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2-08-03   2032

[인턴후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쓰기

[편집자주] 참여연대에서 7/3(화)부터 8/14(화)까지 약 7주간 활동하는 10기 인턴들의 교육 및 활동후기가 차례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쓰기

세테리스 파리부스에 도전하는 아름다운 변화 12년
아름다운재단 12년, 진짜 목적을 향하는 사회를 꿈꾸다
 

작성 : 참여연대 10기 인턴 이민주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라틴어다.
경제학도라면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는다. 원론 수업 첫 시간부터 못 박는 중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세테리스 파리부스라는 가정을 통해 주류경제학은 사회를 간단한 수식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가정임에 틀림없지만 이런 단순한 계산에 세상은 더 팍팍해진다. 불교의 인타라망처럼 얽혀있는 다른 모든 가정들을 하나하나 지워버린 채, 오로지 개인의 이익만 보고 앞만 달리는 무한 경쟁에 오롯이 젖어들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욕망은 무한하고, 사회의 재화는 한정돼 있으며, 사람은 그 가운데에 이기적이라는 지배적인 논리 전개는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바로 이 ‘세테리스 파리부스’하에서 가능하다. 물론 세테리스 파리부스는 다분히 학문을 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가정이다. 문제는 학문적인 가정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받아들이는 이 세상의 교조주의에 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이것이 보이지 않는 문화의 영역에 뿌리 깊게 박혀 익숙해져버렸다는 점이다. 명시적인 제도야 고치면 되고, 드러나는 부패야 뿌리 뽑으면 되지만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쉽지 않다. 내재해 있는 지배적인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름다운재단방문
 
아름다운재단, 문화를 변화시키는 제3의 운동
 
“기존의 시민운동을 풍요롭게 해주는 길,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인간의 존엄성이 제대로 지켜지게 하는 차원으로 가는 다리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박원순,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나눔』 중에서
 
지난 7일,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했는데, 나는 재단의 활동들은 이런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으로 받아들였다. 퍽 이상한 소리라고 여길 수도 있다. 무슨 소린지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짐작한다. 시민운동을 하고자 한다면,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는 부패도 많고, 비리도 많고, 결여돼 있는 가치도 많은데 그것들과 대면해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존재하는 모순과 불편한 진실들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세테리스 파리부스를 앞세운 세상의 변화는 ‘공동체와의 연대’라는 사람 본연의 가치에 눈 감게 만든다. 아름다운재단이 추구하는 나눔의 문화 확산은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제도나 시스템과 같은 하드웨어를 아무리 잘 갖추려고 하더라도 깔리는 소프트웨어가 구식이면 여전히 그 컴퓨터는 구식 컴퓨터일 뿐이다. 참여연대에서는 드러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두고 싸운다면, 아름다운재단은 그 기저에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토대를 위해 노력한다. 우리 몸에 비유하면, 참여연대와 같은 곳은 모순과 직접 싸우는 백혈구와 같고, 아름다운재단은 문화를 담아 움직이는 적혈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런 맥락을 감안한다면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재단은 기존의 ‘구제’만을 목표로 하는 자선단체와는 분명 다르다. 아름다운재단의 활동은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제3의 운동이며, 아름다운재단 역시 보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그 역할을 나름대로 해왔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지금까지의 아름다운재단이 12년간 한국 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인정받는 공익재단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눔은 곧 정의의 문제
 
그렇다면, 왜 굳이 나눔 운동이었는가? 나눔이 곧 정의의 문제이고, 정의의 문제는 사회 근본을 뒤 흔드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과 기업의 헌금으로 채운 수 천 억원의 비자금을 뒤로 숨긴 전 대통령들, 회계 조작과 배임 횡령으로 조직 구성원의 몫을 가로채는 일부 기업주들의 모습이 익숙해진 한국 사회에서 정의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접근하지만, 대체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돌려주는 것(Cuique Suum)이라는 점이다.

몫을 합당하게 나누고 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부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게 하는 제도와 시스템의 설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것이 아직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회에서 제도와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개선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마치 언 발에 오줌 누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몫을 나누는 일이 기분 나쁘고 뭔가 뺏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제도나 시스템만으로 몫을 나누고 다시 분배하는 과정에 정의를 구현하리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의 역할이 변화의 시기에 더욱 절실하다. 아름다운재단에서는 단순히 ‘불쌍한 누군가’에 대한 시혜적 자선을 추구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공동체를 위한 상상을 하고, 이를 이뤄나가는 것이 비범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적 연대의 또 다른 표현임을 몇 번 씩 되새길 수 있게 만들었다. 1% 기부 운동이나 재능 기부, 자신이 계획하는 맞춤형 나눔 설계는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고, 이것이 특정 누군가에게만 요구되는 특권적 사치가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의무임을 자각하게 했다. 또한 사회 구조를 바꾸는 공익적 상상력들은 공동체를 향한 문화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형태로 변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아름다운재단방문
 
진짜 목적을 꿈꾸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인큐베이터가 되길
 
종로구 자하문로 아름다운재단 건물 로비에는 곱게 늙어있는 한 할머니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로 벗을 수 없는 낙인 속에 일생을 보낸 김군자 할머니가 사진 속의 주인공이다. 5천 만원. 아름다운재단을 처음 만들 때 손수 기부한 그 기금은 대기업이 쏟아 붓는 수십억 원에 비하면 그리 큰 돈은 아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그 돈에는 할머니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그대로 담겨있다. 강원도 고향을 떠나 술집에서, 시장에서 수 십 년 동안 당신을 남긴 흔적을 조금씩 모아 만들어졌기에 그렇다. 아름다운재단은 할머니의 삶이 담겨있는 그 돈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을 했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그 돈은 할머니와 학생을 이어주고, 스스로 진짜 가치를 만드는 중요한 일들을 감당하게 됐다.

아름다운재단 방문

아름다운재단은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찾고, 공동체와 연대할 수 있게 만드는 ‘지속가능형’ 운동 인큐베이터다. 세테리스 파리부스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단순한 성과 지표에 불과한 돈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 1차적인 목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지배 장막을 걷어내고 사람들에게 진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아름다운재단에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난 12년간 아름다운재단이 이끌어낸 변화는 소중한 자산이다. 앞으로 가치를 잊고 눈이 멀어버리는 세상에서, 제도나 시스템에 부르짖는 것으로 부족한 갈급함을 채워주는 바로 그 역할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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