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1년 토론회, 총괄·리더십
‘촛불’뒤 위기 전면화되며 민주주의 거꾸로 돌아가
성과주의로 여론 합의 경시…소통 막아 고립 자초
위기와 퇴행의 물결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경제는 10여 년 전 외환위기 상황으로, 남북관계는 1990년대 중반 ‘조문파동’ 직후로, 민주주의는 87년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촛불시위 강경진압과 집시법·언론관계법 개악 시도, 일제고사에 협조하지 않은 교사들의 연쇄 파면,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재개발 참사 등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나 있었음직한 일들이 수시로 벌어진다. 이명박 정부를 두고 ‘경찰국가’ ‘신개발독재’ ‘민간 파시즘’이란 진단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9년 대한민국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겨레>는 오는 25일로 출범 1년을 맞는 이명박 정부의 공과를 진단하고 생산적 미래상을 모색하기 위해 18일 서울 동국대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제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민주주의연구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세교연구소,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27, 참여사회연구소, 코리아연구원 등 7개 진보적 싱크탱크와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정치 △경제 △사회 △통일·외교의 4개 세션과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박정희 시대의 ‘우익적 포퓰리즘’을 연상시킨다.”(조희연·서영표 성공회대 교수)
“민주주의적 수사를 내걸었으나, 1년도 안 돼 군부 권위주의 시대의 리더십으로 회귀했다.”(김호기 연세대 교수)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리더십에 대한 연구자들의 평가는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공고화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발표한 조희연·서영표 교수는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고 비판했고, ‘리더십과 거버넌스’를 다룬 김호기 교수는 “집권적 권위주의로의 퇴행”을 문제 삼았다.
조희연, 서영표, 김호기(왼쪽부터)
■ “비민주적으로 계획하고 권위적으로 관철”
조희연 교수와 함께 공동 연구 결과를 발표한 서영표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지난 1년을 △권위주의로의 회귀 △선별적 포섭과 배제 △이전 정부와의 정책적 단절로 정리한 뒤, 이것을 “노무현 정부의 ‘포퓰리즘적 의사민주주의’와 구별되는 ‘개발주의적 권위주의’의 특징”으로 규정했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여론을 수렴한 뒤 비민주적으로 결정”했다면, 이 대통령은 “비민주적으로 계획하고 권위주의적으로 관철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처음부터 비민주적 행태가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초기에는 옛 개발독재 정권과 구별되는 ‘신보수 정권’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했으나, 촛불시위가 지배 블록 내부의 위기의식을 키우고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며 순치됐던 억압적·권위주의적 관성이 전면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국가기구 내부의 억압적 관성이 용이하게 표출될 수 있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용산 참사와 같은 비극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권위·여성부 축소, 과거사위원회 통폐합 등 이전 정부와의 ‘정책 단절’에 대해서도 서 교수는 “현 정부의 지지 기반을 다지기보다 새로운 균열 지점을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진보 정권의 경우 과거 정권과의 단절을 시대적 과제로 요구받지만, 보수 정권이 진보적 정책을 역전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를 무화시키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선거 과정에서 포섭한 중도적 대중들을 이반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론’에 대해서도 한계를 지적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것을 민주주의 문제로만 인식할 때는 ‘절차로서의 민주주의’의 덫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복원만 주장할 게 아니라 어떤 종류의 민주주의가 필요한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노동계급에 대한 포용 △개발주의에 대한 제어 △시장과 공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 등을 적극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피플 프렌들리’가 필요하다
김호기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통치 행태를 ‘최고경영자(CEO)형 리더십’으로 발현되는 ‘집권적 권위주의’로 규정했다. 문제는 시이오형 리더십에 내장된 ‘성과 중심주의’다. 절차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성과 중심주의는 여론과 합의 과정을 경시하게 만들어 국민과의 소통에 장애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변화하는 사회의 특성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채 구식 권위주의 방식으로 회귀함으로써 정당성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시민사회와의 소통 시스템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김 교수는 “이익사회인 현대사회에서는 갈등을 일방적으로 부정할 게 아니라 어떻게 조정하고 관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정치권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물론, 통치 파트너인 시민사회를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함으로써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촛불시위와 금융위기라는 두 개의 사건은 우리 사회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가 긴밀히 결합된 이중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며 “경제위기를 수습하려는 정부의 섣부른 대책이 경제위기를 가중시키고, 이것이 다시 정부의 선택 폭을 좁히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위기 탈출의 방법으로 이명박 정부에 세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권위주의 리더십을 민주적 리더십으로 전환하라는 것.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아니라 ‘피플 프렌들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경제위기를 고려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나아가 시민사회와 새로운 거버넌스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능동적 복지’ 내세우더니…약자지원 예산 삭감”
이명박 정부 1년 토론회, 사회부문
이태수, 권미혁, 이상이 , 김용일 (왼쪽부터)
이명박 정부의 ‘능동적 복지’는 “실체 없는 유령에 가깝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다. 18일 ‘이명박 정부 1년 복지정책의 현주소와 향후 과제’를 발제한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가 복지 제도에 도입한 시장적 요소는 대폭 강화하면서도, 복지 총량을 늘려 왔던 흐름은 명백히 거부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민생을 지탱할 만한 복지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양극화로 사회적 혼란이 빚어지고 민심이 급격히 떠나가 향후 정국에 뇌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올해 복지부문 예산 증가분 9% 가운데 대부분이 참여정부 시절 제도 설계로 자동으로 늘어난 것”이라며 “새로운 보편적 복지사업을 통해, 국민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기회를 없앴다”고 지적했다. 복지 확충을 위해 과감한 재원 배치를 하는 대신,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개정 등 민간 재원에 대한 영향력 강화, 복지전달 체계에서 민간·시장 중심 가속화를 큰 방향으로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향후 북유럽 같은 복지국가 모형으로 나가고 싶어도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론자로 나선 권미혁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등은 모든 사회정책이 경제 지상주의로 흐르면서, 교육·의료·여성 정책 등이 저마다 추구해야 할 최우선 가치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인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현 정부는 노인요양·의료·보육 등에서 부족한 사회서비스를 자본을 끌어들여 해결하려 하는데, 서비스와 일자리의 질이 모두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다”며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의료서비스마저 주식회사와 민간 보험에 맡기려는데, 이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교육학)는 “대입 자율화, 고교 다양화 등 교육정책은 시장만능론에 근거해 교육 계급화를 한껏 밀어붙이고 있다”며 “일제고사 실시와 성적 공개는 오바마가 전면 수정하겠다고 공약한 부시 정부 정책을 베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도에 있을 시·도 교육감·교육의원 선거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통합적 교육정책이 교육도 살리고 우리 사회를 살찌우는 길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미봉남’ 자초 질타…“1년만에 남북관계 끊겨”
이명박 정부 1년 토론회, 통일·외교부문
한·미 역할 순식간에 역전 오바마의 동북아 정책이 한반도 정세 최대변수로
홍현익, 김근식, 김재관, 정욱식, 강태호(왼쪽부터)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평가한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새 정부 출범 뒤 남-북-미 3자 관계에서 나타난 한국과 미국의 역할 변화를 심각하게 우려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과 한국이 각각 맡았던 ‘엄한 경찰’과 ‘중재자’의 역할이 순식간에 역전됐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문제를 미국의 처분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외교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통미봉남 구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홍 위원은 특히 “취임 1년 만에 개성공단 사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남북 관계가 중단됐다”며 “관계 단절의 근본 책임이 북한에 더 있다고 해도, 정부 대북 정책의 성과는 스스로 내세운 생산성과 실용의 기준에서 매우 실망스런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한반도 정세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 정책을 꼽았다. 오바마 정부가 북핵 해결을 위해 우선은 대화를 통한 설득을 시도할 것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압력을 동원하고, 최후 수단으로 군사력 사용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 위원은 “지금처럼 남북 관계가 단절된 채 미국에 북한 관리를 맡겨 두는 상황이 지속되면 1994년 북폭 위기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바마 정부가 북한에 핵 폐기 대가로 군축을 제안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내놨다. 북한의 ‘안보 딜레마’를 고려해 미국이 재래식 무기 감축이나 주한미군 추가 감축을 제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홍 위원은 “오바마의 전향적 대북 정책에 끌려가 통미봉남의 굴레에 빠지기보다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북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정부는 남북 관계가 단절되면 손해를 보는 쪽은 북한이며, 북-미 관계 역시 진전될 리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재관 전남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하려던 노력이 실종된 것은 미래의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진보 진영은 경제와 평화를 교환하는 햇볕정책의 복원을 뛰어넘어 상호 군축도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태호 <한겨레> 전문기자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특사를 임명하는 등 예상보다 빨리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관성 없고 고집만…경제위기 더 키웠다”
이명박 정부 1년 토론회, 경제부문
세계적인 추세와 역주행 작년 환율정책 아집 가득 진보 진영도 대안 내놔야
이명박 정부의 지난 1년 동안의 경제 정책을 다룬 토론에선,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도 규제완화와 감세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밀어붙이는 현정부의 정책 기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미국과 영국조차 경제위기를 맞아 정책 전환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우리 정부만 ‘위기의 씨앗’을 키우는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제를 맡은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현정부는 경제위기 이전과 이후를 결정적으로 구분할 만한 정책 전환을 하지 않고 있다”며 “실질적인 위기 대책이 없다는 점이 1년 경제정책의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센터장은 “현정부가 추진해 온 감세와 규제완화 등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며 “이런 정책들은 금융위기와 함께 실물경제 위기까지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추진되면서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산분리 완화 △자본시장 통합법 시행 △공기업 민영화 △부동산 규제 완화 등을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대표적인 경제정책들로 지목했다.
토론자로 나선 곽정수 한겨레신문 대기업 전문기자는 현정부의 일관성 부재를 집중 거론했다. 일자리 나누기를 강조하면서도 공공기관 인력 구조조정을 강제하거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사태 등에서 보듯이 친시장 정부를 내세우면서도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곽 기자는 “지난해 환율정책만 해도 현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아집은 물론 무능함까지 드러난 사례”고 비판했다.
대외정책도 도마에 올랐다. 최태욱 한림대 교수(국제정치경제학)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 미국의 일방주의 질서에 참여하려고 했던 노무현 정권 후반기 대외정책 기조를 현정권이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며 “금융위기 이후 국제 질서가 바뀌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현정부의 기조는 국제질서 변화에 역주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또 대안 수출시장으로서의 동아시아를 주목해야 한다며 “김대중 정부의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진보진영부터 현금의 위기에 맞설 수 있는 대책을 갖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며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희망을 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진보진영이 모든 문제 근원을 신자유주의에서만 찾거나, 비판을 위한 비판에만 치우쳐 있다”고도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오늘날 경제는 ‘신자유주의’란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며 “신자유주의 체제 등 추상도가 높은 수준에서의 비판 외에도 구체적인 시장 수준에서의 해법도 (진보진영이)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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