 안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불법행위로 인해 부당한 피해를 입는 선의의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기업과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증권집단소송법이 이익집단의 로비에 밀려 후퇴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승희(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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