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1999-02-15   1175

[04호] 미친 과학자로서의 물리학자(2)*

자기희생적인 과학자

1930년대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에 반대하는 모든 힘들을 분석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지적인 언어로 표현된 공격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예컨대 포스딕의 비판은 미국 원자과학자들의 대부격인 로버트 밀리컨(Robert Millikan)에 의해 공개적인 반박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볼 때 과학은 해악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가져왔다고 지적하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밀리컨은 기존의 강력한 이미지에 도전하면서, 과학자가 "마치 조그만 악동과 같이" 실수로 세상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조롱했다.

밀리컨이나 러더포드와 같은 몇몇 과학자들은 파멸의 날에 대한 공포를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동시에, 원자과학의 힘에 대한 유토피아적 낙관 역시 제거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신문기자들을 제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왜냐하면 영국, 이태리, 프랑스, 독일, 미국, 소련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놀라운 원자 혁명(atomic revolution)이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몇몇 과학자들은 가능한 위험에 대한 경고를 계속하고 있었다. 예컨대 프레드릭 졸리오(Fr d ric Joliot)는 원소 인공변환의 발견으로 아내인 이렌느 퀴리(Ir ne Curie)와 공동수상한 1935년의 노벨상 수상연설 자리를, 과학자들이 지구를 신성(新星)처럼 폭파시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를 남기는 데 이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졸리오는 원자 에너지가 가져올 수 있는 경이들에 대해 대중들에게 설파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며, 핵에 대한 연구가 최고 속도로 진행될 수 있도록 자신의 연구소에 배당되는 연구자금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지식을 갖추는 것이 무지한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는 꿈에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인문주의적 비판자들조차도 내심으로는 과학의 가치를 부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포스딕은 1939년까지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의 운영책임을 공동으로 맡고 있었는데, 어니스트 로렌스(Ernest Lawrence)가 거대한 입자가속기(cyclotron)을 건설하기 위한 자금을 재단에 요청하자 포스딕은 이를 승인하는 쪽에 열성적으로 표를 던졌다. 그는 그 장치가 순수하고 불편부당한 과학의 도구이자, "인간 정신의 가장 고귀한 표현"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대중 일반에 대해 말하자면, 1939년까지 과학의 이미지는 여전히 두려움의 방향보다는 비합리적일 정도의 열망의 방향으로 더 많이 구부러져 있었다. SF에서 과학자 악당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에 비한다면 과학자 영웅들은 두세 배 가량 더 많이 등장하고 있었다. 잡지나 책들에 실리는 보통의 대중적 픽션에서 과학자들이 등장할 때, 그들은 단정하고 쓸모있는 인물들로 그려졌다. 잡지나 신문의 논픽션 기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거의 칭찬 일색이었다. 과학자들은 종교와 공공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올바른 행위의 예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밀리컨이 공개적으로 말했을 때, 이 말은 그다지 모순된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진리의 탐구와 문명의 진보를 위해 눈에 띄게, 지침없이 헌신적으로 노력해 오지 않았던가?

1944년에 만들어져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 <퀴리 부인 Madame Curie>은 과학자들에 대한 다수 이미지(majority image)를 마치 핀 위에 앉은 나비와 같이 깔끔하게 포착해 내었다. 젊은 피에르와 마리 퀴리는 그들 자신을 위한 세속적인 권력이나 물질적인 보상은 결코 추구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진리의 빛만을 추구했다. 영화의 한 주요 장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뽑아낸 최초의 라듐을 담은 접시 위에 몸을 굽히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은 라듐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빛에 파묻혀 자신들이 막 발견해 낸, 선(善)을 위한 힘을 보며 황홀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학자들에게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울러 제시했다. 영화는 마리 퀴리가 초인적인 헌신성을 지니고 녹초가 될 때까지 연구를 계속하였으며,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신비스런 힘들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녀가 라듐으로부터 올 수 있는 암의 위험을 뒷전으로 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마리 퀴리도 피에르 퀴리도 좀처럼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예컨대 깊은 인상을 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에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마리가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말없이 초점이 없는 눈으로 얼어붙어 흐느끼지도 않고 며칠을 보낸다. 반면 실제 역사적 사실에서는, 마리의 친구들이 그녀를 남편의 시체 앞에 데려다 주었을 때 그녀는 열렬하게 그의 차가운 얼굴에 키스를 퍼붓고는 그의 몸에 매달려서 결국에는 친구들이 방에서 끌어내다시피 해야만 했으며, 고통받은 여느 사람들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 온 일반 대중에게는 그런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실제 과학자의 이미지는 사악한 과학자의 전형과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실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여러 해 동안에 걸쳐 강도높은 학습을 하고 종종 좌절감을 가져올 수 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함을 의미하였고, 이는 비범한 자제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은 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가 1925년에 내놓은 소설인 {애로우스미스 Arrowsmith}와 같은 책에서 중심 테마로 나타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젊은 독자들에게 과학으로 향하는 어려운 길을 가도록 고무하는 데 일조한 바 있다. 몇몇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은 세계를 비인격적이고 감정이 배제된 전문용어를 써서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진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인간적인 감정에 가해지는 억압을 대변하기에 가장 적절한 집단이 되었다. 물론 실제 과학자들이 많은 경우에 동료이자 선생으로서 높이 인정받는, 온화하고 사교적인 유형의 인물이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이나 잡지의 필자들에게 있어서 과학자는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고 부(富)를 조롱하는 등 일상적인 관심사들을 무시하는 기묘한 인물이자, 엄청난 비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비세속적인 "마술사"로 비쳤다. 영화 속에서 루크 박사와 퀴리 부인은 공히 엄청난 인내력을 가지고 감정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밤낮없이 라듐에 관한 작업에 몰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과학자는 마치 그들이 연구하는 원자 그 자체와 같은 존재―압축되어 있는 스프링과 같이 막대한 에너지를 그 속에 억눌러 놓고 있는―로 묘사되었다.

실제 핵과학자들이 픽션 속의 핵과학자들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1936년에 이렌느 퀴리가 연구자금을 올려줄 것을 약속한 정당 쪽에 자신의 명성을 제공함으로써 프랑스 정계에 입문하였을 때, 한 풍자 만화는 그녀가 자신이 속한 당의 정적(政敵)들 사이를 차가운 태도로 걸으면서 손가락에서 죽음의 광선을 발사하여 그들을 제거하는 모습을 그렸다. 나쁜 과학자는 권력을 향한 욕망을 방치하여 걷잡을 수 없이 되도록 내버려두는 과학자인 데 반해, 좋은 과학자는 자기 통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적 야심을 포기하는 과학자였다. 과학자들은 이런 구분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렌느 퀴리 자신도 기자들에게 자신은 실험실의 정적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며 곧 정계에서 물러났다.

위에서 언급된 모든 생각들이나 신화들이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1930년대의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그것들이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 같지는 않다. 가장 인상깊은 이미지들은 주로 싸구려 잡지에 실린 소설이나 호러 영화들에서 나타났는데, 이런 (예술)양식들은 젊은이들에게는 분명히 영향을 주었겠지만 분별있는 성인들이 관심을 가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가장 기괴한 얘기들조차도 현실에 관해 뭔가 말해 주는 것이 있었다. 포스딕이 로렌스의 입자가속기를 두고 가장 순수하고 불편부당한 연구의 상징이라고 칭찬한 지 불과 2년 후에, 그 기기의 일부가 원자폭탄 제조를 위해 우라늄을 뽑아내는 시험 공장으로 탈바꿈했으니 말이다.

스파이로서의 과학자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을 때, 그 소식이 핵과학자의 전형적 이미지에 즉각적인 영향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 이미 형성되어 있던 전형이 새롭게 부각되는 단계로 진입하였고 그것이 가졌던 감성적인 힘은 배가되었다. 히로시마에 폭탄이 떨어진 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난 후부터 라디오 방송에는 전문가들이 나와 무시무시한 힘들, 우주의 비밀, 그리고 파멸의 날에 대해 숨가쁘게 지껄여대기 시작했으며, 길거리에서 미국 상원 의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 들먹여졌다. 사실 그 이전 시기에 핵과학자들을 소재로 삼았던 얘기들은 그들이 영웅으로 묘사되었든지 악당으로 묘사되었든지 간에 심각한 주목을 받거나 신빙성을 획득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이후부터는 그 뒤얽힌 이미지 전체가 라디오의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이들의 정신 상태에 있어 중요한 일부분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적 반응은 충분한 근거를 지닌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원자 무기의 실제 존재가 막연한 공포에 새로운 타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몇몇 집단들은 두려움과 공포의 느낌이 대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중적 이미지를 형성하려 노력했다. 먼저 사회적 움직임을 시작한 것은 핵과학자들이었는데, 원자폭탄의 섬광으로 인해 사회적 주목을 받음으로써 그들은 전례없을 정도로 두드러져 보이게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저녁 식사나 클럽 모임, 정부 회의 등에 참석하도록 요청을 받았으며, 온갖 종류의 잡지로부터 글을 청탁받았고, "어린이 퀴즈(Quiz Kids)" 라디오 쇼부터 백악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발언해 줄 것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조만간에 실현될 놀라운 전망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이 기회를 이용했다. 핵무기에 대한 국제적 통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몇몇 과학자들은 문명의 종말, 심지어 전 인류의 종말이 다가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반면 다른 과학자들은 핵에 관한 연구가 어떻게 사막을 옥토로 바꾸어 놓을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다―여기에는 물론 자신들과 같은 과학자들의 연구가 재정적으로 적절한 후원을 받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 모든 생각은 우주의 힘을 지배한다는 오래된 관념의 부활을 의미했다. 핵에너지에 관한 1946년의 의회 청문회를 연구했던 한 사회학자는, 심지어 상원의원들조차도 마치 옛날 사람들이 마술사를 무시무시한 초자연력을 장악한 존재로 바라보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원자과학자들을 바라보았다고 결론지었다. 과학자들이 그러한 정도의 높은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은 이전에 결코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마술사는 금지된 비밀을 지배하는 사람이었고, 이러한 오래된 생각은 원자과학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심지어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퍼져 나갔다. 1945년 가을에 {뉴욕 타임즈 The New York Times}에 났던 기사들의 색인을 찾아보면 당시 원자 에너지에 관한 기사들 중 2/3 가량이 주로 국제적인, 혹은 다른 방식의 "통제"에 대해 다룬 것이었고, 이 중에서 약 절반 정도가 주로 "비밀 유지"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 라디오 네트워크의 방송 내용을 1947년 중엽에 요약해 모은 것을 보면, 원자 에너지에 대한 언급에서 앞서와 대략 같은 비율로 관심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트루먼 대통령조차도 미국 정부가 우주의 신비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자폭탄의 "비밀"에 관해 수없이 많은 뉴스 칼럼, 라디오 쇼, 잡지의 기사, 소설들이 씌어졌는데, 여기서는 그 "비밀"이라는 것이 마치 어딘가의 금고 안에 들어 있는 한 장의 종이 위에 적힌 공식이나 되는 것처럼 간주하고 있었다.

미 의회는 원자 에너지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적어도 원칙에 있어서는, 한 과학자가 자기 집에서 사적으로 행한 순수 연구의 결과를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사형을 언도받을 수 있게 되었다. 뉴스에 보도된 스파이 얘기들, 예컨대 클라우스 푹스(Klaus Fuchs)의 국가반역 행위라거나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나중에 사형되었던 줄리우스 로젠버그(Julius Rosenberg)와 에델 로젠버그(Ethel Rosenberg) 부부의 재판과 같은 얘기들은 이런 분위기를 계속 몰고가도록 부추겼다. 그 결과로 생겨난 비밀 유출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들은 과학자들이었다. 비록 미국 원자과학자들 중에서 반역자로 판명이 난 사람이 아무도 없긴 했지만, 그들만큼 철저한 조사를 받은 집단은 달리 없었을 것이다. 의회 청문회에서 공산주의자로 판명이 난 사람들 가운데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반수 이상을 헤아렸고,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무자비하게 추적을 받아 그 중 상당수가 직업을 잃었으며 몇몇은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자살하는 길을 택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너무나 비민주적이어서 10여년 전에는 그들이 미처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들, 즉 평화시임에도 곳곳에 배치된 경비원들과 높은 담장, 잠겨진 금고, 친구들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캐묻는 방문자들, 그리고 눈에 띄는 감시 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새로 생긴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 AEC)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1950년대 말까지 미국 정부는 AEC에 고용된 사람들과 연관이 있는 15만 명의 사람들에 대해 상세한 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조사 체계가 정부, 산업체, 심지어 대학의 많은 부서들에 스며들었다.

비밀 통제에 관한 집착은 핵 에너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던 모든 다른 국가들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예컨대 소련에서는 핵분열 연구가 다름아닌 비밀경찰 장관 라브렌티 베리아(Lavrenty Beria)의 지휘 하에 맡겨졌다. 소련의 핵과학 연구소들은 베리아의 강제수용소 지역 내에서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격리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포로로 잡혀온 과학자들과 자유인인 과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설사 자유인이라고 할지라도 선택의 폭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포로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흡사 로스 알라모스(Los Alamos)를 연상시키는 이 은폐된 시설에서, 담장과 경비원들은 프로젝트 책임자까지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행동에 제약을 두었으나 장소가 시베리아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높은 담장은 스파이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과학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라는 점이 명백해 보였다.

이런 생각은 픽션으로 옮겨졌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많은 소련 영화와 미국 영화들에서 스파이와 반역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아이들이 주로 보는 "원자 분대(The Atom Squad)"와 같은 텔레비전 쇼 역시 비슷한 얘기들을 안방에까지 끌어들였다. 이제 여기에 새로운 대중적 전형이 나타났다. 과학적 비밀을 손에 넣음으로써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반역자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과학적 비밀이란 원자 에너지의 비밀을 의미하는 경우가 반수를 넘었다.

이런 얘기들은 그 이전의 신비스런 이미지를 부추기는 또하나의 힘이 되었다. 예컨대 스파이들이 원자 에너지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어떤 사람을 납치하려 시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1950년대의 미국 영화 세 편 모두에서, 원자 에너지의 비밀을 쥐고 있는 문제의 인물은 <보이지 않는 광선>에서 칼로프가 연기했던 빛을 내뿜는 미친 과학자처럼 이미 사고를 당해 기괴한 방사선을 띄고 있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다른 스파이 영화를 보면, 카메라가 로스앤젤레스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을 따라 수평으로 움직이면서 거기에 붙어 있는 "오염 구역"이라고 씌어진 표지판과 "제한 구역"이라고 씌어진 표지판을 차례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방사선으로부터 오는 위험과 금지된 것을 알려고 추구하는 인물로부터 오는 위험이 합쳐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과학자들은 괴상하고 한 가지 목적에만 전념하며 강력한 어떤 존재로서 정상적인 사회 바깥에서 작업하는 것으로 항상 그려져 왔고, 그러한 전형은 원자과학자들에 대해 저널리스트들이 쓴 기사들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헌신적이고 총명한 맨해턴 계획(Manhattan Project)의 과학자들이건 아니면 헌신적이고 총명한 반역자들이건 간에, 그들이 비밀스럽게 사회에 폭력적인 변화를 가하려는 경향을 지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스파이 선풍(spy craze)을 사람들이 "마녀 사냥"에 비유했을 때, 그들은 새로이 나타나고 있던 이러한 유형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얘기들은 종종 반사회적인 마술사의 전형보다 더 원초적인 수준으로까지 내려가기도 했는데, 예컨대 한 여성은 미국 상원의원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가 모두 산산조각나서 날아가기 전에 저 미친 과학자들이 . . . 원자폭탄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제발 멈춰 주세요. 그들은 마치 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있어요"라고 호소했다. 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예전에 밀리컨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는 "조그만 악동"이라고 불렀던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생각이었다.

1950년에 만들어진 정교한 영국 영화 <정오까지 앞으로 7일 Seven Days to Noon>에서는 바로 그런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존 윌링던 박사(Dr. John Willingdon)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조력했던 인물로 마치 어린아이같이 순진한 물리학자인데, 그는 자신이 설계한 원자폭탄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정신적인 붕괴 상태에 이른다. 가방에 폭탄을 훔쳐 달아나면서 윌링던은 만약 영국이 핵무기 폐기를 약속하지 않는다면 폭탄과 함께 자폭하여 런던 전체를 날려 버리겠다고 선언한다. 비록 미친 천재의 전형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영화는 전반적인 분위기에서는 보통의 경찰 스릴러를 조금도 닮지 않았다. 미친 과학자가 리얼리즘의 세계로 한 발을 들여놓은 것이었다.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이후부터, 핵과학자들에 대한 우려는 이제 과학기술 일반에 내재한 위험을 압축적으로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그것은 또한 마음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가장 잔혹한 비밀들―금지된 비밀을 엿보는 것,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욕망, 그리고 마치 윌링던과 같이 심지어 자기 자신이 살던 도시를 파괴해 버리려 드는 위험천만한 충동에 이르기까지―을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연관들은 저절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개개인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신화적인 테마들을 반복적으로 보고 들어 왔던 보통의 시민들은 히로시마로부터 날아온 뉴스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친숙한 생각들을 이용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좀더 의도적으로 이미지들을 차용했다―비록 결과가 항상 의도했던 대로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원자력이나 마술사와 같은 과학자에 관한 얘기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자들의 인도를 따르도록 만들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과학자들을 두려워하게 하고 그들을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 수도 있었다.

늦어도 1950년대 말쯤이 되면 이 중에서 두번째[과학자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 역주]가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결국, 사람들이 핵무기의 등장에 의해 생겨난 두려움과 적대감을 언젠가 그것을 사용할지도 모르는 이들이나 그것의 사용에 조력을 제공한 이들에게로 전이시킨 것은 충분한 근거를 지닌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제기되었던 의문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러한 생각은 냉전체제 하의 끝없는 위협 속에서 지속적으로 전면에 유지되었다.

함의

'미친 과학자'의 전형을 역사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다음의 한 가지는 명백하다: 과학자에 대해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깊고 다양한 뿌리들에 의존하고 있어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 사람들이 기술의 진보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또 그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공격할 태세를 갖춘 핵무기들이 수없이 존재하는 한, 대중들이 과학이나 기술을 순수한 찬양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학자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회가 과학을 이용하는 방식에 있어 진정한 개선―군축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오랜 시간을 요하는 그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미친 과학자'의 전형을 개선하려 직접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과학자들을 헌신적인 기적 창조자(wonder-worker)로 내세우는 시도들은 마술사의 전형을 불러오기 십상이라는 사실이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보다 겸손한 접근이 훨씬 좋을 것이다. 우선, 미친 과학자가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경우에 과학자들이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항상 금기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는 부당하게 전형이 만들어진 다른 집단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실제 과학자의 역사를 대중들에게 말해 주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문명을 진보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에 대한 사적인 통제를 꾀하지는 않는 사람들, 자신들의 연구에 몰두하지만 일반적인 인간의 감정을 경멸하지는 않는 사람들, 지식을 추구하지만 유토피아와 파멸의 날을 결정하는 우주의 비밀을 지배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는 않은 사람들로 과학자들을 그려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

*출전: Spencer Weart, "The Physicist as Mad Scientist", Physics Today, 41:6 (June 1988), pp. 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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