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호] 과학비평은 왜 안되는가?*
이 글의 제목에 대한 아이디어는 랭든 위너(Langdon Winner)가 수 년 전에 제안했던 내용에서 얻었다. 당시 그는 나에게 자신이 썼던 논문 모음 ― 이는 나중에 {고래와 원자로 The Whale and the Reactor}(1986)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 을 한 부 보내면서 읽고 코멘트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비록 그가 다룬 주제가 기술철학에 관한 것이었고 그의 경험 역시 기술학(technology studies)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자아내긴 했지만, 그가 제기한 논점은 과학, 좀더 정확하게는 오늘날 기술과학(technoscience)이라고 불리게 된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잘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가 제기한 논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추구하고 있는] 이러한 프로젝트는… 일종의 비평 작업인데, 일부 독자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반면 만약 이것이 문학비평이었다면, 모든 이들은 그 비평의 근저에 깔린 목적이 건설적인 것이라고 즉각 이해했을 것이다. 문학비평가는 텍스트를 검토하고, 그것의 특성을 분석하고, 그 수준을 평가하고, 같은 텍스트를 읽을 다른 독자들에게 유용할 수 있는 보다 깊은 이해를 추구한다. 이와 유사하게 음악이나 연극, 미술비평가들 역시 유용하고 잘 확립된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가와 청중을 잇는 다리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술과학에 대한] 비평은 같은 방식으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도구나 그것의 이용에 관한 지극히 일상적인 관념을 과감히 뛰어넘어 글을 쓰거나, 기술적 형태가 우리 문화의 기본적인 유형 및 문제점과 어떤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는지를 연구하는 저자들은 그들이 단지 "반기술적"[혹은 "반과학적"]일 뿐이라거나 "[기술과학을] 비난하고 있다"라는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이 분야의 비평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사람들 ―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폴 굿먼(Paul Goodman), 자끄 엘룰(Jacques Ellul), 이반 일리치(Ivan Illich) 등 ― 은 모두 하나같이 도매금으로 넘어가 똑같은 비난을 받아 왔다. 이는 대화를 확장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그만두고자 하는 욕망이 표출된 결과이다. (Winner, Paths of Technopolis, p. 3)
여기서 미술 혹은 음악비평과 내가 '기술과학 비평(technoscience criticism)'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 사이의 대조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미술 혹은 문학비평가가 아무리 혹독하게 비판적으로 글을 썼더라도 그들을 "반미술적"이라거나 "반문학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특정한 예술작품이나 텍스트를 지나칠 정도로 비난했거나 품위를 손상시켰거나 심하게 다룬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대개의 사람들은 그 비평가가 일반적으로 "반예술적" 혹은 "반문학적" 성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오히려 그 비평가가 비평 대상으로 삼은 주제에 대해 너무나 열정이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비평 혹은 기술과학 비평의 경우에는 이러한 '상식적인' 사고방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미술비평이나 문학비평은 이미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평가들이 예술가나 작가들과 같은 환경 속에서 서로 만나고, 글을 발표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예술이나 문학의 전통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일부분이 되어 있다. 그러나 반면, 과학이나 기술 영역에서는 그러한 만남의 장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에서 밝히겠지만 비평가는 [과학계의] 외부인으로 간주되거나, 그 비평이 [과학계] 내부로부터 제기된 경우에는 이내 외부인에 준하는 위치를 부여받게 된다. 왜 이런 상황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이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논점들을 말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먼저, 나는 '기술과학 비평'과 같은 것이 기술과학에 관한 사회적 담론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은 가치를 인정받고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나는 과학기술자 사회가 바로 이러한 역할에 저항하고 있으며,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판적인 대화를 봉쇄한 데 대해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기술과학 비평' 작업이 실제로 종종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업이 응당 수행되어야 할 장소에서 그것이 아직 제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암묵적인 입장도 동시에 갖고 있다. 나의 이러한 주장은 북미기술철학회(North American philosophy of technology)의 성장에 기초를 닦는 작업을 하면서 내가 경험한 것들 ― 북미기술철학회는 기술비평 작업을 자주 해 왔고 그러한 노력의 대가로 종종 "반기술적"이라는 딱지를 얻었다 ― 과 함께, 보다 최근에 과학철학 분야에서 나 자신이 경험하고 작업한 것들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과학철학 분야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한정된 개념적 의미에서의 그것을 제외한다면 '과학비평'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그 어떤 것도 일관되게 회피해 왔다). 나는 글의 말미에서 지금껏 수행되었던 ― 그러나 잘해야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었던 ― 몇몇 기술과학 비평의 사례들을 고찰할 것이다.
기술과학 비평을 가로막는 장벽들
제도화된 기술과학 비평의 형성을 가로막는 가장 두드러진 장벽은 후기 근대의 기술과학이 수행하는 역할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제도로서의 기술과학은 근대 초기에 종교에 대한 '타자(他者)'의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것의 배경 신화(기독교가 서유럽을 장악하기 이전인 고대 그리스·로마 시기의 종종 유물론적인 전통으로부터 도출된); 그것이 지닌 반권위주의(자신의 망원경을 통한 새로운 발견으로 성경이나 교부(敎父)들의 통찰력을 대체함으로써 이를 넘어섰다고 주장했던 갈릴레오의 예를 포함하는); 그리고 훨씬 더 강력해진 이후 계몽사조기의 반종교적 입장(종교에 '미신'이라는 틀을 덮어씌우고 과학을 '합리성'으로 떠받든), 이 모든 것들은 내가 기술과학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근대에 들어 종교를 대체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은 의도적이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의사(擬似)-종교적인 특성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새로운 '진정한 신앙'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는 것은 오늘날 '비합리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단'이 되었다. 그것이 행한 기능의 측면에서 보면, 비판에 대한 이러한 저항은 비평가들을 늘 외부에 '타자'로서 위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긴 하지만, 이는 기술과학 그 자체의 신념 구조의 제도적 특성 속에서 계속 유지되고 있다.
과학과 종교가 이렇게 성공적으로 전도되었음을 보여주는 예는 콜럼부스의 항해를 다룬 어린이용 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콜롬부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던 반면(즉 그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갖춘 항해자였다), 그의 선원들은 세상이 평평하며 너무 멀리 나가면 바다의 끝에서 떨어져 버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즉 그들은 종교적이고 미신적이었다)는 얘기를 믿으면서 커 왔다. 그러나 발레리 플린트(Valerie Flint)가 자신의 책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상상적 지평 The Imaginative Landscape of Christopher Columbus}(Princeton, 1992)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15세기에 대한 이러한 신화는 20세기 초에 발명된 것이다. 이러한 발명이 이루어진 시기 ― 20세기 후반 들어 콜럼버스의 신화가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그 이전 시기'로 뭉뚱그려지는 ― 가 바로 스콥스 재판(Scopes trial)1이 진행된 시기와 겹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플린트는 15세기에도 "평평한 지구"를 믿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아주 작은 종파들을 제외하고는 보통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20세기 초에 '합리적-과학적' 대 '미신적-종교적'이라는 이분법을 발명한 이들은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렸고 당시에는 이러한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발명된 얘기를 믿고 있는 한, 이는 과학이 우위를 점하는 우리의 교육 속에 제도화된, 명백히 성공한 공격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지배적 신화의 단지 한 예일 뿐이다.
그러나 과학과 종교의 전도는 너무 일반적인 수준의 얘기라 기술과학 비평의 제도화에 대한 저항을 설명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그 대신 나는 우리의 관심을 기술과학의 두 가지 특징으로 돌렸으면 한다. 이 특징들은 기술과학의 실천에서 불가분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예술-문학비평과의 유비에 보다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과학 텍스트에 관한 것이다: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자신의 저서 {작동 중인 과학 Science in Action}(1987)에서, 제도로서의 과학(science-as-institution)은 나름대로의 비평 형식을 조심스럽게 구성된 논쟁의 양식 속에 포함하는 사회적 형태를 성공적으로 창출해 왔다고 주장했다. 제도로서의 과학은 기본 제도 그 자체에는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논쟁들을 해결하는 구조화된 설득력 시험(trial of strength)들을 포함한다.
현상학과 해체주의 양자로부터 이끌어낸 전략을 구사하면서, 라투르는 과학이 보통 스스로 내세우는 자체 해석을 의도적으로 뒤집었다. 즉,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통상 시작해 자연현상에 관한 잘 정식화된 '법칙'이나 정리로 끝을 맺고 최종적으로 텍스트로 공표되는 식의 [과학]해석에서 벗어나, '텍스트'나 과학논문 등의 결과물에서 시작해 역으로 자연으로부터의 정당화(appeal to Nature)를 재구성해 들어가는 식으로 작업한 것이다.
전형적인 과학 '텍스트'나 과학 문헌은 과학 저널에 실리는 논문의 형태로 나타난다. 나는 여기서 그런 논문이 구성되는 극도로 복잡한 과정을 하나하나 추적할 수는 없다. 라투르의 해석에 따르면 그것은 신중하게 고안된 설득력 시험들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모든 논문들이 (a) 여러 명의 저자에 의해 씌어졌고, (b) 의도적으로 익명성을 가장하거나 마치 저자가 없는 것과 같은 스타일로 되어 있으며, (c) 정량적이고 시각적인 도표 형태를 빌어 표현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미 여기서 과학 텍스트의 대단히 '비문학적인' 형태가 드러난다.
라투르는 이렇게 묻는다: 누가 그런 텍스트를 읽는가? 그리고 (이 글에서의 내 목적에 맞추어 묻자면) 그런 텍스트는 어떻게 '비평'되거나 도전받는가? 우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텍스트'를 전혀 읽지 않는다! 그런 텍스트를 읽는 독자들은 이미 선별된 공동체의 일원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텍스트의 기술적 난해함(technical opacity)은 이미 텍스트 그 자체가 지닌 형태의 일부분이다. 이런 텍스트는 어떤 평범한 독해도 '거부한다'. 즉 이미 그런 스타일의 독해에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 아니면 아예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텍스트'를 '읽는' 방법을 안다고 가정해 보자. 가능한 결과에는 어떤 것이 있겠는가? 라투르는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첫번째는 그냥 텍스트를 '따라가는' 것이다. 텍스트의 독자는 [새로운] 발견들을 수용하고, 신뢰하고, 실제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에는 재빨리 흡수한다. 그럼으로써 그 발견들은 제도로서의 과학이라는 더 큰 체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반면, 만약 당신이 '텍스트'에 도전하거나 비평을 가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텍스트 비평 그 자체만 가지고는 그 작업을 할 수 없으며 완전히 다른 층위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당신은 그 텍스트가 근거한 조건을 생산하는 실험실에 직접 가봐야 하는 것이다. 만약 문학에 이에 대응하는 요구조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플라톤을 논박하기 위해서는 아고라 광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격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라투르의 설명을 들어보자:
과학 문헌의 특이성은 이제 분명해진다: 즉, 단지 세 가지뿐인 가능한 독해가 모두 텍스트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포기한다면, 텍스트는 더 이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고 마치 그것이 아예 씌어지지 않았던 것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텍스트를 따라간다면, 당신은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텍스트는 재빨리 핵심이 간추려져 요약되고 양식화되어 암묵적 관행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텍스트 저자들의 논지를 시험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면 당신은 텍스트를 포기하고 실험실에 들어갈 것이다. 결국 과학 텍스트는 그것이 성공적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독자들을 몰아내 버린다. 공격과 방어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느긋한 휴양지가 아니라 요새나 참호에 가깝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과학 텍스트를 읽는 것은 성경, 스탕달(Stendhal), 혹은 엘리엇(T.S. Eliot)의 시를 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Latour, Science in Action, p. 61)
나는 계속해서 실험실이 위치하는 맥락과 자연으로부터의 정당화 ― 기술과학 내에 [사라지지 않고] 남은 텍스트가 [궁극적으로] 이르게 되는 곳인 ― 에 대해 검토해 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실험실 층위에서 텍스트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그러한 도전을 관철시키기 위한 대항실험실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철저하게 기술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이며, 돈과 일군의 오퍼레이터와 심지어 교육 과정까지도 그 속에 포함한다. 이는 [기술과학에 대한] 잠재적 비평가들이 왜 대단히 예외적이고 불안정한 지위를 부여받게 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여기서 논점은 기술과학 비평의 발전에 내재해 있는 두번째 문제로 연결된다. 이것은 후기 근대의 기술과학 내부에서 작동하는 '지식-권력', 좀더 정확하게는 '지식-전문성' 차원의 문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전문성 없는 지식 Knowledge without Expertise}(1993)을 저술한 래피얼 새쏘워(Raphael Sassower)로부터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이 책에서 새쏘워는 근대 초기에 영국과학진흥협회(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BAAS)에서 일어났던 흥미로운 사례를 다루었다. 당시 BASS 내부에서는 [경제학을 담당했던] F 부문을 BAAS에 그대로 둘 것인지 축출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F 부문을 축출하는 것은 경제학으로부터 '과학'의 '성스러운' 지위를 사실상 박탈함을 의미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지식이 어떻게 권력과 연관되는지를 '전문성(expertise)' ― 오직 '전문가'들만이 결정을 내릴 권한을 부여받는다는 ― 이라는 특정한 형태를 통해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의 이러한 근대적 형태를 일반화하면서 새쏘워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만약 [전문성의] 신화가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즉각 실질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전문가들만이 자신들의 전문분야에 관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또 내려야 하며,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만이 서로의 결정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전문가는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전문가들의 결정을 외부에서 심사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전문가들에게 확실성에 관한 주장을 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전문화된 지식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문성의 신화는… 전문가들만이 다른 전문가들을 판단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전문가들이 대중적 비난으로부터 보호되고 심지어 그로부터 격리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Sassower, Knowledge without Expertise, p. 65)
많은 학문적 맥락 속에서 전문성의 신화가 어떻게 양날의 칼로 작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마 굳이 상기시킬 필요가 없을 듯하다: 예컨대 철학에서는 지배적 철학 전통(수적으로 여전히 우세한 분석철학자들)이 무엇을 철학으로 간주할 것인지의 물음에 대해 독점적인 중재자 노릇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에 대항하는 전문성(counter-expertise)의 대항 전략 ― 오직 대륙 철학자(Continental philosopher)들만이 대륙 철학의 결과들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는 ― 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가의 문제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기술과학 비평의 영역에서는, 전문성이 수행하는 통상의 역할이 제도로서의 과학의 편에 서는 주장, 즉 오직 과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들만이 비평가로서 승인될 수 있다는 입장에 연관되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출전: Don Ihde, "Why Not Science Critics?"(1997). [http://www.sunysb.edu/philosophy/faculty/papers/Scicrit.htm]
1. 창조-진화 논쟁의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 중 하나인 스콥스 재판은 1920년대 중반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대강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등장 이후 진화론은 미국의 과학자사회 내에서 주류적인 이론으로 점차 자리를 잡았으며 이는 과학교육에도 반영되어 1880년대에 고등학교 교과서에 진화론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20세기 초, 미국 중등교육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진화론이 그 세를 넓혀 가자, 이에 위협을 느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반진화론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 운동의 결과로 테네시, 미시시피, 아칸소 등 3개 주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이에 자유주의적 가치를 대변하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이 법의 실효성을 시험할 것을 선언하고 이에 동조한 존 토머스 스콥스(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가 교실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테네시 주는 즉각 스콥스를 고발하였고 이에 맞서 ACLU가 스콥스를 변호하는 '세기의 재판'이 1925년 데이튼이라는 소도시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 재판에서 스콥스는 100달러의 벌금형이라는 가벼운 처벌만을 받고 풀려나 진화론 진영에 사실상의 승리를 안겨주었고 근본주의 세력은 이 재판의 결과로 말미암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후 창조-진화 논쟁의 전개과정과 그에 대한 해석의 역사에 대해서는 박희주, [창조-진화 논쟁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한국과학사학회지} 21:1(1999), pp. 112-120을 참조하라. ―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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