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합의 근거 상실한만큼 대미투자특별법 제정도 중단하고
재협상 방안 논의에 착수해야
지난 2월 20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가 교역국들에게 일방적으로 부과한 상호관세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관세 부과 권한은 의회에 속하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3500억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의 대미투자를 약속한 한미 경제안보 합의의 근거가 무너졌다. 정부는 즉시 한미 간 합의를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로 미국의 상호관세 15%가 무효화됐다고 하면서도 대미투자특별법은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미투자협상을 하게 된 원인이었던 상호관세가 무효라는 결과 앞에서도 여전히 한미 합의 결과를 고수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 전체에서 대전제에 해당하는 1항 ‘핵심 산업 재건 및 확장’이 무너졌으니 팩트시트 전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대신 한미재협상 방안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물론 연방대법원의 판결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압박이 멈출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추가관세 10%를 모든 국가에 부과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하루만에 최대치인 15%로 다시 조정하여 추가관세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다른 국면이자 새로운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지, 막대한 금액의 대미투자를 강요한 기존 합의를 이어가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당장은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15% 관세를 부과했지만, 조만간 무역법 301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에 근거해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 경우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반도체는 상호관세가 아니라 품목관세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 미국은 한국과의 무역수지 적자를 이유로 품목관세를 통한 압박을 집요하게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관세의 대상과 협상의 목적이 달라진 상황에서는 협상의 내용과 형식도 바뀌어야 한다. 당장 기존 상호관세의 환급도 현안이 되었다. 기존의 대미투자 합의도 재검토할 이유가 충분하다. 특정 품목관세를 걱정해 기존 대미투자합의를 유지할 경우, 자동차, 반도체 등 특정 산업군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막대한 대미투자를 반대급부로 제공하는 셈이기에 그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최소한 특정기업에 제공되는 특혜의 사회적 환수 방안 등이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위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전체 국민들에게 부과되는 상황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나서 중소기업들 관세환급 도울 방안 마련 필요
지금 정부는 단호하고 주도적인 태도로 임해야 한다. 우선 이재명 정부는 연방대법원 판결로 한미합의의 기본전제가 바뀌었음을 공표하고 상호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수용했던 대규모 투자 합의, 조선협력(MASGA) 합의, 미국 에너지 수입 약속 등이 무효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재협상에 착수해야 한다. 또한 그간 관세를 부담해 왔던 한국 수출기업들이 관세 환급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에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관세환급 소송을 도울 방안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미 관계 전반에 관한 종합 대책 강구해야
무엇보다 한미 관계 전반에 관한 ‘종합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시급하다. 변화된 상황에 맞게 한미 간 재협상을 요구하고 결과를 끌어내는 것은 최소한의 대응책일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보호무역과 돈로주의로 돌아선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까지도 마련해야 한다. 특히 팩트시트에서 한미 동맹,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역할을 미국 산업 재건과 대중국 견제, 발진 기지로 삼겠다고 합의한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고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 그 후과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서해에서 주한미군과 중국군 전투기들의 대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웠던 한반도 평화공존과 자강이라는 목표 어느 것도 지금의 전략과 방식으로는 달성하기 힘들다. 이제라도 이재명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대미 관계를 어떻게 운영할지 큰 그림부터 세워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지난 1년은 동맹이 어떻게 일방적인 강압과 협박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 뼈저리게 체감한 기간이었다. 호혜와 상호 존중이라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관계의 두 국가가 동맹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미동맹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더 이상 동맹관계라는 굴레에 갇혀 미국의 억지 논리에 끌려다니는 저자세로 임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불평등한 협상을 끝내고 호혜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판을 짤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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