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삼성재벌은 분명히 단순한 대기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경제영역을 넘어서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공공연히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 말에는 삼성재벌이 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삼성재벌을 위해 존재하는 상황에 대한 깊은 우려와 비판의 뜻이 담겨 있다. 홍석현과 이학수는 우리의 우려와 비판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삼성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삼성게이트를 철저히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
삼성공화국은 무엇보다 먼저 ‘민주주의의 위기’를 뜻한다. 민주주의란 시민의 참여와 통제를 통해 작동하는 정치이다. 그러나 오늘날 삼성재벌은 시민의 참여와 통제를 벗어나 존재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삼성재벌은 불법적 상속의 잘못을 저지르고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삼성재벌은 천문학적 금액의 불법정치자금을 ‘책떼기’ 등의 비열한 방법으로 정치인들에게 제공한 범죄에 대해서조차 사실상 아무런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삼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지 않은 법조인은 실력이 없는 법조인이라는 실로 경악해야 할 말이 떠돌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큰 댓가를 치르고 어렵게 확립한 민주주의가 오늘날 새로운 위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예전처럼 무력을 장악한 집단에 의한 위기가 아니라 막대한 돈을 축적한 집단에 의한 위기이다. 삼성재벌의 문제를 올바로 파악하고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기본질서가 크게 교란되고 말 것이며, 따라서 이 나라의 경제도 위기를 맞고 말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서도 민주주의를 올바로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 밖에서 존재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각종 정경유착과 부당경쟁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위험천만한 사이비 자본주의 시장경제이다.
우리는 삼성공화국을 하나의 실체로 받아들인다. 이 나라는 분명히 헌법 제1조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모든 시민이 주권자인 민주공화국이지만, 그 이면에서 삼성재벌은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이 나라의 의사결정과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밝히기 위해 삼성재벌의 인적 네트워크를 분석하기로 했다. 이로써 우리는 삼성재벌이 이 나라의 의사결정과정에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인적 네트워크란 쉽게 말해서 ‘사람들의 관계망’을 뜻한다. 사회는 본질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또한 민주주의 사회는 원칙적으로 사람들의 관계가 평등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그러나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고 해도 실제로는 의사결정과정이 완전히 평등하거나 투명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의사결정과정을 제대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조차 극히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의사결정과정을 장악한 정치인과 전문가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된다.
이른바 ‘이너 써클’이 만들어져서 특정 집단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거나 그런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이다. 삼성공화국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삼성재벌의 인적 네트워크 분석은 삼성공화국의 ‘이너 써클’ 분석이다. 삼성재벌은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주체는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삼성재벌은 적극적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이 나라의 의사결정과정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삼성재벌이 영입한 외부인사가 대부분 ‘감독기구’ 출신이라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돈 놓고 돈 먹기’라는 말이 있다. 삼성재벌의 존재방식은 그 좋은 예이다. 삼성재벌은 막대한 돈을 써서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로써 의사결정과정 자체를 확고히 장악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점에 크게 주의해야 한다. 삼성재벌은 이 나라의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차원을 넘어서 그것을 아예 장악하고자 한다. 이것이야말로 삼성재벌의 가장 큰 특징이며 가장 큰 위험이다. 삼성재벌의 인적 네트워크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겨 준다. 그러나 이 두려움의 너머에서 희망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희망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다.
‘이상호 X파일’을 통해 드러난 삼성게이트는 단순한 정경유착의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막대한 돈을 이용해서 거의 무소불위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립한 삼성재벌의 대한민국 장악 계획이라고 해야 한다. 중앙일보라는 대형 신문사까지도 이 계획의 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 삼성게이트를 해결하지 않고 삼성공화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성숙시키기 위해서도, 삼성게이트는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을 역사가 지켜보고 있다. 삼성게이트는 검찰의 존재의의를 확인해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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