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2002-05-28   1760

과학의 가장 나쁜 측면을 들여다보는 창

번역 김명진 | 우리모임 회원.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편집자 주

이번 호 기획번역에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호러 영화에서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 변천 과정을 분석한 영국의 사회학자 앤드루 튜더의 짧은 글을 싣는다. 이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흔한 통념과 달리 “미친 과학자”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고정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호러 영화에서 과학과 과학

자의 이미지는 2차대전 이후 변화해 간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반영해 부침을 겪어 왔다는 것이 튜더의 주장이다. 이 글을 읽음으로써 호러 영화의 역사라는 대중문화사의 흥미로운 한 자락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자의 지위와 사회적 역할이 어떻게 변모해 갔는지에 관해서도 흥미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정신은 너무나도 높이 우뚝 솟아오르게 될 겁니다 ―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는 좀 이상한 사람들이지요.’ 이 말은 1931년 호러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거둔 엄청난 성공에 맞서 퍼스트 내셔널(First National) 영화사가 같은 해에 내놓은 <닥터 X>(1931)에서 나이든 집사가 한 대사이다. 여기서 그가 가리키고 있는 대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가 섬기고 있는 일군의 열성적인 과학자들과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저택인 그들의 실험실, 그리고 인조 몸을 창조해 내려는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지난 50년 동안 호러 영화에 나왔던 과학자들 중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호러 영화라는] 영화 속의 가공의 세계에서 과학은 거의 언제나 “미친 과학”의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친 과학은 초자연적 현상, 정신이상과 더불어 호러 영화의 괴물을 낳는 3대 원천 중 하나이다.

내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1931년에서 1984년 사이의 기간에 만들어진 호러 영화들(대략 1,000편 가량) 중 1/4 이상이 과학을 재난의 주요 원천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호러 영화들은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꼈던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 비록 거울을 통한 어렴풋한 상이긴 하지만 ―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투안(Yi-fu Tuan)의 유려한 문구를 빌자면, 호러 영화는 우리 마음 속의 ‘공포의 지형도(landscapes of fear)’를 그려 보여주고 있으며, 과학과 과학자들의 어떤 점이

두려운지에 관한 대중적 이미지의 변천에 대해 흥미진진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호러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준에서건 관객들의 태도, 편견, 공포와 서로 조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호러 장르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 가지 일반적인 경향이 곧장 명백히 드러난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1960년 이후에는 과학을 주요 소재로 다룬 호러 영화의 비율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정신이상에 초점을 맞춘 호러 영화의 현대적

부상과 때를 같이하는 현상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대중적 인식 속에서 미친 과학은 다른 종류의 광기에 그 자리를 내준 것처럼 보인다. 또한 호러 영화의 역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미친 과학자 개인이 야기하는 위협보다 과학 그 자체가 야기하는 위협이 더 중요하게 나타나는 특정한 시기들이 있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1950년대와 1970년대 후반, 1980년대가 그러한 시기인데, 이같은 경향은 이 시기의 영화들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과학자의 책임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들을 반영하고 있다. 1950년대에는 원자 에너지에 대한 대중의 불안이 커져 감에 따라 과학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난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좀더 흔해졌는데, 이런 패턴은 20여년 후 과학의 부산물이 환경오염과 생태 파괴를 야기한 주범이라는 인식이 생겨났을 때 되풀이해 나타났다.

과학자들의 개인적 책임이라는 여기서의 쟁점은 호러 영화가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패턴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미친 과학자 개인의 행동이 가장 중요했다 ― 그들이 자기 자신의 목적만을 쫓는 사악한 인물이건, 아니면 원래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과학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타락했건 간에 말이다. 이런 상황은 1950년대 들어 변화했다. 반복적으로 상해(傷害)를 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과학지식이었지만, 과학자들 자신은 사형집행인이 아니라 구원자로 좀더 자주 그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호러 영화에서 과학의 위협이 감소한 것과 때를 같이해서 과학은 다국적기업, 국가기구, 군부와 같은 거대기구 일반에 대한 두려움 속으로 통합되었다. 과학 연구의 착취자인 이런 거대기구들은 이윤과 권력을 위해 무자비하게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호러 영화에 나타나는 과학의 고전적 이미지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두드러지는 픽션상의 등장인물을 한 사람 꼽는다면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헨리 프랑켄슈타인(Henry Frankenstein)을 들어야 할 것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신에 의지하지 않고 그 자신의 이미지를 따라 인간을 창조해 내려 하는 과학자’라고 소개되는 프랑켄슈타인은 미친 과학자의 원형이다. 인간적 가치를 희생시키고 지식의 추구에만 몰두하는 그와 그의 후계자들(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달았건 그렇지 않건 간에)은 미심쩍은 과학적 동기를 내세워 자신을 방어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어느 누구도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밝혀내려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에 존재해야만 합니까?’라고 헨리 프랑켄슈타인은 묻고 있다. ‘당신은 저 구름과 별들 너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나요? 무엇이 나무의 싹을 틔우고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나 당신이 그

런 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미쳤다고 할 겁니다.’ 정말 대단한 웅변이 아닐 수 없다.

1930년대가 끝날 무렵에는 정교한 미술 작업으로 호평받은 <프랑켄슈타인의 아들>(1939)이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새로운 남작(바질 래쓰본이 연기한)은 악명높은 아버지로부터 매부리코 이상의 뭔가를 물려받았음이 이내 드러났다. 이 영화를 보면 과학에 대한 몰두를 선언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문구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에 나온다. ‘만약 네가 나처럼 미지의 것을 꿰뚫어보려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으로 불타고 있다면 계속 전진하거라. 설사 그 길이 고통을 안겨주는 굽이진 길이라 하더라도 계속 전진하거라. 진실을 쫓는 이는 누구나 그렇듯, 너는 미움받고 모욕당하고 비난받을 것이다.’ [아들] 프랑켄슈타인은 아버지가 남긴 이런 문구에 의해 자극받게 되고, 나중에는 아버지의 무덤

에 누군가가 ‘괴물 제작자(maker of monsters)’라고 써 놓은 것을 보고 격분해, 횃불을 상징적으로 치켜들고 이것을 펜으로 이용해 아버지의 조악한 묘비명을 ‘인간 제작자(maker of men)’로 바꿔 놓는다.

그런 등장인물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이는 그들이 종종 화면 바깥의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시선을 두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데서 추측해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서사구조에서는 그들이 지식에 대한 강박적 추구로 인해 [숭고한 열망으로부터] 타락했음을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과학적 관심과 인간적 관심간의 관계를 진정으로 문제삼는 영화들도 많다[과학의 발전이 과연 인류의 복지 향상과 같은 관심사에 부합할지를 놓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들도 많다는 뜻 ― 역주].

<흡혈 박쥐>(1933)에 나오는 폰 니만 박사(Dr. von Niemann)처럼 결국 구제불능으로 판명되는 인물조차도 과학의 영광에 대해 열정적인 일장연설을 할 기회를 갖는다. ‘미쳤다구? 생명의 신비를 풀어낸 사람을 두고 미쳤다고 생각하다니? 생명이 실험실에서 창조되었어. 단지 결정 구조를 키운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맥이 뛰고 음식을 요구하는, 살아 있고 성장하는 조직을 만들어낸 거야. . . . 생각해 봐. 나는 베일을 걷어올렸어. 나는 생명을 창

조했어. 생명으로부터 그것의 비밀을 끌어냈다구’

물론, 폰 니만 박사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복수심에 불타는 조수의 총에 맞아 죽는다)는 사실은 그의 집착이 정말로 정신나간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광기를 천재성과 구분짓는 경계는 종종 그리 분명치 않다.

과학은 그것이 아무리 위협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선(善)을 위한 잠재력 또한 갖고 있다. 그래서 영화 서사구조에서 올바른 과학의 길에서 탈선한 과학자들에 대한 대처는 대체로 경찰이나 지역주민과 같은 기존 권력기구의 몫이지만, 이 시기의 괴물과 그 창조자들은 이런 권력기구에 의해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죽이고 죽음으로써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다. 마치 그들이 공동으로 저지른 죄악을 마음 속으로 인식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오직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그들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1930년대의 프랑켄슈타인 영화들을 보면서 공식적인 선(善)의 세력[경찰과 지역주민]뿐 아니라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만들어낸 인간 형태의 “괴물”(보리스 칼로프가 연기한)에 대해서도 공감을 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의 아들>에 나오는 “괴물”이 비교를 위해 볼프 폰 프랑켄슈타인(Wolf von Frankenstein, 헨리 프랑켄슈타인의 아들)을 옆에 끌어다 놓고 거울에 비친 험악한 인상의 자기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때, 우리는 괴물에 의해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보다는 그의 딱한 처지를

떠올리면서 괴물을 동정하게 된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에서 폭풍우를 동반한 번개가 [시체 조각을 짜맞춘] 볼품없는 몸뚱아리에 생명의 불꽃을 일으킬 때, 우리를 온통 사로잡는 것은 씬 마지막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의 불타는 듯한 시선이다. 그는 ― 영화를 보는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 자신이 너무나도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 있어! 살아 있어!’라고 되풀이해 중얼거린다.

따라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931), <닥터 X>, <모르그 가의 살인>(1932), 그리고 <프랑켄슈타인>까지 초기의 미친 과학자 영화의 대부분은 과학적 탐구에 적어도 제한적으로나마 존경을 표하

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과학에 대한 두려움은 단순하게 나타나지 않는데, 왜냐하면 진보의 필요와 그에 수반하는 대가에 관한 소박한 사고방식 때문에 두려움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생명을 창조하려 분투할 때면, 그것이 <프랑켄슈타인>의 전통처럼 인간을 본뜬 것이건, 아니면 <걸어다니는 시체>(1936)나 <목매달 수 없는 남자>(1939)처럼 기계 심장을 이용한 것이건, 그도 아니면 <괴물과 소녀>(1941)나 <르노 박사의 비밀>(1946)처럼 원숭이-인간의 형태건 간에, 이 미친 과학자들은 과학의 공포와 약속 둘 다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에 가면 이 시기의 호러 영화에서 나타나는 과학은

근본적으로 혼란을 야기하고, 그 본성상 잔혹한 위협을 불러일으

키는 무자비한 야망의 주변을 맴도는 것으로 그려진다. 생명의 기본 과정에 대한 개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은 그것의 접근을

정당하게 금지하고 있던 ― 이런 믿음은 종종 조악한 종교적 정

당화에 근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영역에까지 침범해 들어간다. 새로운 지식에 현혹되어 타락한 과학자들은 일상생활의 가치로부터 부과된 제한을 무시하고, 잘못 만들어진 창조물을 방심하고 있는 세상에 풀어놓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학자들은 강력하고 위협적인 존재이며, 자연을 조작하는 그들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짜이고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전기 인간>(1941)에 나오는 한

등장인물의 말마따나 ‘당신의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 흑마술(black magic)’인 것이다. 그러한 힘과 맞서게 되었을 때, 질서를 회복하고 전(前)-과학의 세상을 다시한번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폭력과 억압에 호소하는 길밖에 남지 않게 된다.

미친 과학 영화의 전성기였던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과학자들이 연구에 대한 몰두 때문에 타락한 인물이거나, 혹은 (덜 흥미로운 경우로)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과학을 이용하는 사악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가 되면 위협을 제기하는 과학(science-as-threat)의 새로운 개념화가 등장한다. 물론 이 새로운 개념화의 전조는 그 이전에 이미 찾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광선>(1936)에 나오는 과학자(보리스 칼로프가 연기한)는 정신이 이상해져 결국 라듐 X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되는데, 이는 호러 영화에서 핵과학(nuclear science)의 예기치 않은 위험을 암시한 최초의 중요한 사례였다.

이로부터 20년이 지나고 나면, <그들!>(1954)에 나오는 거대한 개미, <미지의 X>(1956)에 등장하는, 방사능을 집어삼키는 보이지 않는 괴물, <고질라>(1957)에서 핵폭발에 의해 깨어나는 선사시대의 괴물, <세상에 도전한 괴물>(1957)의 돌연변이 문어 등에서 볼 수 있듯, 1930년대의 미친 과학자의 의도적인 창조물은 이제 핵실험의 우연한 산물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측면이 있다. 하나는 원자에너지의 방사능 위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증가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 ― 첫째 측면과 무관하지 않은 ― 는 좀더 복잡한데, 자신의 행동에 대한 과학자들의 책임에 대해 전통적 호러 영화들이 보여 온 이중적 태도를 확장해 일반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1950년대의 호러 영화에서 과학자들은 비록 위험한 무언가를 알고 있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단순히 미쳤거나 악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진보를 위해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도 두려움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은 변화의 동력에 대한 제어를 상실했고, 진보가 선(善)을 위한 무제한적인 힘이 아니며, 개별 과학자들은 ―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더라도 ―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도, 이를 통제할 수도 없게 되었다는 일반화된 두려움이었다.

그러한 두려움은 원자에너지의 괴물같은 부산물에 초점을 맞춘 1950년대의 많은 영화들에서 핵심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두려움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보다 전통적인 틀 구조의 호러 영화들 중 일부에도 스며들어 있다. <플라이>(1958)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영화는 1950년대에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미친 과학자 영화 중 하나였으며, 메이저 스튜디오(폭스)에 의해 컬러와 시네마스코프로 만들어진 최초의 호러 영화이기도 했다. <플라이>는 연구를 완성시키려 급히 서두르다가 재난을 불러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과학자라는 익숙한 전형(典型)을 내세운다. 그 결과 과학자 자신이 희생양이 된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물질전송장치를 스스로에게 시험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리 한 마리와 같이 기계에 들어가게 되어 파리 머리와 한쪽 팔에 집게손을 단 모습으로 변하고, 그 자신의 머리와 팔은 파리에 달리게 된다. 이 과정을 되돌릴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는 실험노트와 기구들을 파기하고, 산업용 프레스로 자신의 몸을 짓눌러 버리는 일을 도와주도록 부인을 설득한 후, 동생에게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다시 가족을 꾸려가는 일을 맡긴다.

이것이 프랑켄슈타인 모델의 변주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

기 등장하는 과학자인 앙드레(Andr Delambre)가 이전 시기의 많

은 과학자들과 다른 점은, 이 영화가 그에 대해 절대적인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컨대 <프랑켄슈타인의 아들>에 나오는 볼프와 같이 제한된 정도로 보더라도 “미쳤다”고 표현하기는 힘들고, 재난을 야기한 그의 성급함 역시 자기과시욕에 의해 유발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의 발견이 가진 긍정적 잠재력을 이용해 인류를 도우려는 그의 희망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다. 전통적인 미친 과학자들과는 달리 그는 비난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는 현대사회의 희생양이며, 공포뿐 아니라 연민을 자아내는 창조물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영화들에서 진보의 대가가 분명 크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개별 과학자들이 비난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그려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 오히려 이 시기는 “과학 전문가”가 영화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위협들 ― 과학 그 자체에 의해 야기된 위협에 국한되지 않는 ― 을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시기였다. 전문적 과학지식은 위험한 동시에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과학자들의 전문성(expertise)은 다른 무언가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퀘터매스 실험>(1955)에 나오는 퀘터매스 교수는 우주 괴물이 지구에 침입한 것에 대해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지만, 동시에 그는 괴물을 격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과학적 전문성을 양날의 칼로 바라보는 이런 식의 평가는 물론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었지만 1950년대 들어 더욱 강해졌고, 방사능을 주요 소재로 다룬 이 시기의 호러 영화들(1936년의 <보이지 않는 광선>을 원조로 하는)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 여기에는 하나의 아이러니, 즉 엄청난 핵의 위협과 1950년대의 과학에 흔히 부여되었던 신뢰 사이의 두드러진 간극이 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미 주장했듯이, 우리의 대중문화는 ‘걱정을 멈추고 [핵]폭탄을 사랑하도록’ 정말 우리에게 가르치려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50년대의 많은 영화들은 훌륭한 동기에 의해 과학적 목표를 추구하는 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예를 들어 <타란툴라>(1956)에 나오는 생화학자인 디머(Gerald Deemer)는 세계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영양물질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거대한 거미를 만들어내 자신과 실험실 스탭들은 죽음을 당하고 인근 마을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이와 같은 전형적인 상황에서는 과학적 전문성과 군대의 힘을 합쳐야만 결국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그 불운한 거미는 네이팜탄 공격을 받고 최후를 맞는다). 그런 영화들에서 과학자들이 집착에 사로잡히거나 사악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단지 운이 없었을 따름이다. 인류의 상태를 향상시키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불운을 맞는다. 이러한 영화 속 세계에서 과학은 더 이상 과학자들을 타락시키는 존재가 아니다. 과학은 그 본성상 위험을 수반하는 작업이며, 그 때문에 종종 위해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치고 타락한 과학자들이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전통이 1950년대의 호러 영화 세계에 쉽게 안착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이 시기에도 미친 과학자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들은 종종 무시무시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다. <나는 10대 프랑켄슈타인이었다>(1957)과 같은 제목은 발명의 심연(深淵)이 얕아졌음을 말해 준다. 이 영화에 나오는 미친 의대 교수가 자신이 만든 10대 창조물에 불멸의 성질을 불어넣었음을 이런 식으로 뽐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난 네 머리 속에 교양있는 말씨가 들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내가 그 속에 직접 기워 넣었으니 말이야.’ 오직 [영국의] 해머 필름(Hammer Films)만이 (<프랑켄슈타인의 저주>[1957]을 필두로 해서 1960년대 내내) 전통적인 프랑켄슈타인 관념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을 진지하게 추구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과학자를 타락시키는 과학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대신, 미친 과학자의 사악한 성격화를 더욱 단순화시켜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950년대에 개별 과학자의 비인간적 야망은 과거에 비해 전면에 덜 부각되었고 프랑켄슈타인 전통에서 익숙한 도덕적 양면성은 더 큰 국면으로 옮겨져 표현되었다. 여기서의 과학은 1930년대 호러 영화에서 보이던 낡은 집과 고딕풍의 성채에 감추어진 유사마술적인(quasi-magical) 활동이 아니라 보다 일상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과학은 우리의 일상세계의 구성 부분 중 하나가 되었고,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자 진보와 재난 양자 모두의 대표적 전조로 자리잡은 가장 흔해빠진 위협인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 생활의 모든 측면을 잠재적으로 침범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 이 시기의 징후를 가장 잘 포착한 이미지는 도쿄 시내에 배설물을 흩뿌리는 고질라나 시내 하수도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의 거대한 개미가 아닐 지도 모른다. 그 이미지는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1957)에서 우연한 방사능 노출 사고로 인해 몸이 작아져, 더 이상 그(혹은

우리)에게 안전하고 중심적인 장소를 제공하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이후 30여년 동안 과학이 일상세계 속으로 더욱 많이 동화되어 감에 따라, 과학 연구는 점차 갖가지의 미치광이같은 목표의 추구에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효과적인 수단들에 불과한 것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냉동된 나찌 병사들을 되살려 세계 정복을 추구하건(<얼어붙은 시체>[1967]), 아니면 해파리로 변해 연적(戀敵)을 살해함으로써 여주인공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건(<죽음의 침>[1968]) 간에, 과학은 대체로 악을 행하는 불가해한 수단으로서 기능했다. 미친 과학에서 선호되던 많은 기획들(생명의 신비를 풀고, 젊음을 유지하고,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등)은 여전히 구미가 당기는 것으로 남아 있었지만, 이와 관련된 과학의 개념은 그것이 한때 가졌던 독특한 성질을 잃어버렸다. 과학 그 자체는 더

이상 본질적으로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고, 과학자들은 어느 편에 속하건 간에 그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모든 종류의 위협으로부터 지켜 주는 보루로서의 전문 과학자에 대한 신뢰는 1970년대에 사실상 사라졌는데, 이와 같은 쇠퇴는 호러 영화에서의 과학 이미지 변천사에서 마지막 단계를 이루는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1970년대 말이 되면 호러 영화들 중 매우 명시적으로 과학을 소재로 활용한 것들조차도 과학 그 자체에는 사실상 거의 주목하지 않게 된다.

과학은 현대의 호러 영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유형의 생태적 재난을 촉발시키는 데 있어 필요한 요소이긴 하지만(생물무기가 비행기 사고로 인해 도시의 상수도로 흘러들어가게 되는 <미친 사람들 >[1978]에서처럼), 이런 사태를 일으킨 책임은 종종 군부나 국가기구, 대기업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때 지나친 과학적 야망이나 개인적인 지식의 오용의 결과였던 것이 이제는 우리를 지키는 데 핵심적인 바로 그 권력기구의 활동에 통합된 일부분이 되었다. 과학, 국가, 군부 및 산업의 제도들간에 가정된 이러한 공모관계는 많은 현대 호러 영화들 ― 과학을 명시적인 소재로 삼은 영화들에 한정되지 않는 ― 을 관통하는 실마리이다. <피라냐>(1978)에서 미쳐 날뛰는 물고기들은 베트남전에 사용될 무기로 (과학의 힘을 빌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존재 자체가 군사적 기밀이었던 피라냐가 사고로 인해 지역 수로로 방출되자, 이들을 죽여 없앨 수 있는 길은 인근 공장에서 나온 화학 폐기물로 물을 오염시키는 방법밖에 남지 않게 된다. 대부분의 그런 영화들처럼, <피라냐> 역시 식인 물고기들이 전멸했는지 여부는 열어둔 채 영화를 끝맺는다.

물론 일반적으로 보면 호러 영화에서의 오염은 반대의 효과를 낳는다[<피라냐>에서는 물을 오염시켜 재난을 막았지만 보통의 경우는 오염 그 자체가 환경적 재난을 야기한다는 뜻 ― 옮긴이]. <예 언>(1979)에 나오는 돌연변이의 확산은 인근 목재 공장에서 유출된 수은중독의 결과이고, <심연에서 나온 휴머노이드>(1980)의 괴상하고 역겨운 괴물은 호수의 연어 양식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실험의 부산물이며, <앨리게이터>(1982)에 나오는 거대한 악어는 대기업의 호르몬 실험에서 버려진 동물 잔해를 먹은 결과로 나타난 돌연변이이다(<앨리게이터>의 시나리오를 쓴 존 세일즈는 ‘악어가 자기 앞에 놓인 것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며 사회-경제 시스템 전체를 관통한다는 것이 애초의 아이디어였다’고 밝히고 있다).

과학은 현대의 호러 영화들에서는 철저하게 도구적으로 기능한다. 1930년대의 미친 과학자 영화들이 지식과 그 속에 내재한 위험에 관한 것이었다면, 1980년대의 영화들은 이와는 다른 무언가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의 호러 영화들이 가정하는 세계는 절박한 위협 하에 놓여 있으며, 개인들은 무시무시한 변태(變態)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고, 기존의 권력기구들은 대재난에 직면해 무기력하거나 재난의 발생에 타락한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다. 여기서의 과학은 절망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일 뿐이며, 과학자들 역시 많은 억압수단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학은 여타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시녀가 되어버렸고, 한때 미친 과학자의 공상적인 신념이었던 것은 이제 묵시록적인 사회적·물리적 붕괴에 헛되이 맞서는,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방어수단으로 축소되었다.

아마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그리고 불가해한 이유 때문에 정신이상자나 좀비(zombie)로 돌변할 수 있는 픽션 속의 세계에서 과학에 대한 믿음이란 가당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호러 장르 전체를 통해 전문성 ― 과학을 소재로 하는 호러 영화들에서 동네북 신세인 ― 은 평가절하의 대상이 되어 왔다. <시체들의 새벽>(1980)에서는 주위의 문명 전체가 붕괴하고 있는 상황을 그리면서, 한 TV 인터뷰 담당자가 턱수염을 기르고 검은 안대를 두른 과학자(추측컨대 허먼 칸과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사고했던’ 시대를 반향한 듯한)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 과학자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절망하고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세계에 있는 전문가들의 신념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는 이성을 찾아야만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논리적, 논리적, 논리적 . . .’이라고 되뇌었다. 그가 최면술에라도 걸린 듯 ‘논리적’이라는 말의 반복에 빠져드는 사이 인터뷰 담당자의 목소리가 그 위를 덮는다. ‘과학자들은 항상 이런 식의 용어들을 써서 사고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방식은 이런 게 아닙니다.’

호러 영화에서 항상 그래 왔듯, 이 과학자는 인터뷰 담당자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 ‘ . . . 논리적’이라며 그는 말을 잇는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끝장입니다.’ 이 영화에서 결국에는 바로 그 ‘끝장’이 도래하고야 만다는 점은 현대 호러 영화가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내포된 비관주의의 한 척도일 것이다.

※ 인용된 영화들 (가나다순, 연도는 영국 개봉연도 기준)

<걸어다니는 시체 The Walking Dead>(1936) D: 마이클 커티즈

<고질라 Godzilla>(1957) D: 이시로 혼다

<괴물과 소녀 The Monster and the Girl>(1941) D: 스튜어트 하이슬러

<그들! Them!>(1954) D: 고든 더글러스

<나는 10대 프랑켄슈타인이었다 I Was a Teenage Frankenstein>(1957) D: 허버트 스트록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The Incredible Shrinking Man>(1957) D: 잭 아놀드

<닥터 X Dr. X>(1931) D: 마이클 커티즈

<르노 박사의 비밀 Dr Renault"s Secret>(1946) D: 해리 래크맨

<모르그 가의 살인 Murder in the Rue Morgue>(1932) D: 로버트 플로리

<목매달 수 없는 남자 The Man They Could Not Hang>(1939) D: 닉 그린드

<미지의 X X the Unknown>(1956) D: 레슬리 노먼

<미친 사람들 The Crazies>(1978) D: 조지 로메로

<보이지 않는 광선 The Invisible Ray>(1936) D: 램버트 힐라이어

<세상에 도전한 괴물 The Monster that Challenged the World>(1957) D: 아놀드 레이번

<시체들의 새벽 Dawn of the Dead>(1980) D: 조지 로메로

<심연에서 나온 휴머노이드 Humanoids from the Deep>(1980) D: 바바라 피터스

<앨리게이터 Alligator>(1982) D: 루이스 티그

<얼어붙은 시체 The Frozen Dead>(1967) D: 허버트 레더

<예언 Prophecy>(1979) D: 존 프랑켄하이머

<전기 인간 The Electric Man>(1941) D: 조지 와그너

<죽음의 침 Sting of Death>(1968) D: 윌리엄 그레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Dr Jekyll and Mr Hyde>(1931) D: 루벤 마물리언

<퀘터매스 실험 The Quatermass Experiment>(1955) D: 발 게스트

<타란툴라 Tarantula>(1956) D: 잭 아놀드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1931) D: 제임스 웨일

<프랑켄슈타인의 아들 Son of Frankenstein>(1939) D: 롤랜드 리

<프랑켄슈타인의 저주 The Curse of Frankenstein>(1957) D: 테렌스 피셔

<플라이 The Fly>(1958) D: 커트 노이만

<피라냐 Piranha>(1978) D: 조 단테

<흡혈 박쥐 The Vampire Bat>(1933) D: 프랭크 스트레이어

출전: Andrew Tudor, ‘Seeing the Worst Side of Science,’ Nature 340 (24 August 1989), 589-592.

앤드류 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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