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법무부가 아니다
[기고] 사법부의 독립성은 검찰의 독립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고려대 법대 교수
사법부 독립성의 침해가 도를 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조두순의 양형에 대해 고등법원장들을 질타하였고 새해 들어서는 강기갑 무죄판결을 두고 ‘사법개혁’을 거론하며 국회가 법원행정처장을 질타하였다. 또 용산참사 사건기록 공개 및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무죄판결 등을 두고도 국회의원들이 분노를 토해내고 있다. 법관의 임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들이 개별사건의 법리판단이나 사실판단에 대하여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명백히 법관독립의 침해이다.
그러나 언론이나 시민단체들 또는 일반인들이 조두순의 양형이나 강기갑 판결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 특히 대법원이 최근 강기갑 판결에 대한 보수언론의 논조에 대해서 ‘사법부의 독립 침해’를 운운하며 민감하게 반응해서는 아니된다. 대법원장 이용훈의 취임일성처럼 판사는 국민의 이름으로 재판하는 것이지 판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중에는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진보적인 사람도 있다. 언론의 힘은 독자층에서 나오는 것이며 언론은 어찌되었든 국민의 입과 귀가 되어주고 있다.
사실 진보측에서 더욱 꾸준히 해온 ‘판결 흔들기’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법부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공직인 이상 판사의 성향 분석도 허용되어야 한다. 사실 판사 성향분석을 가장 먼저 시작한 측은 참여연대였고 90년대에는 판검사들 개별파일도 작성 및 보관하고 있었다. 지금의 성향분석기사에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냐 아니냐를 언급하는 것에도 예민해져서는 안된다. 도리어 우리법연구회가 자발적으로 회원 명단을 공개하여 사상의 자유의 핵심을 이루는 익명권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자초한 결과이다. 그러나 국회는 법원 고위직의 추천권자이며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법관들 전체의 임명에 간여한다. 이러한 국회의 행태는 법관독립을 침해하며 피고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한다. 곧 항소심에 설 강기갑과 PD수첩 PD들의 권리도 침해한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피의자와 피해자를 포함하는 모든 국민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검찰의 독립성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검찰은 행정기관으로서 대통령 및 국회가 정하는 형사정책을 충실히 이행할 의무를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검찰의 공권력 행사는 모두 이론적으로는 법원의 영장이나 판결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않은 공권력행사에 대해서는 법원이 법적 제재를 할 수도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검찰의 그것보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훨씬 더 중요하다. 이번에 강기갑판결에 관한 질의를 법원행정처장과 대검 공안부장이 나란히 앉아서 받았다고 하는데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법원행정처장이 법무부 서초동 지점이라도 되는가.
개별 국회의원이 법원판결에 대해 개인적인 실망감을 표현하는 것까지 문제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정감사나 국회의 공식일정을 통해 법관들을 꾸짖으려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판사봉급이나 숫자와 같은 법원행정까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한 국정감사의 대상이 된다.
미국 국회에서도 법원 판결들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판사들을 불러서 질타를 하거나 특정한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학교수들의 의견을 들어 법개정의 참고자료로 삼을 뿐이다. 국회가 법관을 불러다 놓고 판결을 잘못했다고 따지는 상황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가. 국회에 끌려간 법관들 모두 ‘법대로 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였는데 법관이 이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정녕 원하는 것이 ‘법대로 하는 것’ 이상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국회는 국회활동의 대상의 본연이 되는 사법행정의 문제를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왜 신영철 대법관이 아직도 사퇴하지 않는가. 앞으로 법관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이 글의 일부는 한겨레 2009년10월19일 “판결을 ‘주문’하는 대통령과 국회”에 게재된 바 있으며 미디어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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