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보’에 가려진 ‘시민 안전’ 돌아 볼 때다
이대훈 성공회대 교수·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세월호 참사에서 행정당국과 군경이 보여준 태도와 능력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참사였다. 조직은 비리로 점철되었고 구조 장비는 낙후하기 이를 데 없었고 비싼 장비는 동원되지조차 못했다. 국가기관 종사자들에게는 시민의 생명을 지켜야겠다는 절박함이 없었다. 이것이 오래되고 익숙한 실상이라는 점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치안과 안보 표어, 그런 기관이 전국적으로 난무하는 나라이지만 시민의 안전한 삶을 기준으로 보면 너무 많은 것이 거꾸로 되어 있다.
치안 또는 안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에서의 낭비와 부패, 비효율성과 낙후한 문화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군대 총기 사고를 보는 많은 사람들은 군의 낙후함과 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군대에서의 참혹한 사고와 폭행, 인격모독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면서 동시에 말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또 낙후한 원전을 둘러싼 상상조차 못할 거대한 위험과 비리를 우리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또 다른 조용한 참사, 전례 없는 우울증과 자살의 대행렬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제대로 말할 엄두도 책임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갈피조차 못 잡고 있다.
대한민국은 예산과 조직, 이념 등 모든 면에서 거대한 경찰-안보국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시민들의 생명은 휴지조각처럼 취급되고 있다. 오히려 국가기관의 집단이익 수호가 우선시되는 기형적인 안전보장이 주류가 되었다. 최근 국정원 사태나 군에서의 총기사건에서 드러나듯이 안전을 위한 국가기관들은 그 비리와 낙후함 때문에 시민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한다.
거대한 예산을 투입한 치안장비, 군사장비들은 시민 안전에 아무런 효용을 내지 못하고 낭비될 따름이다. 누적된 비리와 고장으로 가능성이 높다고밖에 볼 수 없는 원전사고에 대해서는 사고 대비 개념조차 없다. 제대로 거론조차 못한다. 군복무 중이건 학교 재학 중이건, 소방대의 처우와 장비 수준이건 생명이 박탈되는 위기상황이 반복되는 데에도 공공기관에 책임구조가 부재하다. 이는 앞으로도 많은 참사가 줄을 서 있는 것과 같다.
국가 중심의 안보는 시민 안전을 낙후시킨다. 그래서 시민의 생명 박탈이 하찮게 취급된다. 나아가 국가안보-치안 기관의 낭비와 비리는 시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가정폭력에서처럼 보호자 권력은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안전한 사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안전에 대한 관심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이제 편협하고 낭비적인 국가안보시스템에서 시민 안전 중심의 건강한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거대한 안보 패러다임이 가려온 진짜 안전 문제를 돌아볼 때이다.
우선 고리 원전 인근 지역이나 군대, 재해다발 산업과 같이 위험도 높은 영역에서는 당사자의 자치권, 자결권이 있어야 한다. 당사자 주민들이 위험에 대해서 판단하고 말하고 정책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기 지역의 안전에 대해서 구상하고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리가 기본적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왕따나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는 학교나 군대에서는 당사자들이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하는 역량을 갖추도록 상당한 제도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학교 때 익힌 왕따 문화가 군대까지 또 더 멀리 간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학생들의 경우 갈등조정, 소통능력, 위기대응, 사고대응에 관한 연습을 하면 두고두고 쓸모 있는 역량이 될 것이다. 크고 작은 사고에 처한 마을이나 공동체에서 이를 예상하고 대처하는 장비를 가까이 갖추고, 이에 대한 역량을 갖추면 안전을 지역화-자치화하게 될 것이다.
왕따와 은따,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군에서도 인권보장, 소통능력과 갈등조정 역량을 갖추도록 제도개혁을 하면서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또 군이 본연의 임무와 무관한 재해대응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중시해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여 국방을 선택하지 않고 시민방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선택한 청년들이 각종 사고와 재난 대처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습득한 시민 안전 역량과 장비는 그대로 사회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서 시민의 안전 역량 축적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많은 개혁 방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국가기관의 이익이 아니라 시민이 안전한 나라로 바꾸는 대전환을 이끄는 정책개념은 시민안전, 안전의 권리, 안전의 자치역량화, 안보에서 시민안전으로이다.
* 이글은 2014년 6월 27일, 경향신문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