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중심의 현행 선거법
민주주의 국가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란 사실상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최대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라 할 것이다. 이때만 되면 거만하던 정치인들도 평상시 거들떠도 보지 않는 시장의 아주머니에게까지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데 몇 년만에 한번씩 밖에 돌아오지 않는 이 기회에서조차 국민이 제대로 실력행사(?)를 못 한다면 과연 국민을 무서워할 정치인이 있을 것이며, 대의제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상식보다 우리 현실에서 더 강한 상식이 있는데, 바로 금권이나 관권으로 인해 선거는 타락하게 되어 있고, 선거가 혼탁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는 등 부작용이 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식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이전 역사에서 우리가 배운 하나의 교훈이기도 하다.
현행 선거법은 후자의 상식에 기반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선거운동을 규정한 부분 가운데 제84조부터 제110조까지 무려 26개의 연이은 조항이 모두 금지, 제한의 내용을 담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선거법이 국민의 손과 발을 그리고 입을 꽁꽁 묶어 두게 되어 선거 시기에 접어들면 평상시보다 오히려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가 더 어려워지는 역진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2008년 총선에서 모 국회의원후보가 방송사의 여기자를 성희롱하였다는 문제가 불거지자 여성단체 회원들이 그 후보자의 사무실 앞에서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선거법위반 혐의로 연행되었던 적도 있었다. 여성단체들로서는 선거시기가 아니라 평상시라도 당연히 문제제기를 하였을 만한 사안인데 선거시기라서 오히려 문제제기를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행 선거법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선거는 새로운 정치 지도자를 뽑는 축제나 잔치로 되지 못하고, 선거운동에 대한 지나친 엄숙주의로 선거의 흥을 느끼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 선거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지지 또는 비판)가 아닌 후보자들만의 생색내기행사로 되어 버리고 있다.
새로운 선거운동방식에 인색한 현행 선거법
여기에 더하여 현행 선거법은 동원선거, 물량선거 등 전통적인 선거방식만을 염두에 둔 법 규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유권자들의 자발적인 의사표현이나 조직 활동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새로운 방식의 선거운동을 제대로 규율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도 지니고 있다.
이전에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의 매체성을 판단했던 결정에서 ‘인터넷은 공중파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로서 진입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된다’라고 한 바 있고(헌법재판소 2006. 6. 27. 결정 99헌마480), 미국 연방대법원도 ‘인터넷은 세계를 하나로 전달해낼 수 있는 유일하고 전적인 새로운 매체다’라고 평한바 있다(Reno v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521 U.S. 844,850).
이러한 인터넷이 선거운동과정에 사용되면 오프라인상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선거운동을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온라인 공간에서 해낼 수 있어 선거비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금력이 약한 후보들에게도 공정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유권자의 경우도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보다 쉽게 획득할 수 있고, 후보자들에 대한 자신의 평가 등을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선거에 대한 자유로운 참여가 훨씬 폭넓게 가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인터넷은 어떤 사람의 정치적 의사에 대해 거의 실시간으로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상의 완전경쟁 시장’으로서 어느 후보자에 대한 평이 가질 수 있는 폐해를 자연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질 수 있어 일방성만을 가지는 일반적인 매체에 비하여 공정한(반론이 보장된)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 선거법이 금권선거나 타락선거를 막기 위해 과도하게 규제중심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특성을 가진 인터넷에서의 선거운동을 오프라인에서의 선거운동과 동일한 기준과 잣대로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UCC 금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위헌의견이 다섯 명이나 나온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는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상의 선거운동의 특색을 많이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정족수에 미치지 못해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보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합헌이 된 것은 유감스럽다. 합헌의 주요 논거인 선거관련 UCC 역시 선거에서 혼란이나 부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종래의 입장이 그대로 유지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선거시기 보다 자유로운 국민의 참여’나 ‘새로운 선거운동방식에 대한 반영’이 선거법에 묻어나는 것은 다시 한 번 요원해진 것 같다. 특히, 헌법재판관 중 1명이 외유 중에 있었음에도 결정을 한 부분은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이전에 이미 비슷한 판단을 하였다는 것만으로 해당 재판관이 없는 상태에서 결정을 한 것은 위헌 대 합헌이 5:3으로 나온 결과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 가볍고 성급하게 판단에 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열린 선거로!
이제 곧 다시 선거가 다가온다. 이번 헌재의 결정에 의해서 이번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이 만든 UCC는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제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상황이 바뀐 만큼 고리타분한 상식을 벗어던지고 국민들이 보다 폭넓게 참여하는 선거가 되는 길을 모색하면 안 될까? 떨어지는 투표율이나 정치에 대한 관심만 탓하지 말고 유권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고민하는 것만이 대의제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지름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박주민(변호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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