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한국의 보수세력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질문은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기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갈수록 보수화의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보수세력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크게 네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첫째, 한국의 보수세력은 반민족적이었다. 물론 한국의 모든 보수세력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의 암살에서 잘 드러났듯이 해방 이후 한국을 지배하게 된 보수세력은 반민족적 보수세력이었다. 김구 선생처럼 민족주의를 강력히 추구한 보수세력은 결국 처절하게 응징되고 말았다. 이것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일제 부역세력과 결탁한 이승만 정권의 필연적 산물이었다. 일제 부역세력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철저히 반민족적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점에 일제 관동군 출신 박정희의 군사쿠데타가 놓여 있다.
둘째, 한국의 보수세력은 반민주적이었다. 이 점에서 그것은 세계사적 보수세력과 확연히 달랐다. 예컨대 서구의 보수세력은 결코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한국의 보수세력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체제를 옹호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무려 44년에 걸친 독재체체의 기득권 세력이 바로 한국의 보수세력이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모욕하고 억압하고 압살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민주주의가 이겼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피와 땀을 흘려야 했다.
셋째, 한국의 보수세력은 폭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지배에서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군사력을 불법적으로 동원한 쿠데타를 일으켜서 권력을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국민들을 억압하고 고문하고 투옥하고 살해했다. 특히 전두환은 광주에서 수백명의 시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자가 여전히 유력 정치인들로부터 ‘전직 대통령’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끔찍한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누가 이 악몽을 깨울 것인가? 정녕 지구온난화로 이 세상이 멸망하기까지 전두환의 호의호식은 계속될 것인가?
넷째, 한국의 보수세력은 부패세력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둘은 각각 1조원 상당, 5천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세력은 박정희가 깨끗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패학에서는 그가 ‘부패의 국유화’를 이루었다고 본다. 국가가 그의 것이었으므로 사적으로 축적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승만도 마찬가지이다. 이승만 시대의 부패는 이기붕이 아니라 결국 이승만이 그 머리였다. 44년에 걸쳐 지속된 독재체제는 바로 ‘부패체제’이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독재체제가 정치적으로 해소되었어도 그 산물인 부패체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보수세력과 관련해서 민주화는 크게 두가지 과제를 안고 있었다. 먼저 그것은 반민주적인 한국의 보수세력이 더 이상 이 나라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으며, 이어서 한국의 보수세력이 세계사적 보수세력과 비슷한 것이 되도록 개혁해야 했다. 민주화는 두가지 과제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 그러나 결코 만족스럽게 달성하지는 못 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어느 정도 약화되기는 했어도 여전히 건재하다. 다시 말해서 반민족적, 반민주적, 폭력적 부패세력이 여전히 상당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영 신통치 않게 느껴진 데에는 민주화세력의 잘못뿐만 아니라 반민주화세력의 준동도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두가지 문제를 함께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 반민주화세력의 문제를 제쳐두고 민주화세력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문제이다. 요컨대 ‘노무현세력’이 곧 민주화세력인 것은 아니다. 반민주화세력은 나라를 올바로 이끄는 데에는 지극히 무능했지만 민주화를 폄훼하는 데에는 아주 탁월하고 집요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보수세력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민주화를 가능한 한 제한적으로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보수정당, 보수언론, 보수사학, 보수교단, 관변단체, 재벌기업 등 방대한 보수세력의 집요한 노력은 마침내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민주화를 왜곡되게 이해하고 있거나 심지어 필요없는 것으로까지 여기는 시민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무서운 일이다. 보수세력의 줄기찬 노력은 마침내 거대한 ‘보수 쓰나미’가 되어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집어삼키려 몰려오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이른바 ‘뉴라이트’의 역할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는 나름대로 세계사적 보수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의 보수세력의 새로운 ‘전위대’일 뿐이다. 그들은 ‘자유’를 외치면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폭치를 찬미한다. 또한 다수의 ‘변절자’들이 ‘뉴라이트’의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그들은 한때 민주화운동을 했다면서 민주화운동을 격렬히 비난한다. 그들의 얼굴은 자기가 뱉은 침으로 온통 더러워져 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더러운 짓을 하는 것일까? 결국 ‘돈’ 때문인가?
한국의 보수세력은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에 대해 늘 ‘친북좌파’라는 시대착오적 색깔공세를 퍼붓거나 ‘정권의 이중대’라는 비난을 가했다. 시민단체들의 반부패 민주화운동에 대해 터무니없는 비이성적 중상모략으로 맞섰던 것이다. 그런데 ‘뉴라이트’야말로 ‘한나라당의 이중대’가 틀림없다. ‘뉴라이트’의 인사들은 저열한 ‘폭로전’마저 펼치며 한나라당 안에서 격렬히 경쟁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 뉴라이트’의 이름으로 이미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의 지지를 천명한 거대한 기독교 개신교 세력도 있다.
어둠이 깔리면 야수들이 설치듯이, 신자유주의와 양극화라는 불길한 시대적 추세를 배경으로, 또한 제도정치 민주화세력의 커다란 잘못을 배경으로, 보수주의의 준동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보수세력은 ‘연구’로 포장해서 참여연대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민주화를 폄훼하기 위한 ‘선전전’을 펼치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이러한 왜곡과 비난을 사실인 것처럼 기사화해서 바쁘게 퍼트리고 있다. 그냥 무시할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민주화 이후의 보수주의는 이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화 이후의 보수주의에 대해 학계에서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펼쳐졌던 민주주의 논쟁은 이제 보수주의 논쟁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심화해서 민주주의 논쟁을 보완하는 의미도 가진다. 민주화의 심화를 위해 우리는 어둠과 야수에 대해 합당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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