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호] 특집글 ① 발표 내용 요약
1. '인간복제' 문제와 법적 대응
박은정·이화여대 법학과 교수
전통적으로 법은 생명현상과 인체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공백은 도덕이 메워 왔다. 그러나 유전공학을 위시한 첨단 생명과학기술의 발달의 결과로 인체산물들의 효용도가 높아졌고 이와 아울러 생물학적·생태학적 위험성과 인간존엄성 침해의 위험이 도래했다. 최근 들어서는 이 문제에 대한 과학기술 연구자들의 자율적 규제 역시 한계에 부딪치고 있어, 이제 이에 대한 법적인 개입이 요청되는 상황이 되었다.
생명공학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분야에 따라 다양하고 따라서 각각 상이한 법제도적 대응을 필요로 한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생명공학 관련 입법은 일반법 혹은 기본법(예컨대 생명보호안전에 관한 법)의 형태보다는 구체적·최소적인 개별규정 방식(예컨대 배아보호법, 장기이식에 관한 법)으로 시작해 차차 이를 일반화하면서 제재 정도가 높은 법으로 옮겨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섣불리 일체를 무차별적으로 규제하여 연구를 위축시키는 위험을 방지할 수 있고 아울러 효과적인 규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인간복제의 쟁점에 관해서는 개체탄생 목적의 인간복제는 용인할 수 없지만 연구나 치료목적의 복제는 허용가능하다는 식의 타협안이 대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타협안은 '연구나 치료목적'의 경계를 획정하기가 곤란하고 논의 자체를 윤리적인 것이 아닌 테크니컬한 쟁점으로 몰고갈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애매한 구분을 도입해서 인간배아복제를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것보다는 이를 둘러싼 과학적·사회적·윤리적 문제점들이 충분히 검토될 때까지 인간복제 연구를 보류하는 쪽의 타협을 제안하고 싶다.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개체탄생 목적의 연구는 물론, 환자의 직접적 이익을 의도하지 않는 '기초연구' 역시 보류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번의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이를 그대로 두고 별도의 '생명공학안전윤리에 관한 법'을 만드는 방법도 있겠으나, 이보다는 이 법에 안전·윤리대책, 환경영향평가,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설립 등에 대한 내용을 넣어 대폭 개정하고, 개인의 인권 보호차원에서 생식보조술, 유전자치료술, 배아보호, 인간복제 금지 등의 내용을 포괄하는 가칭 '인간배아보호법'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2. 21세기 열린 사회를 위한 첨단의학의 긍정적 역할과 부정적 역할
서정선·서울대 유전자이식연구소 소장
생명공학 기술은 인간의 발생과 분화의 신비를 밝혀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백여 년 전 진화론의 등장이 현대 사상의 제반 분야에 가져왔던 것보다 더 큰 충격을 가져다 주고 있다. 특히 최근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인간 개체복제가 사실상 가능한 것임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사회적·윤리적 쟁점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우리는 신중한 태도로 생명공학 기술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생명복제 기술은 발생생물학에서 분화의 과정이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병과 노화의 문제뿐 아니라 세포증식 조절(잘려나간 팔다리의 복원)까지 해결할 수 있는 유용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생명연구에 있어 생명복제 기술이 지니는 도구로서의 강력함은 14일 이내의 배아를 이용해 엄격히 규제된 상황에서 배아복제 실험을 허용함으로써 유용하게 이용되어야 한다. 반면, 사회적 윤리규범을 파괴할 수 있는 인간 개체복제는 금지되어야 하며 이 목적의 연구를 위한 실험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체세포 핵이식된 난자의 체내 자궁 내 착상단계를 엄격히 규제하면 된다.
현재까지 '인간복제'는 14일 이내의 인간 배아복제에 국한된 것이다. 따라서 복제용 인간을 만들어 장기이식에 이용한다는 식의 상상과는 괴리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오해로 비롯된 사회적 압력 때문에 난치병들에 대한 새로운 치료약 개발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생명복제 기술은 큰 틀에서는 엄격한 규제 속에서 제한 없이 허용되어야 한다.
3. 경희대 의료원의 인간복제 실험 성공 주장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오창익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1997년 2월 돌리의 탄생과 1998년 12월 경희대 의료원의 인간복제 실험 소식은 인간존엄성 훼손의 문제와 인간복제의 위험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간복제의 문제를 먼저 가톨릭의 입장에서 살펴보겠다. 경희대 의료원의 발표 이후 교황청에서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인간복제 실험의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에서도 볼 수 있듯, 가톨릭에서는 "인간의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신성불가침한 것"이라는 전제에 근거하여 배아를 인간으로 간주하고 세포복제를 명백한 살인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유전공학 분야의 연구가 인간에게 도움을 주려면 그 모든 단계에서 면밀한 윤리적 성찰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 비추면 아무런 규제 없이 인간복제 실험을 강행한 경희대 의료원의 태도는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이제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존엄성을 지니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니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다"는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서 유전공학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현재 존재하는 제3세계의 기아는 유전공학이 생각보다 빨리 발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에 기인한 것이다. 진보된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 준 예는 물론 많지만, 그 반대의 예 역시 많으며 과학기술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유롭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 역시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인간복제 기술이 인류의 공동선만을 위해서 선용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복제는 단순히 종교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필연적으로 인류를 자멸시킬 것이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 복제의 문제는 이전 시기의 인공수정과 같은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이다. 이를 제지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정부, 비정부기구, 시민들이 모두 나서서 법을 제정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는 어떠한 실험도 용납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4.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에 대한 시민단체의 입장
박병상·생명안전·윤리 연대모임 사무국장
작년 9월에 '생명공학육성법 개정 관련 시민단체 연대모임 토론회'이 치러진 이후 9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생명안전·윤리 연대모임이 정식으로 발족하여, 그동안 생명안전과 윤리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왔다. 그동안 유전자조작 콩 수입이나 경희의료원의 인간복제 등의 사건들이 터져 생명공학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었고 국내 최초의 합의회의가 때맞춰 개최되는 등 다양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정기국회에 제출된 생명공학 육성법의 개정안은 이런 사정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오히려 개악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동안에 제기된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물론, 생명공학의 안전과 윤리 전문가의 참여까지도 철저히 배제된 채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생명공학을 육성하기 위해 제정된 기존 법령에 생명안전과 윤리를 위한 규제조항을 삽입하는 것은 법리상 맞지 않다. 따라서 현재 정기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안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하며, 그 대신에 생명공학육성법의 상위 개념인 가칭 '생명안전·윤리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안전·윤리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담아야 한다: (1) 생명윤리안전위원회는 시민과 시민단체의 참여를 보장해야 하며, 국무총리실 산하 이상으로 위상을 격상시켜야 한다, (2) 연구개발 및 연구비 지급 금지의 대상을 좀더 확대해야 한다, (3) 위반시 신체 처벌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 (4) 국가 연구비의 3%를 별도의 기금으로 지정해 환경윤리·의료윤리 등의 사회적·법적 연구 및 교육을 수행해야 한다.
5. 인간복제에 대한 법적 대응
: 외국의 규제동향
신현호·변호사
인간복제에 대한 외국의 법적 대응을 살펴보면, 우선 인간복제 그 자체와 인간복제술을 구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간복제는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로서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인간복제술의 허용범위와 한계를 어디까지로 정할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면 먼저 독일은 1990년 '수정란보호법'이 제정되어 생식계세포 조작에서 수정란 조작행위 금지에 이르기까지 가장 적극적이고 엄격한 규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이다. 영국은 '수태 및 수정란 보호법'을 제정하여 신체 밖에서 수정란을 창조·이용·저장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으며, 미국은 원칙적으로 체세포핵이식에 의한 인간복제만을 금지하고 있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그 외 유네스코나 유럽연합, 프랑스 등도 다양한 법령과 협약을 통해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규제를 가하고 있다.
현재 상정된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은 연구금지 항목이 모호하게 설정되어 있으며 형사적 제재가 빠져 있어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이는 시정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독일과 같은 특별형법을 국내에 도입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된다. 일단은 피해가 명백하리라고 생각되는 인간복제 그 자체와 그럴 개연성이 큰 체세포 핵치환에 한하여 금지시키는 조항을 삽입하고 차차 사회적인 환경의 변화를 보면서 특별입법을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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