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03-19   1781

<안국동窓> ‘안티조선운동’의 중요성

현대 사회에서 언론매체의 중요성은 너무나 크다. 잘 알다시피 현대 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이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형성과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언론매체이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발달 정도를 떠나서 모든 생명체의 공통적 특징이며, 또한 여기서 나아가 마치 생명체처럼 작동하는 기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가 마치 거대한 유사 생명체처럼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언론매체 때문이다.

우리는 언론매체를 통해 수많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언론매체는 단순히 외부의 정보를 수집해서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의 정보를 선별적으로 수집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우리는 언론매체를 통해 변형되거나 왜곡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된다. 심한 경우에 우리는 언론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매체에 의해 이용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미 오래 전에 위너와 맥루한은 이러한 언론매체의 위력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1948년에 노버트 위너의 <싸이버네틱스>가 발간되고 16년이 지난 뒤인 1964년에 마샬 맥루한의 <매체의 이해>가 발간되었다. <싸이버네틱스>가 정보의 중요성을 혁명적으로 입증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면, <매체의 이해>는 정보의 소통을 핵심적 기능으로 하는 언론매체의 중요성을 혁명적으로 주창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맥루한은 ‘매체가 바로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매체를 단순히 메시지의 전달도구로 봐서는 안 되며 그 자체가 한 사회의 특징을 명확히 보여주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는 언론매체를 도구에서 내용으로 바꿔놓았다.

맥루한은 특히 언론매체의 기술적 차이에 주목했지만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 맥루한의 설명을 조금 변형하자면, 불량매체가 지배적인 사회는 불량사회이기 쉽다. 사실 싸이버네틱스의 설명에 따르자면, 언론매체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형성자이자 조정자에 가깝다. 따라서 불량언론은 불량식품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불량언론은 불량식품의 존재를 은폐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우량식품으로 왜곡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언론매체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민주주의의 기본조건이다.

‘조선일보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조선일보가 수구보수세력의 기관지와 비슷하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조선일보는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강력히 억제하려 한다. 조선일보는 한국 사회의 ‘진정한 선진화’를 가로막고 일제와 독재의 역사를 되살리려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 조선일보는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주장할 뿐만 아니라 사실을 노골적으로 왜곡해서 보도하기도 한다. 조선일보의 지면을 채우고 있는 각종 지식과 문화는 이러한 조선일보의 무서운 정체를 치장하기 위한 장식물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조선일보 문제’라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발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과 지식인들이 힘을 모아 나선 것은 1999년의 일이었다. 김대중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최장집 교수를 공격했던 것이 그 직접적 발단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조선일보가 민주화의 성과를 악용하면서 민주화를 갈수록 크게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전두환의 학살만행 때 너무나 잘 드러난 반민주적, 반국민적 조선일보에 적극 대처하지 않는다면, 민주화가 크게 왜곡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 인식이 ‘안티조선운동’의 실제적 원천이었다.

그 동안 조선일보는 변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조선일보는 수구보수세력의 기관지라는 성격을 더욱 더 강화하고 있다. 거듭해서 정권교체에 실패하고는 이번에는 더욱 더 강력하게 수구보수세력의 정치를 지도하려 하고 있다. 막말과 왜곡도 여전하다. 최근에 조선일보에는 ‘정직하지도, 머리가 좋지도 않은’ 것이 분명한 강천석 주필의 칼럼이 실렸다.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이 칼럼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를 지지한 1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 대한 너절한 욕설이다. 또한 조선일보는 진실화해위에서 2007년 조사개시를 발표하자 진실화해위의 활동을 ‘농담’이며 ‘취미’라고 모욕하는 사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진실’보다는 ‘거짓’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이로써 다시금 명백히 드러났다.

‘거짓’을 추구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이다.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는 것도 한가지 방식이다. 최근에 조선일보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주택이 삼성재벌 이건희의 집이라고 보도하면서 두번째로 비싼 주택이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흑석동 집이라는 사실은 쏙 빼고 보도하지 않았다. 2006년에도 2위였던 이 집의 공시가격은 2006년보다 20.4% 올라 86억3000만원이며, 보유세는 40.9% 늘어 1억4750만원이 되었다. 물론 부동산업계에서는 이 집의 실제 가격이 100억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본다. 방상훈은 2006년 6월 대법원에서 공금횡령과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벌금 25억원의 확정판결을 받고 조선일보 발행인 자리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조선일보는 보유세를 ‘세금폭탄’이라며 공격하고 있고,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속이 빤히 보이지 않는가? 그야말로 ‘정직하지도, 머리가 좋지도 않은’ 신문사가 아닌가?

수구보수세력은 ‘정직하지도, 머리가 좋지도 않은’ 세력이다. 한마디로 무능해서 부패할 수밖에 없는 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구보수세력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노골적인 폭력에 의존하며,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널리 유포하려 한다. ‘정직하지도, 머리가 좋지도 않은’ 수구보수세력이 지배하는 사회는 불행하고 위험하다. 무능해서 부패하고 폭력적인 수구보수세력이 지배하는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대립과 퇴보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러한 수구보수세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정직하지도, 머리가 좋지도 않은’ 조선일보가 최고의 판매부수를 자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 사회의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안티조선운동’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기만 하다. 그러나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민주정부의 잘못이 커지면서 이러한 사실이 상당히 퇴색한 듯하다. 이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커다란 위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정직하지도, 머리가 좋지도 않은’ 조선일보에게 ‘자전거일보’요 ‘5만원일보’로서의 ‘제몫’을 찾아주도록 하자.

홍성태 (상지대 교수,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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