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1년 07월 2011-07-06   3312

아주 특별한 만남-그래픽 디자인으로 세상에 말 걸기

그래픽 디자인으로 세상에 말 걸기

 

박정진 회원

 

 이경휴 수필가, 『여사회』 시민기자  작품 박정진 회원

때 이른 폭염에 이어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맛비는 눈에 낀 홍진紅塵마저 씻어준다고 했다. 이제 산천은 온통 푸를 것이며 시간은 정지한 듯 흘러갈 것이다. 꽃이 드문 7월이지만 초록의 이파리 위에 노란 꽃을 피운 나무가 눈에 띈다. 모감주나무라는 학명보다 염주나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나무. 어느덧 관상수로 자리매김을 하고 도심 공원의 주인공이 되어있다. 가을이면 둥글고 검은 씨가 또 한번 눈길을 끌 것이다. 무심히 보아온 한 그루의 나무에도 작은 우주의 질서가 들어있다.

  우리는 자연이 변화무쌍하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들에겐 나름의 질서와 법칙이 있다. 오히려 인간사에서 예고도 없이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심상치 않은 조짐에 불안한 요즘도 순간순간 사람들은 불안을 잊고 ‘돈’을 향해 질주한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잠언에 나오는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날은 요원한 듯하다.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무상급식…. 족벌언론들은 이러한 정치적 이슈가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포퓰리즘 논란’의 사기극>이라는 한 신문 칼럼에서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말을 인용했듯이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몇몇 족벌언론의 선동으로 의미 있는 정치적 이슈가 묻혀 버릴까봐 두렵다.

  이렇게 시끄러운 정국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조용하고도 정확하게 날리는 사람을 만났다. 그래픽 디자이너 박정진(32세)회원이다.

 

전시회 ‘같은 이야기, 다른 목소리’를 열기까지

헐레벌떡 참여연대 사무실로 들어서는 그는 첫눈에 보기에도 유쾌한 청년이었다. TV에 자주 나오는 유명 방송인들의 호감 가는 부분을 골고루 닮은 젊은이였다. 네모난 갈색 뿔테 안경, 웨이브가 자연스러운 머릿결에 청바지와 운동화. 캠퍼스를 누비는 대학생 같다. 하지만 신혼이라는 말도 무색한 결혼 3년차의 가장이다.

  지난 5월 23일부터 6월 3일까지 ‘카페 통인’에서 열린 디자인 전시회 ‘같은 이야기, 다른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로 말문을 텄다. 만족했느냐고 묻자 단박에 “저야 정말 고맙죠.”라는 경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도 그의 작품은 활기차(member.peoplep-ower21.org) ‘세상만평’ 코너에 연재되고 있다. 3월부터 올리기 시작한 작품이 스무 편에 가깝고, 개인 블로그(www.atopy101.com)에는 백 편 가까운 작품이 있다.

  그래픽 디자인이란 ‘여러 가지 인쇄 기술의 특성을 이용하여 시각적 표현 효과를 꾀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어떤 메시지의 시각적 전달을 목적으로 기호, 이미지, 글자를 조합하여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재표현하는 예술이다.

  지나치게 전시위주의 시각디자인이 서울시의 홍보물로 전락하여 디자인의 참뜻을 왜곡할 뿐더러,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그는 흥분했다. 심지어 시민들은 ‘디자인 피로증’에 시달리는 현실이다.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살려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가로서 당연히 우려되는 현상이리라. 그는 어떻게 참여연대에 가입하게 되었을까?

  “회원 가입은 작년에 했어요. 항상 시민단체에 대한 관심은 있었어요. 왜냐면 외국의 경우 많은 디자이너들이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관심을 갖고 여러 단체를 탐색했죠. 참여연대가 저의 다양한 욕구와 비판정신을 표현하기 좋겠더라고요. 그런데 회원 가입하자마자 천안함 사태가 일어나 참여연대가 밖으로부터 많이 시달렸잖아요. 그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가만히 침묵했죠.”

  눈치 보며 말을 잇는 표정이 소심하다기보다는 장난기 발동한 소년의 모습 같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본인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보충해 나갔다.

  “아카데미 강좌에서 김민수 교수의 디자인 강좌를 수강하던 중, 빨간장미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참여연대 회원이 제 블로그에 들어와서 격려도 해주고 댓글도 달아주면서 좋은 작품이 많은데 연재 하는 곳이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그 말에 용기가 생겨 지난 3월에 ‘활기차’에 올렸죠. 마침 세상만평 코너가 있어 슬쩍 올렸더니 반응이 좋은 편이었어요. 그 후, 시민참여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세계군축행동의 날에 관련된 디자인을 부탁하면서, 작품을 사안에 따라 이용해도 되겠느냐고요. 저야 뜻한 바를 이루는 셈이니 환영했죠. 그리고 지난 5월, 카페통인에서 전시회까지 열었으니 더 바랄 바가 없어요.”

  성공적이었던 전시회와 뒤풀이의 여진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했다.

그래픽디자인, 친숙함과 낯섦이 하나 되는 경지

본격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이며 평균적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물었다.

  “나름대로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가죠. 그 중 하나는 전시회에도 내어 놓았던 <더 낮은 곳>이라는 작품이에요. MB가 ‘더욱 더 낮은 곳에서 국민과 소통하겠습니다.’하며 주 무기인 삽을 들고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이미지를 표현한 거죠. 혼자서 계속 땅을 파 내려가는 식으로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다는 뜻을 담은 거죠.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네요. 늘 머릿속에 있던 내용은 서너 시간이면 완성하지만 청탁을 받은 경우엔 생각을 많이 해야 하거든요.”

  우문현답이다. 어찌 작품을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정해진 시간에 완성할 수 있으랴. 그는 여전히 유쾌하고도 충실하게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어갔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요? 한마디로 ‘사회적 발언’을 하려는 거죠. 점입가경의 세태를 풍자하면서 촌철살인의 한 마디로 가려운 곳을 긁는다고나 할까요? 예를 든다면 반값등록금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요즘에는 대학을 기업으로 표현해 학사모에 바코드를 넣고, 대학University이라는 글자로 돈Money의 이미지를 표현해요. 이런 작업을 전문 용어로 타이포그래피, 타이포플레이라고 합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낯선 것을 친숙하게 만드는 거죠.”   

  친숙함과 낯섦이 결국 하나 되는 경지의 예술이라! 그러기에 그의 전시회 주제가 ‘같은 이야기, 다른 목소리’였던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질문은 계속 되었다. 창작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자신에게 어떤 강점이 있으며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느냐고.

  “강점은 직감이죠. 앞서 말했듯이 낯설고 익숙한 것들을 비틀고 뒤집어서 발견해내는 재미. 그 재미는 직감 없이는 느낄 수가 없죠. 또 하나 더 든다면 긍정의 힘과 자기최면입니다. 직업상 스트레스가 많은데 ‘뒷담화’는 안 해요. 상대가 안 듣는 소리를 할 필요는 없지요. 꼭 할 말이 있으면 앞에서 하죠. ‘일을 뭐 이렇게 해?’, ‘이래서야 계속 일할 수 있겠어?’ 눈치껏 윗사람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구시렁대죠.”

  이리도 간 큰 샐러리맨이 있나 싶어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과연 자기최면이 강한 사람답게 유쾌하고 당당했다. 

 

“우리 사회는 아토피를 앓고 있는 것 같아요”

마냥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겠다. 그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을까? 본인이 선택한 일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뜻이 맞는 사람들이나 단체와 교류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싶어요. 선택한 일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저는 어떤 일이든 이유를 모르면 시작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그 이유를 충분히 알고 일을 시작했으니 후회가 없는 건 당연하죠.”

  깔끔하게 답변을 정리하는 말투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라 있는 작품들을 연상케 했다.

  “어릴 때부터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그런 편이죠. 직장에서도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꼭 이유를 묻지요. 명령한 사람이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지만 때로는 그 사람도 이유를 모르면서 일을 시키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얼마나 비생산적이에요.”

  의문과 의심은 작가의 기본 소양이 아닌가. 그는 될성부른 나무로 떡잎부터 달랐던 셈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물음이 있는지 되물었다.

  “많지요. 세상이 넓은데 모르는 게 많은 건 당연하죠. 그런데 이젠 의문의 범위를 좀 제한하고 줄였죠. 너무 멀리 있는 것보다 주변에 있는 것들부터 정확히 알고 이해하려고 해요. 1순위가 가족입니다.”

  마무리 질문으로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했다.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들을 보았더니 참여연대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더라고요. 저는 가입한지 얼마 안 되었기에 세세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지향하는 세상이 제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와 일치하기에 열심히 일할 생각뿐입니다. 종합선물세트를 얻었다고나 할까요? 비판이라기보다 개인적인 어려움을 말한다면…. 제게 작품을 의뢰할 때 시간적인 여유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마침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어렵지 않지만 막막할 때도 있거든요. 일정이 촉박해도 작품에 대한 욕심 때문에 거절하지 않는데, 힘들어요.”

 
  대답과 함께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마감에 쫓기며 작업하는 작가가 그뿐이랴. 명실상부 작가의 반열에 들어선 셈이라고 말하자 그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자리를 정리하며, 아이디가 왜 아토피atopy인지 슬쩍 물어봤다. 예상치 못한 진지한 답변이 나왔다.

  “어원은 그리스어죠. 모두 인지하고 있으나 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질병, 가설과 추측 등 다양한 진단이 있으나 궁극적인 해결책은 없는 병을 아토피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상황과 같지 않나요? 사실 그런 증상이 저에게도 좀 있고 해서….”

  날카로운 진단이다. 그야말로 가설과 추측만 난무할 뿐 궁극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책들이 판치지 않는가? 사람들 모두를 아토피 환자로 내몰고 있는 듯하다. 아, 가려운 곳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위 작품들은 박정진 회원이 직접 디자인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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