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06-10   2326

<안국동窓> 6월항쟁 20주년과 ‘민주화의 민주화’

어느덧 6월항쟁 20주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20대 초의 청년은 40대 초의 중년이 되었다. 그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한국은 확실히 민주국가가 되었고, 경제성장도 엄청나게 이루어졌다. 이렇게 좋은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기도 하다. 한국은 다인종국가,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은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예컨대 다인종국가가 되었어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아직 제대로 개선되지 않은 상태이다. 순혈주의 민족관 혹은 국민관의 문제에 관한 논의는 이제 시작단계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물론 다인종국가라는 변화에 올바로 대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폐쇄적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다인종국가는 단순히 인구구성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 거대한 탈근대적 변화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6월항쟁은 민주화의 길을 열었다. 이로써 한국은 비로소 헌법 제1조에 부합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제대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국가의 의무는 단순히 ‘공정선거’로 끝나지 않는다. 민주국가는 주권자인 시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민주국가는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국가는 복지국가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며, 복지국가를 추구하지 않는 민주국가는 사이비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직까지 6월항쟁의 꿈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벌의 경우를 보자. 재벌은 군부독재와 결탁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한국의 비정상적 자본가를 뜻하는 개념이다. 민주화는 당연히 군부독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그와 결탁해서 부를 축적한 재벌의 개혁을 이루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재벌은 전혀 개혁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민주화와 함께 더욱 강력해졌다. 이것은 심각한 ‘민주화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재벌은 이제 경제권력을 넘어서 직접 정치권력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불과 1-3%의 지분으로 세계적인 대기업을 좌지우지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을 만드는 재벌이라는 괴물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민주화의 대상이다.

재벌은 지구화를 빌미로 양극화를 강력히 추진해왔다. 지구화는 전면적 경제개방을 요구하며, 따라서 지구적 차원의 무한경쟁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삼성재벌의 이건희 회장은 최근에 또 다시 ‘천재구국론’을 주장했지만, 사실 그는 이런 주장을 이미 1993년부터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이재용은 과연 ‘천재’라서 삼성재벌의 계승자가 되었는가? 무한경쟁의 요청은 누구보다 먼저 재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재벌이 주도하는 한미FTA는 양극화를 더욱 악화할 것이다. 이러한 한미FTA의 영향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 실질적 연대를 위한 사회운동의 개혁이 이미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분명히 재벌은 정경유착 뿐만 아니라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기도 하다. 한국은 국토규모로 세계 109위의 조그만 나라이지만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의 커다란 나라이다. 그러나 경제대국 한국의 실상은 여전히 척박하다. 1987년의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경제적 민주화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으나, 1997년의 외환위기와 함께 경제적 민주화는 급격히 위축되고 말았다. 그 결과 정치적 민주화도 크게 빛이 바래게 되었다. 재벌을 위시한 양극화의 수혜세력은 지나친 분배요구와 포퓰리즘 때문에 경제성장이 제약되어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무서운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양극화를 더욱 더 촉진하고 있다.

월 소득 600만원 이상 가구가 전체 가구의 10%를 넘어섰지만, 800만명의 비정규 노동자와 700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있다. 상위 소득 가구와 하위 소득 가구의 차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부동산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불과 전체 인구의 1%(약 50만명)가 전체 개인소유토지의 57%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소유자 999명(0.008%)가 무려 3.1%를 소유하고 있다.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부자들은 언론과 학계를 비롯한 온갖 자원을 동원해서 양극화를 정당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노동자와 자영자도 이런 양극화 논리를 적극적으로 또는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복지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개혁과 함께 민생의 개선을 위한 과제들도 추구해야 한다. 한국은 연 66%라는 세계 최고의 폭리를 허용하는 대부업법을 가지고 있다. 이 나라에서 사채를 쓰는 것은 거의 죽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 무지막지한 ‘살인폭리법’을 버젓이 옹호하고 있다. 대부업법은 도대체 우리가 어떤 민주화를 이룬 것인가에 대해 근원적으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재정경제부는 차라리 ‘사채경제부’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이다. 온갖 부패와 비리로 얼룩져 있으면서 개혁을 거부하는 사립학교의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의 ‘상지대 판결’에서 잘 드러났듯이 사법부도 심각한 개혁의 문제를 안고 있다.

더욱 거대한 거시구조적 차원에서 우리는 생태적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한국의 ‘삶의 질’은 세계 40위권이며, ‘환경 질’은 고작 120위권에 머물고 있다. 환경 질을 개선하지 않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또한 그것은 복지국가를 이룩하기 위한 필수적 경로이기도 하다. ‘토건국가’ 한국은 매년 수십조원의 혈세를 탕진해서 국토를 파괴하고 부패를 만연시키고 있다. 이 ‘기형국가’의 상태를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정치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 핵심은 건교부를 폐지하고 각종 개발공사들을 통폐합하는 것이다. 우리는 국토의 파괴와 혈세의 탕진을 막고 ‘생태적 복지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재벌경제와 토건국가가 모두 개발독재의 구조적 유산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민주화는 아직 개발독재의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이룬 성과를 최대한 활용해서 더 많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화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민주화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영속적 과정이며, 시대의 변화는 언제나 또 다른 과제를 낳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의 과제를 올바로 찾아내고 추구하는 것이다. 정권이나 인물 중심의 민주화가 안고 있는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완전히 입증해주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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